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의 정치학 산책] 상상조차 어려운 그들의 민주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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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정치학 산책] 상상조차 어려운 그들의 민주정체
  • 최용현 변호사
  • 승인 2022.04.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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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체(2)
최용현 변호사 

고대 아테네인들은 모든 정치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이러한 민주정체의 폐해를 경험하거나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사실 민주정체에 대한 이런 조롱과 혐오는 당대 귀족과 부유층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아테네인들도 대중의 탐욕이나 군중심리로 민회가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고, 무작위 추첨으로 무능력하거나 부도덕한 자가 공직자로 뽑힐 수 있고, 소크라테스 사례처럼 무지하고 성급한 배심원들이 무고한 사람을 처벌할 수도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민회와 추첨 제도를 200여년 동안 유지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1) 그들은 어떠한 제도나 수단을 통해 이러한 민주정체의 단점들을 어느 정도 보완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2) 자신들의 민주정체는 이러한 모든 단점들을 감수하고도 남을만한 월등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아테네인들 vs역대 정치사상가들

우선 그들은 민주정체의 예상되는 단점을 예방하고자, 일부 주요 공직(장군과 회계직)에는 선거 제도를 채택하고, 선거에 의해서건 추첨에 의해서건 선출된 모든 공직자에 대하여 사전에 엄격한 자격심사를 하고 사후에도 철저한 감사를 했으며, 잘못이 있는 공직자는 중도에 탄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잘못된 의안을 민회에 제출한 시민은 심지어 그것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하더라도 사후에 처벌할 수 있는 제도 등을 도입했습니다. 더불어 아테네인들은 그러한 단점들을 뛰어넘는 민주정체의 월등한 장점에 주목했습니다. 아테네인들이 민회와 추첨 제도로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치의 계급·엘리트·관료화 경향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가운데 걸어나오는 인물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가운데 걸어나오는 인물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러나 이를 사회에서 계급을 폐지하거나 정치에서 엘리트와 관료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아테네 사회에도 귀족계급이 존재했고 빈부격차도 심했습니다. 귀족이나 부유층은 다양한 자원과 인맥으로 상대적으로 우월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들은 수차례 장군으로 선출되어 정치지도자로 행세하기도 했습니다. 아테네 민주정체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페리클레스(Perikles)는 20년 동안, 포키온(Phocion)이라는 사람은 무려 45년 동안이나 최고위 장군직에 있었습니다. 아테네인들이 우려하고 배척하고자 한 것은 정치에서 계급·엘리트·관료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정치 공간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영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즉 정치의 계급·엘리트·관료주의입니다.

정치사상가들과 아테네인들의 주요한 대척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정치사상가들은 정치에서도 계급(신분과 재산) 원칙이 관철되고 정치가 엘리트·관료화되어야 보다 나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은 정치를 독점하는 철인계급을 창안해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과 부유층에게 우월한 정치적 지위와 권한을 주는 혼합정체를 주장했습니다. 근대 정치사상가들은 재산과 교양을 갖춘 엘리트들을 대표로 뽑아 정치를 수행케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따른 근대 정치인들은 신분과 재산에 따라 차등선거권을 부여하는 대의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 이후의 헤겔, 밀, 베버와 슘페터는 유능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관료들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그들과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를 민주적으로, 나아가 민회와 추첨과 같은 방식으로 일반 시민들에 보다 견고히 결박되도록 구축하지 못하면, 정치는 사회경제적 지배층의 전유물이 되거나 그들과 물리적·정신적 친화성이 있는 엘리트와 관료들이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치는 일반 시민들의 의사와 이익으로부터 멀어져 오히려 시민들을 억압하고 공동체 이익을 배반하는 도구로 전락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대 아테네인들과 역대 정치사상가들의 주장 중 어느 것이 보다 더 현실에 부합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정치적 정의로 생각되는가요?

민주주의와 아테네의 부활

여하튼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는 알렉산더와 로마의 침략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 이후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만 취급됐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의 역사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근대 시민혁명 시기 급진혁명가였던 미국의 페인(Thomas Paine)과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에 이르러서 입니다. 이들에 이르러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고대 아테네 이후 처음으로 긍정적 의미로, 나아가 인류 미래에 대한 적절한 비전의 하나로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다시 등장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민회와 추첨에 기초한 고대 아테네적 인민자치가 아니라, 현대의 우리와 유사한 대의와 선거에 기초한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 말의 이러한 민주주의와 대의·선거 제도와의 연계는 사실 놀라운 역사적 역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천여년 동안 대의와 선거는 민주적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반민주적인 귀족적·과두적 제도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 19세기가 시작되며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나마 전혀 다른 맥락으로라도 복권되었지만,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민회와 추첨에 기초한 인민자치)는 여전히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되었고, 그 복권을 위해서는 15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지난 20세기 중반이후 많은 정치학자들은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여러 폐해들을 지적해 왔습니다. 그들은 정치엘리트와 관료들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이 기업과 부유층 편향적으로 결정·집행되고, 정치 권력과 기업 권력이 유착하여 각종 부정부패가 일상화되고, 그로 인하여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가 점증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러한 폐해들은 2천5백년전 고대 아테네인들이 경계하고자 했던 정치의 계급·엘리트·관료화를 연상케 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에 주목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세기말 등장한 참여·숙의 민주주의자들은 고대 아테네 민회 제도의 현대적 재현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마을·기업·직장·공장·학교 등에서 구성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사려 깊은 숙의로 공동체 의사를 결정하는 시민자치 모델을 주장합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고대 아테네의 추첨 제도에 주목합니다. 이들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또는 성·연령·지역·계층·직업 등의 구성 비율에 따라 대표를 추첨으로 뽑아 그들에게 국가 의사나 정책 결정을 맡기는 새로운 시민의회를 만들자고 주장합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체는 “지금 사람들에게도, 나아가 미래 사람들에게도 경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2천5백년 정치사상사에서는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만 취급됐지만,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는 21세기에 부활해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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