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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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
  •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 승인 2022.04.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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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70대이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가령 유명 정치인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저건 여자가 꼬리친 거”라고 말씀하시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싶어 말문이 막힌다. 심지어 주변에 계신 분들이 다 그렇게 말씀하신다 하면 어머니의 사회생활을 금지시켜야 하나 싶어진다.

어머니는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도 못마땅해 하신다. 저렇게 옷을 입고 다니면 안 된다는 거다. 어머니는 노출이 있는 옷을 입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옷차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이다. 남이사 무슨 옷을 입든 그러려니 하거나, 그건 그 사람의 자유라고 여기지 않는다. 1949년생이신 어머니와 1973년생인 아들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대도시에 사는 아들과 지역의 소도시에 사는 어머니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대개 작은 동네에서는 남들에 대해 시시콜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하는 게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성격이 강한 가게 여성 사장을 보며 ‘다방 레지 같다’고 말씀하실 때나, 며느리에게 남편 밥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에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내 밥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머리 속에는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모양이다. 당신은 여성이 큰일을 하지 못하는 존재이고, 남성을 유혹해 파탄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여성은 조신하게 옷을 입고 남편을 챙겨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실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말씀 드리면,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바꾸시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많은 분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나이가 많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요즘 세상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싶다. 성폭력은 대부분 남성의 범죄이고, 한 사람의 패션은 그 사람의 자유일 뿐이며, 아내는 남편을 챙겨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대 속에서 성장했다면 어머니와 나는 좀 더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을까.

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폐지되거나 폐지되지 않거나 지금 당장 어머니에게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어머니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만약 50년 전에 여성가족부가 있었다면, 그 때가 여성가족부가 있는 세상이었다면 어머니는 다른 삶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입만 열면 “여자가” 어쩌구 하는 아버지와 헤어졌을 수도 있다. 아니 아예 아버지 같은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거침없이 핫팬츠를 입은 채 동네를 누볐을지 모른다. 고향을 떠나 대학에 가고, 실컷 연애를 하다 혼자 살았을 수도 있다. 어머니가 그렇게 살았다면 나는 안 태어나도 괜찮다.

세상의 흐름은 여성의 권리가 확장하고 평등해지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어떻게든 발목을 잡으려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그래서 더더욱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고 불신하는 세상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어머니의 세대처럼 여성임에도 여성의 역할을 정해놓고 모멸하는 게 당연한 시대는 다시는 돌아오면 안된다. 어떻게 태어나든 자유롭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오히려 더 커지고 세져야 한다. 어머니의 삶이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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