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철거논쟁 끝 살아남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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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철거논쟁 끝 살아남은 건축물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2.09.22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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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2002년 2월부터 보존가치 있는 건물 등록
충북도청 본관·구 충북산업장려관,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
우여곡절 겪고 구 서울시청 서울도서관으로, 구 충주 식산은행 보존키로

 

충북도청 본관
충북도청 본관

 

청사 남길까 부술까
충북 및 타지역 사례

 

청주시청사 본관 존치 여부가 청주지역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이범석 시장은 선거 전부터 줄곧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선7기 때 시청사건립특별위원회라는 여론수렴기구를 통해 존치를 결정했기 때문에 이 시장도 혼자 철거를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다. 지금 시민들은 존치냐 철거냐 두 가지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청주시의회도 갈라졌다. 대체로 국민의힘은 철거, 민주당은 존치 의견을 내세운다.

따라서 청주시는 차제에 시민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시는 자칫 본관 문제로 발목이 잡혀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본지는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한 행정기관 청사와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권고를 했으나 철거한 곳에 대해 취재했다. 양 측의 상황을 살펴본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2년 2월 28일부터 2022년 9월 7일까지 총 948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국가등록문화재는 국보·보물·사적·명승 등 기존 지정문화재가 아니면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것이다. 50년 이상 경과된 것이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으나 그 이하라도 긴급한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것은 국가등록문화재가 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여러 절차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소유자는 원형 보존에 노력해야 한다.

국가등록문화재는 행정기관 청사, 관사, 학교, 교회, 성당, 개인주택 등 다양하다. 그 뿐 아니라 옛날 다리, 담장, 기관차, 그림, 기록물, 공예품 등도 문화재로 지정됐다. 그 중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행정기관 청사를 살펴보니 전국에 걸쳐 있다. 1920년대 건축물부터 1960년대까지 다양하다(표 참조).

 

구 충북산업장려관. 지금은 충북도 문서고로 쓰인다.
구 충북산업장려관. 지금은 충북도가 문서고로 쓰고 있다.

 

1937년 6월에 건립된 충북도청 본관은 지난 2003년 6월 30일에 국가등록문화재가 됐다. 이 건물은 지금도 청사로 쓰인다. 15년 후에는 건립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1930년 이후 전국적으로 청사 신축붐이 일었고 전남도청사, 충남도청사, 충북도청사를 지었다고 한다.

충북도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2002년에 국가등록문화재를 지정하기 시작했다. 문화재청이 직권으로 조사해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일괄 지정했다. 충북도청 본관도 이 때 문화재가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화재 지정을 놓고 찬반 논쟁은 없었다고 한다. 충북도청 부지 내에 있는 옛 충북산업장려관은 도청보다 6개월 먼저 지어졌으나 문화재 등록은 2007년 9월 이뤄졌다.

문화재청이 펴낸 ‘충북도청 기록화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도청사는 일제강점기의 관청 건축물로 외벽에 스크레치 타일을 붙인 서양식 절충양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설계 및 시공자는 알 수 없다는 것. 이 보고서에는 “충북도청의 이전 및 신축은 김동훈 지사의 용단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고 1935년 충남북 합병설이 나오자 도민들이 불안해했다. 김 지사는 이를 막기 위해 중앙공원 옛 청주읍성 동헌부지에 있던 청사를 현 문화동으로 이전 신축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건물은 중앙현관 포치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모던한 근대건축 이미지를 담고 있어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문화재가 된 이후에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화장실, 천장, 외벽 보수를 했고 출입문도 교체했다.

구 충북산업장려관은 충북도청 부지내 남서쪽 끝에 있다. 충북도와 충북문화재연구원이 펴낸 종합정비계획에는 “충북도청과 함께 지역 행정의 중심이 돼 온 곳이다. 충북과 청주의 행정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왔다. 인근에는 다양한 문화재가 있어 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적합하다”고 적혀 있다.

이 건물은 산업장려관이 된 후 도내 상공인들의 전시 및 홍보, 문화활동의 장으로 쓰였다. 이 곳은 한 때 민원실을 거쳐 현재 문서고로 사용된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올해 2월 종합정비계획을 펴내면서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문서고 이전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문화재가 문화재로써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구가 조화를 이룬 서울시청. 사진/ 뉴시스
신구가 조화를 이룬 서울시청. 사진/ 뉴시스

 

일제잔재 vs 역사적 가치 항상 충돌
 

서울시청은 일제강점기 때 경성부청으로 건립됐다가 광복 이후 서울시청 건물로 쓰였다. 청사는 1949년 8월 건립됐다. 현재의 서울시청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2012년 8월 완공됐다. 당초 오세훈 시장은 2006년 옛 청사를 모두 부수고 새 청사를 신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여론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치욕적인 과거의 현장과 유물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 측은 보존방법을 놓고도 이견을 보였다. 오 시장이 2008년 기존 청사의 중앙홀인 ‘태평홀’을 해체한 뒤 이전 복원한다며 철거를 시도하자 문화재청은 반발하며 사적 가지정을 추진했다. 그래서 태평홀 해체 공사는 중단된다. 당시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보존이냐 해체냐 논쟁을 하며 날카롭게 대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문화재청은 사적 가지정을 해제하였고 청사는 본관 정면부분과 태평홀만 남기고 철거됐다고 한다. 철거된 자리에는 지하5층, 지상13층짜리 새 건물이 들어섰다. 옛 청사는 지금 서울도서관으로 쓰인다.

한편 충주시는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을 놓고 오랫동안 복원과 철거논쟁을 거쳤다. 충주시는 2015년 6월 가구점 점포로 쓰이던 구 식산은행 건물을 7억여원에 매입했다. 그러자 시민들 사이에서 복원과 철거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복원 측은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자고 주장했고, 철거 측은 일제의 잔재며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맞섰다.

이에 충주시는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보자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지정신청을 했다. 문화재청은 충주시 등록문화재 지정이라는 결론을 냈다. 시는 2019년 건물 보수를 위해 예산을 세웠고 논란은 일단락됐다. 활용방안은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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