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게임을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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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게임을 ‘보는’ 이유
  • 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 승인 2022.04.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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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어릴 때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했다. 주인공 강백호는 늘 입으로 ‘난 천재'라고 내뱉지만 실제로는 초보 농구선수에 불과하다. 뛰어난 신체적 재능을 가졌지만 부족한 경험 탓에 중요한 경기에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같은 학년 같은 팀 선수인 서태웅에게 열등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만화 속에서 강백호는 특훈을 통해 레이업, 골밑 슛, 점프 슛 등을 차례로 익힌다. 처음에는 탁월한 운동신경으로 멋있어 보이는 슬램덩크만을 좇았지만 점차 농구를 알게 되면서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점프 슛 ‘성공 2만개'를 목표로 매일 특훈을 한다. 성공이 2만개니까 실패한 횟수까지 합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슛 연습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 이 만화 속에서 경기를 가르는 마지막 득점은 호쾌하고 멋진 덩크슛이 아니라 수십만번을 던진 평범한 점프 슛이다.

한편, 요즘 인기있는 웹툰들은 좀 다른듯하다. 주인공 자신만 게임처럼 레벨업을 하거나, 전생의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나 종횡무진하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웹툰들이 인기를 끈다. 무협이나 판타지 뿐 아니라 판사, 요리사, 의사, 학생, PD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이런 능력자 주인공은 실수를 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별도로 실패를 거듭하며 훈련을 할 필요도 딱히 없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이 시련을 만나 그 시련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흔한 구조가 사라지고 자신에게 닥친 시련들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쉽게 극복해낸다. 웹툰의 스토리 구조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웹툰 독자들은 이런 스토리를 좋아한다. 오히려 주인공의 시련이 조금 길어지면 ‘고구마를 먹었다'며 답답해하고 낮은 별점을 매긴다. 웹툰 작가들이 독자들의 반응을 신경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만화 등의 컨텐츠에서 스토리는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트렌드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할 때 필연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강백호가 자신의 좋은 운동신경으로 한 두 번 우연히 슬램덩크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점프슛은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요즘 다수 학생들은 시간을 들이거나 힘든 것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 근거로 요즘 아이들은 게임조차 잘 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 아이는 맨날 핸드폰으로 게임하는 것 같은데 게임을 안 한다니'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관찰해 보면 게임을 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소수다. 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게임을 하기보다는 그저 게임을 ‘보고' 있다. 혹은 게임을 하더라도 노력이 하나도 필요없는 자동 모드를 돌리고 있다.

왜 그럴까?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어차피 자신은 게임을 잘 못하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답했다. 지금 학생들은 자신이 못한다는 것을 알면 그 순간 멈추고 관람하는데 그친다. 그리고 이처럼 게임을 보기만 하는 애들은 공부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뭔가를 시도하지 않는 편이다.

학생들이 패배의식과 무기력에 쌓여가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겪는 시행착오와 잘 하려고 하는 노력을 답답하게 여기면서, 태생적 능력을 갖췄거나 환생한 주인공을 통해 쾌감을 얻는다. 혹은 더 잘하는 다른 사람의 게임을 보면서 만족해하는 이런 문화의 원인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모든 책임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잘 하려는 도전과 시도가 없는 사회는 갈수록 노화되고 경직될 수밖에 없다. 노력 그 자체에 보상하고, 도달의 속도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 전체가 인정하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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