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쿼바디스(quo v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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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쿼바디스(quo vadis)?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8.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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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의 역사적 변천과 미래의 모습 (2)

전회에서 : 정당은 간부, 대중, 포괄 정당으로 발전해왔습니다. 모든 시민을 대변한다며 오직 선거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포괄정당은 이후 선거전문가·카르텔 정당 등의 성격을 추가하며 진화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접어들며 인터넷과 SNS가 발전하고, 정치가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변질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정당, 정치의 모습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 이탈리아의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유럽 각국의 해적당(Pirate Party) 등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항시적인 시민들의 참여와 토론으로 정당의 정책과 공직후보자를 결정했습니다. 오프라인상의 정당은 폐지되거나 현저히 축소되고, 미리 결정된 당의 목표와 정책이나 정치지향을 공유하는 당원도 없이, 시시각각 변하는 유권자들의 선호에 따르는 극단적인 포괄 정당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와 미국의 트럼프(Donald Trump)처럼 성공한 사업가나 연예인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사례도 점증합니다. 이들은 기존의 정당 기구를 외면하고 개인 조직이나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공직배분이나 이권제공을 약속하며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포퓰리스트적 정책과 전략으로 유권자를 끌어모아 집권하는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당 무용론 vs 대중 정당 vs 유권자 정당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서 정당은 모든 정치적 패악의 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정당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말이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특히 진보쪽에서는 87년 민주화이후에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증하자,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으로 보다 이상적인 대안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커졌습니다. 그들은 지난 세기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참여·숙의 민주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기존의 대의·정당 민주주의를 대체한 시민자치 모델을 주장하기도 하고, 촛불집회·월가점령시위와 같은 시민 직접행동 모델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보 계열의 일부 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당만이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 한국의 최장집 교수와 그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이들 정당 민주주의자들은 시민자치 모델은 고대 아테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시민행동 모델은 제도화는 물론 이를 지속시키기도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현대 정치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풀뿌리로부터 창출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정당과 정치엘리트들에 의한 조직과 리더십의 문제”(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라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이들 정당 민주주의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당 모델은 20세기 전환기에 있었던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대중 정당입니다. 현실에서 이들은 대체로 선명한 당의 목표와 정책·당원 위주의 투표 방식·당 규율의 강화·당원 교육과 외곽기관의 확대·지구당 조직의 존치 및 확대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계열의 정당이론가들은 이들 정당 민주주의자들이 다시 재연할 수 없는 철 지난 모델을 붙잡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앞서 살펴 본 시민사회의 변화와 기술문명의 발달로 현대사회에서 대중 정당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포괄 정당과 선거전문가 정당으로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이들은 정당의 이념적·조직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기제를 약화 혹은 제거하고, 유권자와의 연계와 선거승리를 중시하는 유권자 정당(party of the electorate)’이 오히려 정치발전에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정진민 등, ≪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 대중 정당 부활을 주장하는 진보와 정반대로, 이들은 유연하고 실용적인 당 목표와 정책·당원투표가 아니라 완전국민경선인 오픈프라이머리 채택·당 규율의 완화 및 당내 민주주의 확대·당 조직의 슬림화 등을 선호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요구에 대한 정당의 반응성이 높아지고, 생태나 젠더 등 새로운 이슈에 대한 정당의 수용성과 적응성이 증대되고, 시민사회내 대결이 아닌 합의의 정치문화를 보다 확대하고, 원내정당과 의원들의 자율성을 강화해 협치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당의 올바른 미래는?

 

현대 정치에서 정당을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대의제 대신 시민자치 시대가 도래해도 그렇습니다. 그때도 과거의 파벌처럼 정당은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또한 시민직접 행동으로 엄청난 정치격변이 일어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 제도화를 주도하는 것은, 과거 19604.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의 헌법제정 과정에서처럼, 정당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정당의 모습과 그 위상, 역할은 시민사회와 정치지형 등의 변화에 따라 끈임 없이 변화할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체성과 당원 중심의 대중 정당 모델보다는, 유권자와의 연계와 목전의 선거승리를 도모하는 정당 모델이 보다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유권자와 선거 중심의 정당 모델이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을 위해 더욱 바람직하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정당들은 궁극적으로 중산층의 현재적 요구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적 경쟁체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그것이 득표와 집권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델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대표되기 힘들고, 재벌 개혁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같은 우리 사회의 핵심적 주제들은 단지 수사적으로만 활용되며, 대안적 발전 경로와 같은 궁극적 모색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정치의 제1의 주체인 정당은 단지 중위값 대중의 현재적 요구만을 추수하는 기제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정당이 이런 수동적 역할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국민투표나 여론조사가 더 잘 수행할 것입니다. 정당 적어도 진보정당이라면 정치의 역량과 가능성을 넓히는, 즉 정치 참여자의 범위를 넓히고, 정치가 다루어야 하는 주제를 확대하고, 나아가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역동적 존재도 되어야 합니다. 정당은 이념적·정책적 정체성과 더불어 선거승리를 위한 대중적 확장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 요청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과연 정당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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