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관사촌 보존하니 문화가 됐네
상태바
옛 관사촌 보존하니 문화가 됐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2.09.29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태어난 대전시 소제동 철도관사촌과 대흥동 옛 충남도청 관사촌
대전시의 역사 전해주는 증거, 지금은 문화와 먹을거리 즐길 수 있는 관광지

 

관광객이 많은 소제동. 소제동 골목
관광객이 많은 소제동. 소제동 골목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
대전 관사촌에 가보니

 

대전시에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관사촌이 있다. 동구 소제동에는 철도관사촌, 중구 대흥동에는 옛 충남도청 관사촌이 있어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철도관사촌은 100년이 넘었고, 옛 충남도청 관사촌은 80~90년 정도 됐다. 이 또한 허물지 않고 남겨 오늘날 근대문화유산이 됐다. 이 곳에서도 보존의 가치와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들 지역은 지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구도심이 됐지만 근대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에 존재감을 발한다. 빌딩숲에서 발견할 수 없는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의 도시’ 대전 역사 전해줘
 

대전시는 철도 덕분에 탄생한 도시다. 1901년 일제는 경부선 철도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경부선은 충남도청이 있던 공주를 통과할 계획이었지만 유림을 중심으로 한 지역유지들이 반대하자 허허벌판이던 대전으로 틀었다고 한다. 1904년에는 대전역이 건설됐고 1905년에는 경부선 대전역이 개통했다. 이어 일제는 대전역 뒤 소제동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철도 노동자들이 거주할 관사를 지었다.

대전시의 자료에 따르면 “철도의 등장으로 대전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했고 자연스럽게 인구도 늘었다. 대전역 주변에는 일본인 상점이 생겼고 도로정비와 함께 시가지가 형성됐다. 그러면서 여러 관공서가 자리를 잡았다.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도 대전으로 왔다”고 한다. 당시 철도 개설이 대전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철도관사촌은 과거 철도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이 살던 곳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많은 관사촌이 있었으나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대전역 주변의 개발로 북관사촌은 사라졌고, 현재는 대전역 뒤 철로 바로 옆 남관사 한 채와 소제동 동관사촌만 남았다고 한다. 40여 채의 관사가 하나의 마을을 이룬 철도관사촌은 현재 전국에서 가장 넓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형도 잘 보존돼 있어 우리나라 근대문화유산의 건축·역사적 자료로써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전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으나 현재까지는 문화재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철도관사촌이 있는 대전 삼성4구역이 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점과 맞물려 사정이 다소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곳에는 특색있는 음식점, 카페, 디저트가게, 빵집 등이 들어섰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다. 골목은 좁고 불편하지만 깔끔한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인간적인 멋이 있어 그런대로 괜찮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에 이 곳을 걷는 사람이 많았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했다.

이 곳에서 만난 가게 주인은 “관광객들이 철도관사촌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이다. 전국적으로 복고풍 바람이 불면서 버려졌던 이 곳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오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포털에서 대전 소제동 맛집을 검색하면 치앙마이방콕, 퐁뉴가, 온천집, 슈니첼, 파운드, 관사촌커피, 베리도넛 등 상당히 많은 장소가 나온다. 모두 특이한 내부장식, 더러는 기상천외한 모습과 맛으로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 곳을 대전의 익선동이라 부른다.

 

소제동 거리
소제동 거리
내부가 독특한 소제동의 한 음식점
내부가 독특한 소제동의 음식점 '치앙마이 방콕'

 

이승만과 나혜석의 얘기를 듣다니
 

소제동에서 멀지 않은 중구 대흥동에는 옛 충청남도청 관사촌이 있다. 관사촌의 이름은 ‘테미오래’. 대전시는 2018년 4월 시민공모를 통해 이 명칭을 선정했다. ‘테미’는 이 지역의 옛 명칭이고, ‘오래’는 관사촌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오래’는 ‘골목에 대문을 마주하고 있는 집이 몇 채 있는 마을’을 뜻하는 우리말이라고 대전시는 설명한다.

이 곳 관사촌에는 도지사 공관과 9채의 관사가 있다. 제4호 관사는 소실되고 없다. 건립연도는 1930~1940년대. 관사는 충남도청이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뒤 지어졌다. 충남도는 지난 1932~2012년 이 곳을 고위 공무원 관사로 사용했으나 2012년 다시 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대전시는 도시재생을 통해 리모델링을 한 뒤 2019년 4월 6일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으로 개방한다. 지금은 각종 전시와 행사가 열리는 문화예술촌이 됐다.

 

옛 충남도청 관사촌 지도
옛 충남도청 관사촌 지도

 

관사의 건축기법은 비슷하지만 각각 넓은 정원을 품고 있다. 주차장도 갖추고 있고 도로가 널찍해 걸어다니며 구경하기 좋았다. 대전시는 3호 관사를 테미오래 운영센터로 바꿔 방문객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6호 관사는 대관을 해준다. 7~10호 관사는 테미사랑방, 학당, 예술가 레지던시로 이용된다. 그리고 야외공간에서는 종종 문화예술장터를 연다.

얼마 전 주말에 갔을 때 관사마다 상설전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서 테미오래에 실제 거주했던 인물의 이야기를 발굴해 전시하는 ‘관사촌人 이야기: 김우영 그리고 양한나’ 전시를 봤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과 결혼한 김우영은 1940년 충남도 산업부 사무관으로 부임해 이 곳에서 3년간 거주했다. 그러나 결혼 10년만에 나혜석과 이혼하고 사회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양한나와 재혼한다. 양한나는 최초의 여성 경찰서장을 지낸 인물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와 각종 사진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4년 9월 4일 충남도청 구관사 1·2·5·6호와 부속창고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일제 강점기 관사 건축의 전형을 볼 수 있고 형태나 재료, 배치가 균일하며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지금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충남도지사 공관을 비롯해 4동의 관사와 3동의 창고가 남아있고 관사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6월 27일 새벽 정부각료들과 몰래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와서 도지사 관사에 5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여기서 떨리는 목소리로 6.27 특별방송을 녹음했고, 이는 곧이어 서울로 송출됐다. 역사적인 곳이 아닐 수 없다.
 

 

옛 충남도청 관사 모습
옛 충남도청 관사 모습
옛 충남도청 관사 내부
일제가 일본식으로 지은 옛 충남도청 관사 내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