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반민주적 담론의 각주
상태바
모든 반민주적 담론의 각주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5.18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플라톤의 탁월성 원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 원칙 (2)

전회에서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에 기초한 철인왕국이 최상의 정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적 대안으로 혼합정체를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귀족적·과두적 요소와 민주적 요소를 절충하는 현실의 제도와 수단은 무엇일까요? 당시 아테네는 모든 시민이 동등한 정치적 지위와 권한을 가진 민회와 추첨에 기초한 민주정체였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민회와 추첨제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고, 전면적으로 선거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시합니다. 더불어 선거·피선거권을 차등화하여 각 선거마다 각기 다른 신분이나 재산 자격 요건을 부과하되, 고위직의 경우는 월등히 높은 자격 요건을 부과할 것을 제안합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가운데 걸어나오는 인물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가운데 걸어나오는 인물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탁월함과 선거의 실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의 기본적 흐름은 이렇습니다. ‘이상적 정의로서의 탁월성의 원칙 → 현실적 대안으로서 과두적·민주적 요소의 혼합 원칙 → 구체적 방안으로서의 신분·재산과 선거의 활용’입니다. 이러한 이상에서 현실로의 전환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상에서 현실로 내려오며 ‘탁월성 원칙’이 ‘계급(신분과 재산) 원칙’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전환이 현실에서의 제도화를 위해 마지못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순진한 오산입니다. 모든 정치사상가들의 출발점은 고귀한 이상이 아니라 불만족스러운 현실(모두가 평등한 아테네 민주정체)입니다. 또한 지적 탁월함의 모호성과 그것의 신분·재산과의 친화성을 알지 못할 정도로 그들이 바보는 아닙니다. 그들이 고상한 철학을 사유하다가 우연히 현실과 접목되면서 덜 바람직한 기준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현실의 바람직하지 못한 기준(계급 원칙)을 먼저 목적지로 설정해 놓고 고상한 철학(탁월성 원칙)으로 우회하여 왔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흥미로운 것은 ‘선거’의 독특한(혹은 이상한) 역할입니다. 선거에 일정한 신분·재산 요건을 부과하는 것이 반민주적임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즉 선거는 그 자체로도 ‘반민주적’이라고 이해하고, 민주주의를 ‘억제’하기 위하여 이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우리 상식과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둘러보면 모든 선거는 귀족적·과두적 속성을 갖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의 80∼90%는 사회경제적·지적 최상층 출신들입니다.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더라도, 선거 결과는 항상 월등한 교육, 지위, 재력을 가진 자들에게 유리했습니다. 탁월성은 불편부당한 고상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추악한 계급적 본성을 그 안에 감추고 있습니다. 또한 혼합의 중심 기재인 선거는 민주적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귀족적·과두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야누스적 성격을 갖추고 있기에, 오히려 탁월함과 선거는 반민주주의를 위한 담론적·제도적 기예(技藝)로서는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 됩니다.

근대와 현대, 그들의 악령에서벗어났는가?

2천여년간 인류지성사를 지배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분적·계급적 세계관은 근대에 이르러 폐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근대에 그들의 탁월성과 혼합 원칙도 폐기되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반민주적 정치철학(탁월성 원칙)은 근대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고, 그들의 정치공학(혼합 원칙)은 오히려 근대에 이르러 실제 정치현실로 제도화 되었습니다.

홉스로부터 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근대 정치사상가들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바탕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훌륭한 인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치를 전담하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에 이롭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2천년전 플라톤이 탁월성이라고 부르던 것입니다. 근대 정치엘리트들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는데, 2천년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반민주주의를 위하여 구상했던 혼합 정체를 빌려왔습니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그들은 선거에 기초한 대의정부를 수립했는데, 이는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계층에만 선거권을 부여하고, 극소수 귀족과 부유층에만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정치체제였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시민의 정치적 평등이 완벽히 실현된 현대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민주적 악령이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많은 정치학자들은 현대 민주체제는 시민들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전문가·관료가 지배하는 체제라고 말합니다.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란 사실상 여러 엘리트 블록 중 한 블럭을 선택하고 그들의 결정을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보다 똑똑하고 유능하고 중립적인 엘리트·전문가·관료들에 대한 시민들의 착각과 기대는 사그라들기는컨녕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대기업과 국제 자본의 정치적 중요도와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이제는 그들의 입김에 따라 민주 정부의 성패가 좌우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대기업이나 국제자본 이데올로그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정치는 물론 행정, 문화, 교육, 복지 등 모든 사회 부문들이 기업과 시장의 기준에 맞추어 다시 재편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힙니다. 이에 따라 정치적 평등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포획되어 점점 그 가치와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민주적 기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벗어났는가?

2천여년간 인류지성사를 지배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분적·계급적 세계관은 근대에 이르러 폐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근대에 그들의 탁월성과 혼합 원칙도 폐기되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반민주적 정치철학(탁월성 원칙)은 근대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고, 그들의 정치공학(혼합 원칙)은 오히려 근대에 이르러 실제 정치현실로 제도화 되었습니다.

홉스로부터 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근대 정치사상가들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바탕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훌륭한 인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치를 전담하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에 이롭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2천년전 플라톤이 탁월성이라고 부르던 것입니다. 근대 정치엘리트들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는데, 2천년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반민주주의를 위하여 구상했던 혼합 정체를 빌려왔습니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그들은 선거에 기초한 대의정부를 수립했는데, 이는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계층에만 선거권을 부여하고, 극소수 귀족과 부유층에만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정치체제였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시민의 정치적 평등이 완벽히 실현된 현대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민주적 악령이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많은 정치학자들은 현대 민주체제는 시민들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전문가·관료가 지배하는 체제라고 말합니다.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란 사실상 여러 엘리트 블록 중 한 블럭을 선택하고 그들의 결정을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보다 똑똑하고 유능하고 중립적인 엘리트·전문가·관료들에 대한 시민들의 착각과 기대는 사그라들기는컨녕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그와 더불어 대기업과 국제 자본의 정치적 중요도와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이제는 그들의 입김에 따라 민주 정부의 성패가 좌우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대기업이나 국제자본 이데올로그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정치는 물론 행정, 문화, 교육, 복지 등 모든 사회 부문들이 기업과 시장의 기준에 맞추어 다시 재편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힙니다. 이에 따라 정치적 평등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포획되어 점점 그 가치와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민주적 기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