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기자의 '무엇'] 북촌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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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의 '무엇'] 북촌에서의 하룻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2.09.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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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국장

10년 만에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늦은 금요일 밤 도착한 북촌의 길은 미로 같았다. 경사도가 높은 데다 주거지이기 때문에 발걸음도 사뿐사뿐 떼야 했다. 좁다란 골목길도 여러 번 마주친 다음에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다세대 주택과 한옥, 그리고 70년대 산업화 시기 지어진 낡은 주택들이 뒤섞어 있었다.

한옥의 매력은 중정이다. 다음 날 아침 중정에서 바라본 하늘과 주인장이 기르는 식물들은 햇살에 더욱 반짝거렸다. 그럼에도 주거의 공간으로 볼 때 북촌은 상당히 불편한 곳이다. 주차도 그렇거니와 밀려드는 관광객, 그리고 높은 경사도 때문이다. 그래도 인왕산이 저 멀리 보이고, 북촌에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상점, 카페 등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거의 공간으로 봤을 때와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의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북촌에서 만난 한 카페 사장은 한눈에도 외부인처럼 보이는 우리 일행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청주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은 청주와 충주가 헷갈린다고 했다.

청주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금속활자본 직지를 인쇄한 곳이라고 줄줄이 설명하다가 말을 멈췄다. 그는 청주 수암골을 한번 와 봤다고 했다. 관광지가 돼버린 수암골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이곳 북촌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갈등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그러고 보니 한옥 중심 거리엔 이곳은 주거 공간이니 소음을 조심해달라는 글이 적힌 조끼를 입은 안내자가 서 있었다. 그러면서 카페 주인은 청주와 북촌이 다른 점이 뭔지 아세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부자라는 거에요. 한옥마을이 되면서 숙박시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고요. 거기 분들은 너무 안타깝더라고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순간 할 말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청주의 유일한 관광지였던 수암골. 지금은 드라마가 이미 방영된지도 세월이 훌쩍 넘어 찾는 이들도 줄어들고 있다. 한 때 성업을 이뤘던 카페들도 시들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관광지라는 게 결국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어디나 그렇다. 몇 년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간 적이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사진찍기가 바쁜 그곳 호기심에 골목길을 일부러 파고든 적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환경은 참 열악해보였다.

창문이 작아 햇빛이 부족해 빨래는 건물 외벽에 늘어놓았다. 그 속에서 동양인 아줌마를 발견한 아이들은 신나게 재잘거렸다. 어떤 이는 에디트삐아프의 샹송을 틀어놓았다. 창문 속 그 여인은 사랑의 찬가를 구슬프게 따라불렀다. 순간 의도치 않게 그녀의 사적 공간을 탐한 것 같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구석으로 향하면 진실이 보인다. 때로는 그 진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다. 청주는 외부인들에게 어떠한 모습일까. 노잼도시, 꿀잼도시라는 가벼운 서사가 아닌, 본질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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