왜 젤렌스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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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젤렌스키인가
  • 한덕현
  • 승인 2022.03.2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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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서울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시차는 7시간, 때문에 전쟁 소식은 거의 낮과 밤이 바뀌어 전해진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외신은 간밤의 참혹한 전장, 즉 격전지의 각종 시설물들이 화염에 휩싸인 장면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라치면 화면은 다시 낮시간대에 눈으로 확인되는, 폭파·파괴되어 어지럽게 널려있는 잔해와 피난행렬등을 밀착으로 중계한다. 뉴스를 볼 때마다 오늘은 또 누가, 얼마나 죽었을까? 조바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매일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의 전쟁뉴스를 좇는 게 대선이 끝난 후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 때마다 끊임없이 엄습하는 건 이런 전쟁이 왜 일어나야 하는지, 푸틴이 도대체 뭐길래 지구촌이 이토록 혼란스러워지는지, 과연 3차대전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등등 온갖 의문과 회의들이다. 학교, 어린이집이 폭격당하고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나가는 장면에선 인간의 이성과 문명이란 것이 참으로 허접하다는 생각만 든다.

어쩔 수 없이 주목되는 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다.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며 말과 행동에서 당찬 기개를 보이다가도 어느 땐 세계를 향해 간절한 도움을 요청하는가 하면, 돌연 전투복을 입고 나와 국민들에게 끝까지 싸울 것을 독려한다. 거기엔 과장도, 겉치레도 없고 대중에 대한 기만행위도 없다. 오직 우크라의 평화를 말하고 이 나라의 인간다운 삶을 토로한다.

어차피 이 전쟁은 국력이나 무력으로 보나 애초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지라 날로 상황이 악화되는 우크라의 처지가 남일 같지가 않다. 전황이 불리해지면 민간 주거지등을 마구 폭격해 젤렌스키를 겁박하려는 푸틴에게 온갖 저주와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냉혹한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젤렌스키가 그토록 우방이라 여겼던 미국과 EU는 말폭탄만 쏘아댈 뿐 서로 손에 피묻히기를 꺼리고, 대통령과 한 몸이 되어 항전을 외치던 우크라인들의 피로감과 공포도 날로 커져가는 분위기다.

코미디언 출신의 풋내기 대통령으로 알려지다가 다시 제국을 꿈꾸는 강대국 러시아와 맞짱뜨는 영웅, 더 나아가 서방국가의 구세주 쯤으로 부상하고 있는 젤렌스키는 목하 국가지도자의 선택과 결단이라는 측면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21세기형 전쟁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아니면 패배자로 사라질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는 진정 용기있는 지도자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고, 자신의 희극배우 전력을 의식해 취임사에서도 밝혔듯 늘 국민들을 웃게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만큼 전쟁중에도 국민들과의 소통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젤렌스키를 보다 보면 그의 리더십이 하루 하루 진화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처음 전투복 차림으로 전선에 나타날 때는 초보 지도자의 부자연스러움이 어쩔 수없이 드러났다면 이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서방국가의 정상들과 화상 회담을 하고 유엔총회와 유럽의회 등에서 역시 화상연설로 기립박수를 받는 모습에선 상황에 따라 잘 벼려지고 있는 대통령 리더십의 정수를 보는 것같다. 실제로 미국의 한 인터넷 매체는 그에 대해 더 훌륭하고 용기있는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자신도 몰랐던 것을 깊이 파고드는 방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뉴시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뉴시스

 

이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근자에 갑자기 회자되는 젤렌스키 어록이다. “나는 도피할 수단이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대피를 돕겠다는 미국의 제안에 대해) “생명은 죽음을 이기고, 빛은 어둠을 이긴다.”(유럽의회 연설) “나는 정치인이 아니고 이 시스템을 무너뜨리러 온 평범한 사람이다.” “대통령 혼자서는 나라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 예를 들어줄 수는 있다.” 하나같이 국가리더로서의 책임감과 희망을 얘기하는 것들로 전쟁중에도 오로지 나치의 목적 달성을 위해 민중을 기망하고 현혹하는 말들로 가득찬 괴벨스의 어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반면 젤렌스키처럼 작은 체구로 인해 젊은 시절 열등의식이 강했다는 푸틴에 대해선 서방 언론들이 그의 사고방식(mindset)과 정신상태(mental status)를 헤집느라 뒤늦게 호들갑이다. 검은 재킷차림으로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사냥총을 든 채 거친 표정을 짓는가 하면, 얼음물에 맨몸으로 뛰어들거나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내보이며 거북할 정도로 자신의 강함을 과시해 온 푸틴은 분명 정상적인 생각의 소유자는 아니다. 러시아 직장인 연봉의 두 배나 된다는 1600만원 짜리 명품 잠바를 입고 우크라의 애먼 민간인들이 집단 살육을 당하는 시각에도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는 그는 히틀러에 버금가는 사이코패스임엔 틀림없다. 공교롭게도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에서도 살아남은 한 우크라인이 이번 러시아 폭격으로 사망했다. 젤렌스키의 부모는 유대인이다.

우크라전쟁을 접하면서 목하 국내에서 심각하게 벌어지는 청와대 폐쇄 논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냉정하게 보면 세계 초유의 3대세습을 지켜내야 하는 김정은의 심리상태는 푸틴보다 더 불안할 수 있다. 국가간 적대적 대치는 우크라-러시아보다도 우리의 남북관계가 더 위험했다. 그런데도 새정부 인수위가 가장 먼저 손을 댄다는 것이 국가안보의 심장인 국방부다. 그것도 채 두 달이 안되는 기간에 해치우겠다고 하니, 말이 이전이지 국방부를 기능에 따라 뿔뿔이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엄청난 일인데도 말이다.

내 군대경험상 훈련중에는 일개 소대를 옮기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병력이동과 무기의 재배치부터가 신경쓰이고 참호를 구축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보통 사람들이 아파트 한번 옮기려 해도 그렇게 졸속으로 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특급 비밀이라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지하구조나 시설물들을 드러내놓고 까발리지 않는가. 선제타격이 아니라 제발 선제타격을 해달라고, 그 것도 정밀하게(?) 자초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윤석열 당선인과 그를 둘러싼 참모들이 갖은 병역기피로 군대의 문턱에도 안 가본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언뜻 불편하기만 하다. 맘만 먹으면 대통령까지 내려앉히는 무소불위 검찰권력에 길들여진 내성의 결기와 돌파력도 중요하지만 이건 아니다. 사람은 절대 고쳐쓰는 게 아니라는 속설이 제발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외롭게 싸우는 젤렌스키를 생각하면 끝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절대적인 군사력의 열세에서 아무리 명분도 중요하지만 꼭 그렇게 전쟁을 불러들여 자국민을 희생시켜야 하는지, 결과적으로 우크라가 이기든 지든 이 전쟁은 이런 점에서 반드시 하나의 교훈을 남길 것이다. 그 어떤 전쟁도 결국엔 야만이라는 것을....

그래도 푸틴이 이번 전쟁에서 패해 꼭 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간의 이성과 인류문명의 정상됨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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