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여성과 신여성/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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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여성과 신여성/독립운동가
  •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 승인 2022.04.05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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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정치를 가장 중요한 핵심축으로 삼든 아니든, 이번 대선에서 젠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뜨거운 쟁점이었다. 일정 부분 ‘이대남’이라는 정치적 전략의 반응으로 구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이대녀’는 선거 막판까지 ‘행동(action)’ 전선을 구축하기 어려운 ‘반응(re-action)’의 위치에서 선택을 망설이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강제된 무기력과 고착의 상태를 깨뜨린 것은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씨의 ‘우리 다 같이 이깁시다’라는 외침이었다. 이 외침은 이십대 여성들을 행동하는 세력으로 결집시켰다. ‘우리’라는 호명에 이토록 열정적으로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이미 정치적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들을 대의할 정치 진영이었다.

시사인의 탐색보도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대남들은 무고죄로 고발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는 반면, 이대녀들은 디지털/성폭력을 가장 두려워 한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무고죄 처벌강화 공약이 정치공학적으로 이해되는 맥락이다. 이대녀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그러나 젠더폭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집단적 정치 의지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계속 네거티브 전술로 파행을 겪던 선거판에 비로소 강력한 포지티브 행동 전선이 구축되던 이 순간은 명백한 ‘사건’으로 역사 속에 기입되었다.

사회문화도, 정치도 ‘우리’를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을 ‘함께 행동하고 함께 만들자’의 생성 정동으로 전환시킨 이 여성시민들의 선택을 어떻게 해석하고 협력 에너지로 삼는가는 향후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풍경에 매우 중요한 역학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20대 여성들은 이미 이전에도 함께 국가를 건설했고, 시민사회를 견인해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특히 ‘신여성’으로 불리는 식민지 근대 시기의 여성들을 떠올릴 때 더욱 분명해진다.

현재 서울 여담재에서 열리는 류준화의 <33인 여성독립운동가에게 바치다> 전시회는 여성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식민국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위해 투쟁한 역사적 사실을 환기한다. 류준화는 파고다 공원에서 대한독립을 선언한 33인이 모두 남성인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여성 33인을 독립선언의 무대로 불러 모은다.

1919년 독립선언이 울려 퍼지던 그때, 그 장소에 그리고 수많은 다른 장소에 국가의 독립과 자주를 향한 여성들의 불꽃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 기록의 기념비에 한 줄 더 얹혀야 할 부록 같은 것이 아니다. 언제나 역사를 함께 만들고 변화시켜 온 여성을 정치적·공적 영역의 바깥에 위치시킨 정치의 관행 자체를 급진적으로 질문하도록 추동하는 일이다. 그때 그 장소, 그 시점에서부터 지금 2022년 봄에 이르기까지 백년이 넘도록 도도하게 흐르던 여성들의 정치적 행동을 드러냄으로써 정치적인 것, 내지는 정치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일이야말로 ‘진보’의 중대 과제다.

여담재의 전시가 더욱 흥미로왔던 것은 이들 여성독립운동가 33인들이 거의 이십대였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사회적 나이가 지금 우리 시대의 사회적 나이와는 다름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 이십대 여성을 정치적 주체이기에는 ‘어린 여자’로만 간주하는 것은 성별 이데올로기의 축적된 결과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전시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이 얼굴들은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우리’를 마주 보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이번 선거에서 의미심장한 정치적 등장으로 구태의연한 정치 풍경을 뒤흔든 2030 여성들의 역사적 파트너다.

류준화는 이 여성들을 한명 한명 만날 때마다 그 전망의 그 광대함에, 그 스케일에 쩌릿쩌릿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신여성이며, 독립운동가며, 글로컬 혁명가였던 이 이십대 여성들, 이 빛나는 청춘의 얼굴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번역 중에 있다. 현재 이십대 여성들의 정치적 역량과 행동을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의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민주주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 책임에 어떤 정치적 상상력과 번역 능력이 필요한지, 시민의 자리에서 곰곰이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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