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진실을 전하는 사람
상태바
명백한 진실을 전하는 사람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2.07.20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20년간 기록한 박만순 씨
전국 다니며 피해자 이야기 수집, 최근 '박만순의 기억전쟁2'펴내
박만순 씨는 역사의 숨은 기록자다. 국가폭력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만행을 지난 20여년간 기록하고 책으로 엮고 있다.
박만순 씨는 역사의 숨은 기록자다. 국가폭력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만행을 지난 20여년간 기록하고 책으로 엮고 있다.

 

그는 ‘기억전쟁’시리즈를 꾸준히 내고 있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는 박만순 씨(57)는 2018년부터 휘몰아치듯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있다. 

2018년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책 『기억전쟁』을 출간한 바 있으며, 2020년엔 대전형무소 집단 학살을 다룬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펴냈다. 이어 2021년 해남, 완도, 경주 지역 학살 피해자를 기록한 『박만순의 기억전쟁1』이 나왔고, 최근엔 충청남도 홍성, 태안, 아산 지역을 다룬 『박만순의 기억전쟁2』가 나왔다. 44명의 피해자와 유족들의 삶을 책에 담았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사람들

이번 책은 후원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고두미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 저자는 내년엔 『박만순의 기억전쟁3』 를 낸 뒤, 이제는 특정 시대, 인물 중심의 책을 쓸 것이라고 밝힌다. 

예를 들어 ‘영동군 한국전쟁사’를 써 볼 참이다. 영동군은 일제강점기 혁명적 노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었다. 또 조선공산당의 총수였던 박헌영이 월북한 뒤 그 다음 총수를 지낸 충주 엄정면 출신의 ‘김삼용’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려고 한다. 

박만순 씨는 지난 20여 년간 전국을 쫓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 구슬픈 기록을 이어나갔다. 사실 아무런 대가도 없는 일이었다. 

2002년 전국에서 6.25전쟁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자는 여론이 있었고 시민단체 중심으로 연대기구들이 꾸려졌다. 그는 운명처럼 충북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후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면서 그는 ‘위원장’타이틀을 선거에 내세웠다. 2005년 일명 과거사법이 제정되면서 이를 주장하던 연대단체들은 해산했다. 그는 ‘위원장’직을 맡았지만 이와 관련해 별다른 활동을 못 한 것이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 후 그는 ‘속죄하듯’ 무작정 사람 들을 찾아다녔다. 당시 민간인 학살 피 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조차 두려움에 떨던 시기였다. “하루를 꼬박 설득해도, 그 다음 날 아내가, 남편이 반대한다며 손사래를 치면서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평생 연좌제에 시달리다 가 겨우 숨 쉬고 살게 됐는데 이를 알리면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설득했다. 무엇보다 피해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피해자 지원은 ‘신고제’이기 때문에 피해사실을 직접 작성해야만 일정액의 국가보상금을 유족이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충북 영동, 단양, 오창 등 충북지역을 다니며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들의 기억을 붙들고 ‘서류’를 쓰는 것을 도왔다. 그 당시 충북지역에 약 900명의 서류가 제출됐는데 그 중 박 씨의 손을 거친 서류가 약 500건 정도였다고 한다. 

전국 곳곳을 누볐다

“충북엔 약 87곳의 학살지가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들이 쓰러져 갔 는지 지난 20년간 숱하게 돌아다니며 기록했다. 50년, 51년 당시 충북인구가 130만명이었는데 약 8000명이 보도연맹사건을 비롯한 각종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추정할 수 있다. 100%의 완벽한 기록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60~70% 의 진실성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트럭을 타고 실려 갔다고 하면, 트럭에 올 라탄 숫자가 보통 25~30명이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계산할 수 있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약 240편의 기사를 연재했다. 적어도 240~300명의 유족들을 만나 인터뷰한 기록이었다. 

“역사에서 잊힌 존재, 아무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이들을 꺼내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거시사로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미시사로 접근한 것이다. 역사의 진실규명은 결국은 피해자의 기억을 꺼내고 남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들 을 위한 마지막 명예회복이라고 본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숙제는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다. 박 씨는 “요즘엔 메타버스 등 신기술이 많이 도입돼 현장을 바로 찍으면 과거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사실 현장에 어떠한 조형물과 기념비를 세우는 것보단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사건을 조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가 현장을 다니며 취재한 수많은 기록들은 아직 잠자고 있다. 변환하지 못한 옛 필름들이 그대로 쌓여있다.

“언젠가 가칭 ‘기억도서관’을 설립해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기록도 영상도 꺼내보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공적인 후원자가 나타난다면 모든 기록을 기증할 계획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1명 이상 유족들을 만나 피해자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는 사람. 그에게 이 일은 ‘수행’이고 끝나지 않는 전쟁과도 같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박만순의 기억전쟁’시리즈는 72년전 우리가족과 이웃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했던 전쟁과 인권침해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해냈다”고 평했다. 

안재성 소설가는 “박만순의 장점은 사실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박만순은 어떤 특정 사상이나 이론 혹은 편견에 빠지지 않고 명백한 진실만을 냉철하게, 따뜻하게 기록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