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New)아니면 신(Neo)자유주의?
상태바
신(New)아니면 신(Neo)자유주의?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7.27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유주의의 경제적 의미와 역사적 변천과정 (2)

전회에서 : (Neo)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고 시장을 신뢰한다는 점에서 일견 고전적 자유주의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지향과 현실에서는 현저히 다릅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우선 경제적 자유 주장을 보죠.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에게 경제적 자유는 개인적·인신(人身)적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생명, 안전과 자아실현을 위한 만큼의 사유재산과 경제활동을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신(Neo)자유주의자들에게 경제적 자유의 주요한 담지자는 우리의 재벌이나 국제 금융·투기자본과 같은 거대자본입니다. 그들이 중소상인이나 자영업자의 경제적 자유를 말하고자 했다면, 굳이 자유주의 앞에 (Neo)’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려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경제적 자유 관념으로 현대 거대자본의 배타적 소유와 지배권을 정당화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자유의 개념에 포섭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정치권력 담지자가 국가기관의 구성원이나 권한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요구하면서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자유 원리에 따라 정당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 궤변인가요? 이는 정치적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대 자본의 배타적 소유와 지배권 주장은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경제권력 현상으로써, 오히려 이는 제어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참칭하며 경제권력의 문제를 경제적 자유의 문제인 양 오도하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적인가?

 

신자유주의자들의 시장 신뢰도 고전적 자유주의자들과 일정 차이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시장 신뢰는 시장 근본주의에 가깝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원리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이러한 시장의 원리가 본래의 재화·금융시장은 물론 노동시장, 심지어 행정·교육·복지 등 사회 전 분야에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대표적 신자유주의자인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최저임금제, 각종 면허제도, 국가장학금, 사회급여, 의료지원 등을 전면 폐지·축소하고, 이 모두를 약육강식의 시장 원리에 따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도 시장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장을 국가, 사회와의 관계에서 소극적·방어적 범주로 이해했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국가권력의 개입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 시장 원리가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행정·교육·복지 등의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어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신자유주의의 결과는 어떤가요? 신자유주의는 거대자본의 시장 지배력과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 시장의 경쟁성과 공정성의 훼손, 노동자와 서민들의 사회경제적 자유의 축소,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확대,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민주주의의 형해화라는 결과만을 가져왔습니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 관념을 거대 자본의 권력 현상에까지 무제약적으로 확대시키고, 시장의 원리를 공적 영역에까지 공격적으로 확산시켜, 궁극적으로 소수의 경제 권력만을 강화시키고 다수의 사회경제적·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접두어만을 달리하는 자유주의의 하나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애덤 스미스의 교훈

 

고전적 경제자유주의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가 활동하던 18세기에는 지금의 대기업과 국제자본과 같은 거대자본이 존재하지 않고, 소규모 상인과 제조업자들만이 존재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스미스는 이들 상인·제조업자들을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미스는 그들의 경제적 자유를 적극 옹호하지만, 그 자유에는 권력적 본성 또한 내재되어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스미스는 그 권력적 본성으로 그들은 담합과 기만 등의 방법으로 시장 지배자가 되고, 나아가 정치인·관료들과 유착하여 국부증대나 고용증진을 명분으로 정치와 사회마저 지배하려 하며, 그로 인하여 시민윤리와 공공선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스미스는 현대의 우리들에게마저 교훈을 줄 정도로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탁월한 정치경제학자였던 것입니다.

 

동종업자들은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위해서조차 모이는 일이 드물지만, 만약에 그들이 모인다면 그들의 대화는 사회를 기만하거나 가격인상을 담합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 상업상의 어떤 새로운 법률이나 규제에 대해 상인이나 제조업자에게서 나오는 제안은 언제나 큰 경계심을 가지고, 가장 면밀하게, 가장 의심 깊은 주의를 기울여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한 뒤가 아니면 결코 채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 이해가 결코 공공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거나 통상은 공중을 속이고 억압하는 것을 이익으로 생각하는 계층의 사람들, 그리고 또한 지금껏 그렇게 해온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경제적 독점이 어떠한 특정부류의 사람들을 급증시키자, 그들은 정부에 있어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상비군처럼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 입법부를 위협하고 있다. 이 독점 강화를 추구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의원은 실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명성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 수와 부에 의해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된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큰 명성과 영향력을 획득할 것이다. 이에 반해 만일 그가 그들에게 반대한다면, 그는 욕설, 비난, 인신공격, 때로는 격분하고 실망한 독점주의자들의 거친 폭발에서 생기는 진정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입법부는 이런 새로운 종류의 독점을 확립하거나, 이미 확립되어 있는 독점을 더욱 확대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