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좋아지게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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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지게 만들려면
  •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 승인 2022.07.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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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서정민갑

세상은 좋아지는 걸까. 안 좋아지는 걸까. 이따금 반복하는 질문이다. 2022년의 세계는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빠지는 걸까. 어떤 책은 세상은 점점 나빠진다는 건 거대한 오해라고 말했지만, 정말 오해일 뿐일까.

가령 지구의 자연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제는 사형제를 폐지하는 나라가 많고, 태형을 가하는 나라는 줄었다. 여성의 인권은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이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삶은 훨씬 편리해졌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인구 역시 늘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기후위기, 경제위기, 식량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남 수단, 동티모르, 마다카스카르, 모잠비크,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차드, 콩고 같은 아프리카 나라의 경우 국민의 3분의 1 이상이 극심한 기아 상태라 한다.

전 세계 인구 중 8%가 넘는 7억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으며, 82천만명은 날마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잠들며, 이 중 27천만명은 심각한 상태라 한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어디에선가는 여전히 폭동이 이어진다. 계급, 민족, 인종, 지역 간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당장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낙관주의자인 것일까. 아니면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일까.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보이는 세상이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삶을 모르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고통을 완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내일을 낙관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오래도록 비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가 계속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다. 다른 삶에 대해 들어야 할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삶을 만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사는 곳에 따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진다. 온라인에서는 더더욱 세계관이나 취향이 흡사한 사람들끼리만 만난다. TV와 매스미디어에서는 잘 생기고 재능 넘치며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때가 대부분이다.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도 천재 장애인의 모습만 전문 연기자의 연기로 대신 보여준다. 그 안에는 불행이 없고, 가난이 없다. 가난과 불행은 감추고 피해야 할 모습이다. 오직 근사한 예술작품을 통해 재현할 때만 잠시 관심을 가질 뿐이다.

세상이 좋아진다고 말하려면 이런 태도는 곤란하지 않을까. 돈이 적거나, 못 생기거나, 몸이 아프거나, 다른 삶을 지향한다 해도 위축되지 않는 삶. 그런 삶이라고 조롱하지 않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삶을 조롱하는 사람은 외면당하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는 다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일에 거침이 없다. 그런 세상에서는 모든 게 당연한 권리가 되어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내놓을 게 없다. 자랑할 게 없다. 사람들은 가난한 옛 동네까지 와서 거침없이 사진을 찍어대고 소셜미디어에 올리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을 권리조차 빼앗겨 버렸다.

심지어 삶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대신, 조롱하고 고발하는 세상이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때는 감동하고 응원하지만 현실에서 만날 때는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말자.

말해야 할 사람들은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사람들은 말하는 세상은 어떻게 아직도 가능한가. 여전히 그런 세상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좋아지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비정하고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러므로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맞서 싸워야 할 사람들 앞에서 입을 닫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좋아지게 만들려면 더 많이 듣고, 더 자주 부끄러워 해도 괜찮다. 자신이 얼마나 몰랐는지, 얼마나 외면했는지, 반성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뭐라도 하지 않는 세상이 좋아진 적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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