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의 정치학 산책] 상상조차 어려운 그들의 민주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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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정치학 산책] 상상조차 어려운 그들의 민주정체
  • 최용현 변호사
  • 승인 2022.03.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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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체(1)
최용현 변호사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말은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민(demos)에 의한 지배(kratos)’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는 그 기본 원리와 제도에서 우리와 현저히 달랐습니다.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여 200여년 정도 존재했던 그것을 현대 우리와 똑같이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는 것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아테네 민주정체는 현대의 우리와 어떻게 달랐을까요? 그들의 민주정체는 어떠한 기본 원리에 입각했고 어떠한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었을까요? 그것에 대하여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답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당대의 민주정체에 대하여 비판적이었지만, 전문 정치학자답게 그것의 기본 원리와 제도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민주정체의 정의는 가치에 따른 비례적 평등이 아니라 수(數)에 따른 산술적 평등에 있다. 이것이 정의라면, 필연적으로 다수가 최고 권력을 갖고, 다수가 결의한 것이 최종적인 것이며 정의로운 것이다. 민주정체 지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시민은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번갈아 가며 지배하고 지배받아야 한다.… 이것이 민주정체의 토대이자 원칙이라면 민주정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공직자들은 모두에 의해 모든 시민 중에서 선출되며, 모두가 각자를 지배하고 각자는 번갈아 가며 모두를 지배한다. 모든 공직자 또는 경험과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모든 공직자는 추첨으로 선출된다.… 모두가 또는 모든 시민 중에서 선출된 배심원이 모든 또는 대부분의 사건을… 재판한다. 민회가 모든 문제 또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공직자들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도 최고 권력을 갖지 못하거나 소수의 문제에 한해서만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1)
 

고대 아테네의 민회가 열렸던 프닉스 언덕
고대 아테네의 민회가 열렸던 프닉스 언덕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1) ‘정치적 평등’, 그것도 ‘산술적 평등’을 핵심 가치로 하는데, 이는 모든 시민이 신분·재산·교육 등의 차이를 불문하고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취급받는 것을 말합니다. 2) 이러한 평등을 실현하려면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고 스스로 지배’하거나 ‘번갈아 가며 지배’하는 원리를 따라야 하고, 3) 이러한 원리를 실현하는 정치제도는 ‘민회’와 ‘추첨’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모두 참여하여 공동체 의사를 결정하기에 스스로 지배하는 민회에 기초해야 하고, 한정될 수밖에 없는 공직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한 추첨으로 선출하되 번갈아 가며 맡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머릿속 추론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에 앞서 현실의 아테네 민주정체가 바로 그랬습니다.

민회와 추첨, 아테네 민주정체의 핵심

아테네의 정체는 당대는 물론 심지어 현대에 비추어 보아도 정말 별종이었습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이집트·중국 등에 존재했던 거대한 전제국가들과 달리, 고대 그리스 지역에 있던 아테네를 비롯한 몇몇 도시국가는 현대의 우리와 비교해서도 너무나 민주적인 정체였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제주도의 2/3 정도의 크기였고, 전체 인구는 25∼30만 명 정도였습니다.

아테네 혈통을 이어받은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은 누구라도 민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표결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여성·노예·이주민은 시민권이 없었기에 실제 민회참석 자격을 가진 이는 3∼4만 명 정도로, 시민권자를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서울의 종합대학 규모에 불과했습니다. 민회는 1년에 40회 정도 열렸고, 안건 심의에는 6천 명의 정족수가 필요했고, 표결에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었으며, 재정·외교·군사문제는 물론 중대 범죄에 대한 재판까지 담당했습니다. 또한 민회와 협력하여 행정과 사법 업무를 담당하는 핵심기구로 500인 평의회와 시민법정이 있었는데, 평의회는 30세 이상의 시민 중 500명을 선출하여 구성했고, 법정은 30세 이상의 시민 중 미리 6,000명을 선출하여 배심원단을 구성하고 그중에 201∼1001명씩 뽑아 그때그때 재판을 맡겼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민주정체는 우리와 현저히 다릅니다. 1) 그들은 입법·행정·사법 모두에서 철저히 일반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에 기초했습니다. 그들은 시민참여를 보다 더 보장하고 장려하고자, 대부분의 공직 임기를 1년으로 연임을 제한했고, 빈민도 생계문제에서 벗어나 민회참석과 공직수행을 할 수 있도록 일일 급여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기까지 했습니다. 2) 또한 시민들의 보다 완전한 정치적 평등과 번갈아 지배하기를 실현하고자 공직 선출에서는 ‘추첨제’를 채택했습니다. 그들은 전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장군과 회계책임자를 제외하고(이들은 선거로 선출하고 연임제한도 없음), 거의 모든 공직자(평의회 위원과 그 밑의 600여명의 행정관, 6000명의 배심원단)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추첨으로 선출했습니다. 거기에는 현대 우리와 같은 전문 행정·사법 관료가 없었습니다. 3) 더불어 그들은 민회는 물론 행정·사법 기구들도 ‘회의체’로 운영했습니다. 그들에게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번의 투표행위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의 토론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처럼‘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사려깊고 충분한 토의’에 기초한 아테네 민주정체는 현대의 우리의 것과 현저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민회와 추첨을 정치제도로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시간의 토론을 통한 결정은 우리의 주요한 정치행태가 아닙니다. 우리의 경우는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신한 정치엘리트와 관료들이 정치과정을 주도하고, 그들에 의한 표결이나 단독 결정이 더 익숙하고 중요한 정치행태입니다.

어찌 보면 고대 아테네는 현실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정체였습니다. 그러나 2천5백년 정치사상사에서 아테네는 경탄은커녕 오히려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만 취급되어 왔습니다. 당대의 플라톤은 ‘선장·의사·악기연주자도 그렇지 않거늘, 어떻게 정치적 대표나 공직자를 뺑뺑이나 제비뽑기로 뽑을 수 있냐’고 비웃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는 다수 빈민에 의한 빈민을 위한 정체로, 종국에는 빈민들의 무지와 탐욕으로 폭정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근대의 마키아벨리부터 밀에게 이르기까지, 심지어 직접민주주의 찬미자로 잘못 알려진 루소조차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루소도 “민주정 혹은 인민정부만큼 내전과 내란에 취약한 정부도 없다.… 만약 신(神)들로 구성된 인민이 있다면 이 인민은 민주정으로 통치할 것이다. 그렇게 완전한 정부는 인간에게 맞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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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리스토렐레스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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