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가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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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가 도대체 뭐지?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5.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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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의 의미와 기원, 과거, 현재 (1)

현대의 우리에게 공화주의(共和主義, Republicanism)는 너무나도 낯선 이념입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이 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와 정치엘리트들은 공화주의 신봉자임을 자처했습니다. 이런 공화주의는 거의 1백여년 사이에 완전히 잊혀진 이념이 되었지만, 현대의 소수의 몇몇 정치학자와 정치인들은 공화주의의 부활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공화주의란 무엇일까요? 도대체 공화주의가 무엇이기에 지난 2천여년간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와 정치인들을 사로잡았을까요? 철 지난 것으로 취급되던 공화주의가 지금에 이르러 다시금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키케로(BC106∼43), 그는 고대 로마공화정 말기의 공화파 정치인이었다.(왼쪽) 마키아벨리(1469∼1527), 그는 대표적인 공화주의 정치사상가이다.
키케로(BC106∼43), 그는 고대 로마공화정 말기의 공화파 정치인이었다.(왼쪽) 마키아벨리(1469∼1527), 그는 대표적인 공화주의 정치사상가이다.

 

공화주의적 자유 vs 자유주의적 자유

공화주의는 기본적으로 1) 자유, 2) 법의 지배(법치주의), 3)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 4) 공공선을 우선하는 시민덕성을 핵심으로 합니다. 여기서 공화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공화주의적 자유)는 근대에 등장한 자유(자유주의적 자유)와 그 의미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고중세의 공화주의자들에게 자유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의사와 이익을 공동체의 의사결정 절차에 투영하거나 그 절차에서 상대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을 갖는 상태(예속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근대에 등장한 자유주의적 자유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간섭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고대적(공화주의적) 관념과 근대적(자유주의적) 관념의 차이에 대하여 가장 명쾌하게 구분하여 설명한 사람은 콩스탕(Benjamin Constant)입니다. 그는 1818년 프랑스 왕립협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 둘 간의 자유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며, “고대인들은 한 국가 내의 모든 시민들에게 권력이 분배되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며 그들은 이것을 자유라고 생각했다. 근대인들의 목표는 각자의 사적 소유에 대한 보장이다.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제도에 의해서 획득된 이 소유의 보장을 일컫는다.… 계속적으로 집단적인 권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형성 가능했던 고대인들의 자유를 오늘날의 우리들이 누린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 반대로 우리들의 자유는 사적인 독립을 평화롭게 추구하는 가운데 놓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고중세인들은 공동체의 의사결정과 집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자유(공적·정치적 자유)라고 인식하였던 반면, 근대인들은 공동체나 공적권력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사적 영역에 대한 보장이라는 의미로 자유(사적·비정치적 자유)를 인식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정치에 대하는 태도에서 근본적 차이를 낳습니다. 근대 자유주의자들은 ‘공적 권위가 끝나는 곳에서 자유가 시작된다’, ‘정치와 권력이 간섭하지 못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자유가 넓어진다’는 식으로 사유합니다. 그러나 고중세 공화주의자들은 그와 정반대로, ‘공적인 일이나 정치에 참여할 때만이 자유롭다’, ‘공적·정치적 영역이 넓어질 때 자유가 넓어진다’고 사유합니다.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공화주의의 나머지 핵심 가치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를 위해서는 우선 군주나 독재자의 자의에 따라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공적 권리와 권한이 보장되는 법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일관성 있게 통치가 행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시민들은 공적인 일이나 정치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갖추어야 할 뿐더러, 공동체의 안정과 성장, 시민의 의무 등을 중시하는 시민 정신과 시민 문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공화주의의 기원
아리스토텔레스 vs 고대 로마공화정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 원칙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고, 고대 로마공화정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집단이나 계급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귀족정, 과두정과 민주정을 거부하고, 귀족적·과두적 요소와 민주적 요소를 절충하여 여러 계급이 권력을 분점하는 혼합 정체만이 정치적 안정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 원칙은 나중에 로마로 건너가 ‘공화주의’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공화주의라는 말 자체는 로마공화정 말기 공화파 정치인이었던 키케로(Cicero)가 국가를 ‘공공의 것(res publica)’으로 정의한 데서 유래합니다.

고대 로마는 제국이 되기 전 약 5백여년 동안 공화정체였습니다. 고대 로마공화정에서 중요한 정치기구는 집정관(Consul), 원로원(Senatus), 그리고 민회(Comitia)에서 선출된 호민관(Tribunus Plebis)이었습니다. 집정관은 왕정시대의 군주를 대신한 최고위 행정관직으로 동등한 권한을 가진 2명(임기 1년)으로 구성되었는데, 원로원에서 선출되었습니다. 원로원은 300명 정도의 종신 귀족들로 구성되었는데, 민회에서 통과된 법령에 대한 재가·고위직 승인·재정 등의 막강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호민관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민회에서 2∼6명(임기 1년)이 선출되었는데, 귀족들로부터 평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시민의 대변기구였습니다.
 

필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졸업후 우연히 고시공부를 하게 되어, 사법고시, 행정고시, 지방고등고시 3과에 합격했다.10여년 검사,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대학시절 공부했던 정치학에 미련이 남아,현재는 법조현장에서 물러나 공증인 일을 하며, 정치와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HCN충북방송 정치시사 토론프로그램(리얼토크 한판)에 고정패널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졸업후 우연히 고시공부를 하게 되어, 사법고시, 행정고시, 지방고등고시 3과에 합격했다.10여년 검사,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대학시절 공부했던 정치학에 미련이 남아,현재는 법조현장에서 물러나 공증인 일을 하며, 정치와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HCN충북방송 정치시사 토론프로그램(리얼토크 한판)에 고정패널로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로마공화국은 귀족과 평민 계급간, 그리고 집정관·원로원·호민관 3개 기구간 권력분립과 상호견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인의 후예인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로마사 논고≫에서 이러한 고대 로마공화정을 최상의 정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고대 로마가 단기간에 도시국가에서 세계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이러한 혼합 정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위 세 정치세력이 안정기에는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분란과 부패를 방지하고, 위기시에는 서로 협력과 조화를 통하여 모든 구성원의 힘을 모아 낼 수 있어, 로마의 위대한 성취가 가능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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