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에 최초로 ‘권력’이 등장하다
상태바
정치학에 최초로 ‘권력’이 등장하다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9.28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읽기 (2)

 

전회에서 :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권력의 문제로, 군주(정치인)는 오직 권력의 획득·보전·확대라는 관점에서 합리적·계산적 숙려에 따라 정치를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보전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까요? 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여러 조언은, 만약 이 작은 책자가 위대한 정치고전 중 하나라는 포장만 없었다면, 훌륭한 처세 지침서로 받아들였을 정도로 노골적이고 적나라합니다.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에, 인간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염려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크게 주어야 한다”, “가해행위는 일거에 저질러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고 반감도 작게 일어난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낀다”, “군주는 선한 것으로 분류되는 성품을 실제로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성품을 항상 실천에 옮기는 것은 해롭고, 단지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항상 유용하다.”

 

1550년 ≪군주론≫ 표지

 

처세술 책자는 젠체하는 신사들이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 몰래 탐닉할 만한 것입니다. ≪군주론≫의 운명이 그렇습니다. ≪군주론≫은 교황청에 의하여 금서목록으로 등재되고 악마의 책으로 치부된 반면, 많은 이들이 은밀히 탐독하여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교황청이나 정권에 의하여 금서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저서가 역사적·정치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은 그에게 영광도, 치욕도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 뒤에 이즘(-ism)'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은 정치사상가는 겨우 3~4명에 불과하니 이보다 더 큰 영예가 있을까요? 그러나 이는 그 자신에게 엄청난 오해와 불명예를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노년의 마르크스가 자신의 사상이 도식적이고 속물적인 이념으로 치닫는 것을 보고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니다

 

통상 마키아벨리즘은 자신이나 당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처세나 정치행태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이 이러한 의미라면, 마키아벨리는 나는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정치와 권력의 궁극적 목적은 개인적·사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입니다. 군주정에서의 군주든 공화정에서의 선출된 대표이든, 정치인은 오직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하여 헌신하려는 덕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비르투(Virtū)’라고 명명했습니다. 역으로 그 정반대의 경우, 즉 세속적 마키아벨리스트들처럼 자신의 사익을 위하여 공동체의 이익을 희생시킬 때, 마키아벨리는 이를 부패라 명명하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즘은 거꾸로 선 마키아벨리인 셈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왕국이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하여 무자비한 행위에 이르더라도, 그것을 비난해선 안 된다. 인간의 행위가 실제 나쁘더라도 그 결과만 좋으면 된다. 단 여기에는 같은 무자비한 행위라도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만 대상으로 해야 한다.자기 나라의 안전이 걸려 있을 때 정의냐 부정의냐, 자비로운 것이냐 잔인한 것이냐, 칭찬받을 만한 것이냐 수치스러운 것이냐의 문제는 결코 고려해서는 안 된다. 대신 양심의 가책 따위를 일체 무시한 채, 나라의 운명과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최대한 따라야 한다.

 

결국 정치인은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목표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라는 비르투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그 목표의 성취를 위해 현실주의적 판단에 따라 여우의 교활함, 사자의 용맹함, 법의 정당함 모두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정치인의 모습은 베버(Max Weber)의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을 연상케 합니다. 베버는 정치인의 윤리를 신념윤리(ethics of conviction)’책임윤리(ethics of responsibility)’로 구분하고, 정치인은 자신의 신념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러한 이상의 올바름이나 의도의 선함을 강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현실에 대한 균형적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도 중요하다며, 정치인에게서 그러한 책임윤리의 부재를 죄악으로 보고 있습니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를 저버리다

 

그러나 정치인이 권력에의 의지와 비르투, 소명의식을 갖추었다고 항상 위대한 성취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Fortuna)’의 장난으로 허무하게 좌절될 수도 있습니다. 1512년 피렌체의 옛 지배자였던 메디치(Medici) 가문이 스페인을 등에 업고 피렌체에 복귀하여 왕정을 복원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공화정부 피렌체의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는 곧바로 공직에서 추방되었고, 이듬해는 반역 음모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특별사면 되어 곧 석방되었지만, 그는 교외에 칩거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군주론≫을 비롯한 여러 책을 저술하여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고, 주위에 유력자에게 메디치 가문과 연줄을 맺게 도와달라고 청탁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전한시대 불후의 역사책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수치스러운 궁형(宮刑)을 자처한 사마천(司馬遷)처럼, 이탈리아의 통일과 고대 로마의 위대한 성취를 재현하고픈 비르투와 소명의식에 충만한 정치인 마키아벨리도 그 어떤 인간적 모멸과 수치를 견디어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그런 노력의 결과 그는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몇 번의 임시 임무를 위임받고 은사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이번에는 역으로 메디치 가문의 하수인으로 낙인찍혀, 그의 말년(1527)에 다시 공화정부가 복원되었을 때는 공화정부로부터도 냉대를 받게 되고, 낙담한 나머지 1달도 못 되어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결국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그를 저버린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