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재난, 집중과 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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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재난, 집중과 분산
  • 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 승인 2022.10.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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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어릴 때 살던 집이 가끔 정전이 됐다. 아버지는 손전등을 들고 원인을 찾으러 나갔고, 어머니는 캄캄해진 집의 어느 찬장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가족들은 불빛 근처에 모여 초가 타는 것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다렸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불은 우리의 저녁을 비춰주는 전통적 수단이었다. 형설지공이라는 옛 고사성어는 불조차 붙일 수 없던 가난한 선비가, 개똥벌레의 불빛과 눈빛으로 글공부를 하여 이룩한 성공담을 담고 있다. 이처럼 지금 자연스레 누리는 전기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고 심지어는 불마저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던 과거에 비하면 요즘 우리는 전기 걱정 없이 산다. 정전이 잘 일어나지도 않지만 일어난다해도 핸드폰 플래시를 이용하면 된다. 대부분의 문제는 핸드폰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모든 일들을 핸드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기에 스마트폰이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의 핵심은 어플리케이션 서비스에 있다. 필요한 기능을 다운받아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얼마 전 카카오톡이 문제가 생겼다. 마치 전기처럼 늘 제공되던 것이 갑자기 중단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검색, 연락, 송금, 대중교통 등 여러 영역에서 마비가 왔다. 기술이 인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플랫폼 서비스는 하나로 집중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생겼을 때 다양한 메신저 앱이 등장했지만 결국 하나로 통일되다시피 했고, 다시 그 통일된 앱을 통해 파생된 서비스가 다시 플랫폼의 집중화 현상을 낳는다. 연락을 위한 메신저 앱이, 쇼핑, 뱅킹은 물론 지도, 내비게이션, 대중교통, TV, 게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집중화된 플랫폼은 분명 편리하다. 나도 여러 개의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는 것이 불편하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것도 힘들어서 통일된 서비스를 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명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교토삼굴'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려보자. 물론 플랫폼을 옮기고 싶어도 옮기지 못하는 사정도 있다. 새로운 곳으로 옮겨서 다시 자신의 데이터를 쌓기란 쉽지 않다. 사용자가 플랫폼을 오갈 때 데이터도 함께 오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래야 플랫폼에 대한 이용도가 자유로울 수 있다.

 모든 것이 카카오에 연결이 되어있는데 정작 카카오 서비스가 연결이 안 되니 버스비를 낼 수 없어서 집까지 걸어와야 했다는 학생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카카오택시 어플이 안 되자 택시를 어떻게 잡아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손을 들어 택시를 세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다. 과거에는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면서 기존의 문화가 사라졌다.

뉴미디어가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키면서 과거 세대의 경험과 문화들이 너무 단절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기가 정전이 되었을 때, 초가 필요했던 것처럼 뉴미디어들이 잘 제공될 때는 모르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디지털 재난이 생길 때도 대비해두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재난을 겪었다. 비대면 시대는 우리 삶의 상당 부분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일으켰다. 그러나 코로나19 전에 코로나19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디지털 재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현실 세계의 재난이 디지털로 피난을 이끌었지만, 디지털 세계의 재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집중과 분산,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분산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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