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당,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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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당, 어떻게 할 것인가?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8.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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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을 중심으로 (1)

20165월 충주의 한 미용실 원장이 장애인 여성에게 머리 염색을 해주고 52만원을 결제하여 문제가 되었습니다. 도움을 요청받은 장애인 단체와 경찰이 중재에 나섰으나, 미용실 원장은 정당한 요금이라며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수많은 시민들이 분노했고, 여론에 밀린 경찰은 원장의 추가적인 부당요금 청구사례까지 밝혀 원장을 이례적으로 구속까지 했습니다. 같은 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수리용역업체 직원 김모군이 전동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샤츠슈나이더 교수와 ≪절반의 인민주권≫
샤츠슈나이더 교수와 ≪절반의 인민주권≫

 

이 사건은 이전에 있었던 유사사건처럼 김군의 과실로 종결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시간에 쫓겨 일했던 김군의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하여 알려지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추모에 동참했고, 결국은 원청업체와 서울시장의 사과와 법적책임 인정, 스크린도어 수리 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에 대한 폭로, 이전의 유사사건에 대한 재조사에까지 치달았습니다.

 

구경꾼들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한다

 

언론과 SNS을 통한 시민들의 분노와 동참이 없었다면, 이 두 사건은 그 이전의 수많은 사례들처럼 그냥 묻혔을 것입니다. 장애인 여성은 미용전문가인 원장에게, 하청회사의 비정규직이었던 김군의 가족은 거대한 원청업체와 서울시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디 이 사건들만 그랬을까요. 대한항공 땅콩회항과 같은 수많은 갑질사건,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와 산업재해 등에서, 그것이 외부로 알려져 일반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없었다면, 모두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약자들의 일방적 패배로 종결되었을 것입니다.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 교수가 현대 민주정치에서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그의 절반의 인민주권(1960)의 처음은 유명한 구경꾼비유로, 현대 민주정치의 기본 양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싸움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싸움의 중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소수의 개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광경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구경꾼들이다.(그러나)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일은 대개 구경꾼들의 몫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구경꾼은 수나 영향력에 있어 압도적인 존재이다. 또한 그들은 결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갈등이 야기하는 자극과 흥분은 쉽게 군중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정치의 기본적 양상이다.

인간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균열(cleavage)이 존재하고 이러한 균열에 따라 개인적 갈등부터 빈부·지역·세대·종교·이념간 갈등까지 무수히 많은 집단적 대립과 갈등이 생깁니다. 사회경제적 강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갈등을 사적 공간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적 공간에서 우월적인 자원과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자가 강자와의 갈등에서 이기려면 그러한 갈등을 공적 공간으로 끌어내 다수가 참여하여 호응하고 간섭토록 해야 합니다. 약자는 강자와 뒷골목에서 싸우면 항상 지지만, 대로변에서 구경꾼들이 호응하고 편들어주면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강자는 갈등을 사사(私事)(privatization)’하려 하지만, 반대로 약자는 갈등을 사회화(socialization)’ 시켜야만 합니다.

사적인 갈등에서 경쟁자들간 힘의 관계는 언제나 불평등하기 마련이므로, 당연히 가장 강력한 특수이익은 사적인 해결을 원한다. 외부의 개입 없이 갈등이 사적인 채로 남아 있는 한, 강자는 갈등의 결과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공적 권위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이다. 갈등을 사회화하고자 하는 사람들, 즉 힘의 균형이 변할 때까지 더욱 더 많은 사람을 갈등에 끌어들이고자하는 사람은 약자이다.

학교 교정에서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사람은 골목대장이 아니라 힘없는 작은 소년이다. 선생님이 관여하게 되면, 교정에서 나타났던 힘의 균형은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공적 권위의 기능은 갈등의 범위를 넓혀 사적 권력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적 대립을 사회화시키고 집단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적인 정치적 기제는 바로 정당입니다. 전통적으로 개개 국가 특유의 정당체계는 이러한 사회적 균열과 갈등의 반영물로 보아왔습니다. 즉 빈부 차이, 지역 분열, 종교 차이 등 사회내의 주요한 갈등축을 따라 한 나라의 정당과 정당체계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샤츠의 특별한 점은 여기서 나아가 1)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경쟁적·역동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2) 정당을 단순히 이러한 갈등의 수동적 반영자로 이해하지 않고 적극적 개입자 내지는 형성자로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샤츠 정치학의 핵심 : 갈등과 정당

 

샤츠는 갈등도 경쟁성과 역동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갈등을 사회화·정치화할 수도 없고, 모든 갈등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도 없습니다. 갈등들도 서로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어떠한 갈등이 주요한 갈등으로 대두되면 여타의 갈등은 억압되거나 주요한 갈등축을 따라 부차적이거나 종속적인 것으로 편제됩니다. 예컨대 지역갈등이나 이념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그 내부의 빈부·도농·남녀 등의 갈등은 묻혀지거나 사소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또한 갈등은 역동성을 갖고 있습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갈등에의 참여자가 확대되면 본래의 갈등의 내용과 성격도 변하여, 전혀 새로운 갈등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백인경찰의 흑인용의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흑인폭동으로 발전하여, 엉뚱하게도 아시아 출신 이민자에 대한 약탈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어떤 빈민가족의 생활고에 따른 자살이 SNS를 통해 왜곡되어, 이주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배척 주장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본래의 갈등의 주체는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고, 경찰의 불법행위나 사회복지정책의 미비에 대한 비판이라는 본래의 갈등의 예상되는 진로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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