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가 도대체 뭐지?
상태바
공화주의가 도대체 뭐지?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6.02 1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화주의의 의미와 기원, 과거, 현재 (2)

전회에서 : 공화주의는 시민들의 적극적 정치참여와 정치세력·계급간의 권력분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공화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원칙이나 고대 로마의 공화정체에서 유래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공화주의 이념에서 고대 아테네적 전통과 고대 로마적 전통 간에 일정한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고대 아테네적 공화주의는 그 기원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시민이 완전한 존재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의 정치참여의 본질적(고유한) 가치를 강조하고, 계급·정치세력간 대립과 갈등보다는 조화와 통합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고대 로마공화정은 시민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정치참여의 수단적(도구적) 측면을 강조하고, 각 집단·계급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서로 간의 대립과 긴장,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상대방의 일방적·자의적 지배를 저지할 수 있다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전자가 정치참여 그 자체를 자유의 실현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정치참여(이를 통한 권력분점과 상호견제의 확보)를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자 간의 차이점이 있기에, 학자에 따라서는 전자를 강력한·계발적 공화주의, 후자를 도구적·보호적 공화주의라고 분별하기도 합니다. 마르실리우스·루소·밀이 전자의 경향이 짙다면, 마키아벨리·몽테스키외·매디슨·토크빌은 후자의 경향이 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 원로원
고대 로마 원로원

 

공화주의의 정치적 속내는?

그렇다면 공화주의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어떠할까요? 공화주의자들은 군주·과두·민주정체 모두를 거부합니다. 이는 특정 개인(군주)이 자의적으로 지배하거나 특정 계급(귀족과 부유층 / 노동자와 빈민)이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공화주의적 자유 관념에 따라, 전통적으로 공화주의는 귀족적·과두적 요소와 민주적 요소를 절충하는 혼합 정체나 군주·귀족·시민이라는 3계급이 권력을 분점하는 공화정체 주장으로 연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시민’은 현대의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다른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주의자들이 말하는 시민이란 상인·수공업자·농민과 같이 일정 재산을 소유한 계층에 한정되는 것이고, 사회경제적 자립의 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와 빈민(여성과 노예도 당연)은 시민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마키아벨리를 거쳐 근대의 토크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말하는 시민은 항상 유산자 계급에 한정되는 것이었습니다. 무산자 계급은 자유를 가질 능력도 없고, 재산이 없어 공동체의 안위와 번영에 이해관계가 없기에, 정치적 시민권이 주어질 이유가 없는 존재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둘째 그들이 내세우는 혼합 정체(공화정체)는 기본적으로 귀족계급의 지위와 이익을 위한 정치체제입니다. 귀족계급은 이를 통하여 군주와 시민에 맞서 자신들의 계급적·정치적 특권을 지속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앞서와 같이 자유와 정치적 시민권이 재산 소유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공화주의자들의 논리대로라면, 가장 많은 재산을 소유한 계층인 귀족계급에게 가장 큰 자유와 정치적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공화주의와 혼합 정체(공화정체)는 반민주적·귀족적 이념이자 정체였습니다. 그렇기에 고대부터 근대 토크빌에 이르기까지 2천여년동안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와 정치인들로부터 공화주의가 찬양을 받았던 것입니다.

현대 공화주의의 부활, 무엇이 문제인가?

19세기 중반 이후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이념이 득세하면서 공화주의는 잊힌 이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우파는 물론 일부 좌파에서도 공화주의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공화주의를 거론하는 정치인들이나 정치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파 정치인인 유승민 의원과 좌파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과거의 입장)가 있습니다. 왜 지금 공화주의가 다시 부상할까요? 개인주의·이기주의·정치적 무관심·법과 권위에 대한 불신·시민윤리 실종 등 현대 자유민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민들의 자유와 그 반대편의 시민들의 의무, 책임·공공 의식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공화주의가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공화주의자들에게서 고중세에 전가의 보도와 같았던 혼합 정체(공화정체)와 같은 주장은 없습니다. 귀족계급의 특권을 전제로 한 이런 정체는 민주주의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현대 공화주의자들의 최대 약점이기도 합니다. 현대 공화주의자들은 유구한 철학적 토대와 화려한 수사로 무장되어 있으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과거의 혼합 정체(공화정체) 수준에 걸맞은 현실적·제도적 대안은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공화주의는 계급적·반민주적 함의를 가져 이미 오래전에 퇴출된 이념입니다.

그런 공화주의를 현대사회 문제, 특히 단지 시민들의 의무나 책임·공공 의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굳이 다시 부활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예컨대 공화주의가 주장하는 법치주의·권력분립·견제와 균형과 적극적 정치참여·정치적 책임성·공공선의 추구 등은 각각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원리의 재조명을 통하여도 충분히 도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필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졸업후 우연히 고시공부를 하게 되어, 사법고시, 행정고시, 지방고등고시 3과에 합격했다.
10여년 검사,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대학시절 공부했던 정치학에 미련이 남아,
현재는 법조현장에서 물러나 공증인 일을 하며, 정치와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HCN충북방송 정치시사 토론프로그램(리얼토크 한판)에 고정패널로 참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