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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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은 없다
  •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 승인 2022.09.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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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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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요즘 사람들은 삶에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지금 자신의 성격을 만들고,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한 유일무이한 사건이랄까.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삶을 완성해버린 절대적인 때가 있다고 믿는 이들이 다수인지 TV에 나오면 그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토크 프로그램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 때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어떤 사건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그런데 그동안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다고 눈물 흘리며 고백한다.

그러면 곁에 있는 이들은 그제야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다. 당연히 자막으로는 참았던 눈물운운하는 문장이 떠야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 깊숙이 묻어두었던 결정적인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관람하는 것 같다. 그 때마다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 아는 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지금 세상이 비밀이 없어진 시대라는 이야기를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들 일기장에 쓸 것 같은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미주알고주알 써놓는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보여주고, 부부나 자녀들의 문제를 털어놓으며 상담하는 프로그램이 한 둘이 아니다. 심지어 부부의 섹스 트러블까지 거침없이 고백하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어지간한 이야기는 놀랍지도 않다.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의 진실한 서사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현대인은 더 재미있는 이야기, 더 새로운 이야기에 중독된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사실 누구도 한 번 이상의 삶을 살 수 없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이의 삶이 궁금한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 한 번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만약 갑자기 암에 걸렸다거나, 로또에 당첨되었다면 삶이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벼락 맞는 일보다 어렵다. 무엇보다 스스로 단번에 삶의 방향을 바꿀 만큼 단호한 사람이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운동할 시간이 되면 수없이 많은 핑계를 대면서 미루고 미적거리며 살아간다.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먹는 걸 줄이지 못하고, 담배조차 쉽게 끊지 못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자신을 바꾸는 일이 더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사람이 그만큼 좀처럼 변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 역시 단번에 바뀔 만큼 만만하지 않다. 가령 돈을 많이 번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대동소이한 즐거움과 고통의 롤러코스트에 강제로 태워진 채 평생 내리지 못하고 견디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동안 만나게 되는 기쁨과 슬픔의 양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지간해서는 비상하지 않고 전락하지 않는다. 날마다 무언가에 몰두해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는 그렇게라도 일상의 변화를 경험하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삶은 전과 후가 단번에 바뀌는 결정적인 경험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이렇게 말고 저렇게 해보면 달라질까 싶어 망설이고 망설이는 시간,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는 시간, 달라질 줄 알았는데 별반 다르지 않는 시간, 그런데도 견디는 시간,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간이 훨씬 잦고 길다. 그러므로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찾는 일을 중단하자. 그보다는 자신의 루틴이 무엇인지, 그 루틴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이야기 하는 게 한 사람의 내면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은 무수한 하루의 연속이며 연결이며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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