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도대체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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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도대체 어떻게 다른가?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6.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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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 의미와 역사적 관계 (1)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치용어 중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헌법에도 우리의 헌정질서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해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강연에서 “그냥 민주주의라고 하면 되지, 왜 그 앞에 자유라는 말을 붙일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앞의 자유는 그냥 민주주의에 사족처럼 붙인 것”이라거나 “사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자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른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민주주의에 그냥 사족처럼 붙인 것도 아니고, 사회민주주의와 대립적 의미로 사용하고자 자유라는 접두사를 붙인 것도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정확히 말하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용어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이렇게 묻자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전혀 별개의 개념입니다. 우리말로는 모두 ‘주의(主義)’라는 접미사가 붙어 있어 그 차이점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어로는 양자가 차이가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Liberalism’, 민주주의는 ‘Democracy'로, 자유주의는 ‘-ism(이념)’, 민주주의는 '-cracy(정체)’라는 접미사가 붙습니다. 자유주의는 정치이념 중의 하나이고, 민주주의는 정치이념이 아니라 정치체제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민주주의라는 말보다는 민주정체라는 말이 합당하는다는 정치학자도 있습니다). 결국 양자는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은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의 수중에 있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들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고 답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소수만이 권력을 갖는 군주정이나 귀족정, 과두정과 대립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처럼 정치권력의 귀속이나 형성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문제로 삼은 것이 아닙니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의 범위와 한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고, 이에 대하여 자유주의는 그것이 제한되고 통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근대 초기에 있었던 절대주의는 자유주의와 상반되는 것입니다. 절대왕권은 그 힘의 행사에서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국왕 마음대로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억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헌정질서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에 근거한 규정과 자유주의에 근거한 규정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국민주권(주권재민) 규정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들의 정치적 기본권,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제도, 지방자체제도 등은 민주주의에 근거한 규정이고, 헌법에 규정된 시민들의 여러 자유권, 사유재산제도의 보장, 법치주의와 사법부독립 등은 자유주의에 근거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헌법 조항은 제37조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므로, 이론적·현실적으로 민주주의 없는 자유국가, 자유주의 없는 민주국가도 가능합니다. 절대군주가 시민들에게 패배하여 시민들의 포괄적인 자유와 재산권을 지키겠노라 서약하고 이를 따르는 입헌군주가 된다면 민주주의 없는 자유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나치 정부는 나치당이나 군부의 쿠데타가 아니라, 국민들의 투표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성립된 정부였습니다. 그러나 집권한 나치 정부는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말살했습니다. 초기의 나치 정부는 자유주의 없는 민주정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기에, 이론적으로 양자를 끼워 맞추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실제 역사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양자는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보비오(Norberto Bobbio)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대립적 / 병존적 / 필연적 관계로 발전하여 왔다고 말합니다.

 

대립적 / 병존적 / 필연적 관계로 발전해 와

자유주의 이념은 근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로크와 루소 등이 정립한 근대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 합니다. 그러한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최대의 위험 요소는 국가권력입니다. 따라서 그 국가권력은 제한받고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유주의는 새로이 등장하는 상인, 제조업자와 엘리트들 사이에 급속히 확대되었고, 자유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17∼8세기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민중들을 동원해 절대왕권을 무너뜨리는 시민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을 곧바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무력에서 앞서는 절대왕권과 싸워 이기기 위해 민중들을 동원했고 그들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했지만, 자유주의자들에게 혁명과정에서 활성화된 민중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2천년 전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중들에게까지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그 민중들이 무지와 탐욕으로 부유층의 재산을 약탈하고 엘리트의 권위를 모독하기에 오래 존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근대의 자유주의자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자유와 평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립적인 것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왕정의 부활을 막으면서 동시에 민중권력의 공포로부터도 벗어나는 정치제도로 무엇이 있을까요?

이런 딜레마에 빠진 근대의 자유주의자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대의정부’, ‘공화정’이었습니다. 시민들의 대표가 참여하고 통제하는 제한적인 정부를 만들되, 그 참여자나 대표자를 일정한 신분과 재산을 가진 자들로 한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민주주의 없는 자유주의 정부를 수립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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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졸업후 우연히 고시공부를 하게 되어 사법고시, 행정고시, 지방고등고시 3과에 합격했다.
10여년 검사,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대학시절 공부했던 정치학에 미련이 남아,
현재는 법조현장에서 물러나 공증인 일을 하며 정치와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HCN충북방송 정치시사 토론프로그램(리얼토크 한판)에 고정패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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