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종 충북도지사 “최선을 다했다.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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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종 충북도지사 “최선을 다했다. 후회는 없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2.06.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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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말이면 민선7기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민선7기를 풍미했던 사람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이제 8기의 주역들이 등장할 것이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건 세상의 이치다. 3선의 이시종(75) 충북도지사도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시종 도지사는 행정공무원이었으나 일찌감치 정치에 뛰어들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는 3선 충주시장, 재선 국회의원, 3선 충북도지사를 역임했다. 선거에 출마해 8전8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그럴까. 이 지사는 퇴임 소감을 시원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가 퇴임 후에는 또 무슨 일을 할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으나 그는 “쉴 것이다. 일 안한다”고 답했다.

이 지사는 1947년 4월 충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주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도전해 합격했다. 이후 충북도 법무관, 강원 영월군수,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심의관을 거쳐 1995년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 때 정치인이 된 후로 2018년 충북도지사 선거까지 줄곧 당선됐다. 지난 10일 이 지사를 만나 그의 인생 얘기를 들었다.

- 최근에 <오직 일로써 승부하다, 8전8승 이시종의 비결>이라는 책을 펴냈다.“이시종의 공직 50년 실록이다. 책을 내기 위해 3년 동안 준비했다.”

- 사람들이 8전 8승의 비결이 뭔지 가장 궁금해 할 것 같다.
“선거는 ‘운7기3’이라고 하는데 ‘기3’을 다하는 자에게 ‘운7’이 따른다. 쌀 한 톨 주워담는 심정으로 표를 구하고, 몸으로 선거운동을 해줄 일당백 참모들을 구해야 한다. 항시 유권자의 말을 많이 듣고, 대화 도중에는 휴대폰을 만지지 마라. 중도층을 잡고, 지난 번 선거 때 반대편에 섰던 사람을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지사는 특별한 비결이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쉽게 이긴 것 같지만 그는 매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쉬운 선거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이 정도로 패할 줄 몰랐다고 덧붙였다.

- 임명직 23년, 선거직 27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1971년 충북 법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만 50년 됐다.” 이 지사는 <토박이 이시종의 충북생각>이라는 책에서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라는 시골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초등교사를 꿈꾸며 충주사범병설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3학년 때 5·16 쿠데타가 일어나 학교가 없어졌다. 교사 꿈을 접고 청주고에 진학했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셔 대학을 포기하고 소를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서울대에 들어간 동창생 편지를 받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재수해서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썼다. 결국 충주사범병설중학교가 문을 닫아 공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 사람들이 ‘일 중독자’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일에 매달렸나
“일 말고는 특별히 다른 취미가 없다.”

- 5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3선 충북도지사도 막을 내린다. 정말 섭섭한 점은 없는가. 혹시 아쉬운 점은?
“충북의 인재를 키우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충북은 현재 사회 각분야 인재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충북에도 영재고, 국제고, 자사고가 생겼어야 한다. 다른 지역에는 이런 학교들이 몇 년전에 들어섰는데 충북에는 한 개도 없다. 다른 지역에 있는 한 우리도 있어야 한다. 평준화 교육과 수월성 교육을 동시에 할 필요가 있다. 충북의 상위 1%에 해당하는 우수학생들은 다른 지역 영재고, 국제고, 자사고 등지로 빠져 나가고 다른 지역 우수학생들은 우리지역으로 오지 않는다. 지금 중앙부처에도 충북출신 공무원이 없어 힘들다. 사업을 하려면 중앙부처에서 예산을 따와야 하는데 부탁할 사람이 없다.” 이 점은 충북도지사와 도교육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됐고 1995년 첫 민선단체장 선거에 나갔다. 선출직에 나가게 된 동기가 있었나
“1994년 내무부 지방기획국장 발령을 받았다.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고 다음 해 선거준비 총책임을 맡았다. 전국 시군통합을 하고 광역시도 만들었다. 자치단체장 3선 연임제한 규정도 내가 만들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내가 만든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된건지 실험하고 싶었다. 또 하나는 침체된 내 고향 충주시를 변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속도로, 광역상수도, 쓰레기매립장, 하수처리장 같은 도시기반시설 한 개 없이 절간처럼 조용한 충주시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 12년 충북도정의 성과를 꼽는다면?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 비전 제시, 바이오 등 6대 신성장산업 유치, 강호축 제시, 중부고속도로 확장 추진, 오창 방사광가속기 유치, 한화솔루션 등 세계 최대 태양광 제조공장 유치, 청남대 상수원보호구역 완화 등을 들 수 있다.”

- 세계무예마스터십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가. 도민들 사이에서는 반대여론이 많다.
“세계무예올림픽을 만들고, 무예산업을 일으켜 국부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충북이 무예성지로 자리매김하고 무예와 관련된 각종 산업을 일으키면 좋겠다. 그냥 행사만 하자는 게 아니다.” 이 지사는 WMC(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퇴임 후에도 당분간 이 지사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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