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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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우리가 있다
  • 맹은영 충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 승인 2022.11.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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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자고 일어났는데 내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해있다면 나의 다음 행동은? 병원으로 냅다 달려갈까? 가서 뭐라고 말해야하지? 브로콜리를 댕강 잘라버리면? 아니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엉엉 울며 우리 집안의 유사사례를 추적해야 할까. , 모르겠다 모르겠어.

이 뜬금없는 브로콜리 이야기가 좀 당황스럽겠지만, 이는 최근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유리 작가의 <브로콜리 펀치>라는 소설의 출발점이다. 복싱 선수인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어느 날 갑자기 초록초록한 브로콜리가 되고 심지어 점점 자라나는 일이 벌어진다.

남자친구의 팬이자 격투기를 좋아하는 동네 어르신이 내린 진단명은 마음의 짐이었다. 복싱 선수는 상대를 때려눕혀야 성공하는 직업이다. 좀 더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때려눕히기 위해 집중력과 함께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어느 순간 억지로 미워하지 않는 상대를 때려야 하는 게 더 이상 힘들어진 것이다. 그 대신 얻은 것은 누구를 때려도 전혀 아프지 않을 퐁신퐁신한 브로콜리 주먹이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어르신들이 주신 해결책은 산속 깊은 곳에서 큰 소리를 내어보는 것이었다. 앞장선 어르신을 따라 오른 산에서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남자친구가 아무 노래나 부르라는 말에 산속 골짜기를 향해 우렁차게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 터져 나오는 그 순간, 함께 한 사람들 역시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과 더불어 뭔가 모를 숙연함, 다가가서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노래에 은근하게 내 마음 속 응어리까지 풀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 장면을 상상하다보니 나 역시도 뭔가 답답했던 가슴이 은근히 열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 사고들이 갑작스럽게 눈앞에 닥친다. 그 원인과 책임을 찾고, 잘잘못을 따져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런 사건 사고를 맞닥뜨리게 되는 그 순간, 그리고 그것들이 퍼져나가거나 수습되어가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남 일로만 남겨두기보다는 내 일이었다면’, ‘우리 가족이었다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어쩔 수 없는 환경, 쉽게 해소되지 않는 감정 같은 개인적인 일들뿐만 아니라 자연재해, 사건 사고 등 사회재난들을 보며 우리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또는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짐을 가지고 살아간다. 때로는 이러한 응어리들이 점점 더 커져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또 사회적으로도.

소설에서 브로콜리 손이 된 남자친구에게 주인공은 힘들면 나한테 말해라”, “말해줘라”, “말해줘라고 여러 번 언급한다. 그 말을 하는 주인공도, 그 말을 듣지만 선뜻 뭐라 대답하지 못하는 남자친구도 모두 나 자신이자 당신이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힘들면 나한테 말해달라고 하기, 함께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걷기, 같이 목청껏 노래 부르고 크게 웃기. 그렇게 서로를 위로해주자. ‘고통은 감출수록 커진다고 했던 누군가의 조언이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와닿기를 바란다.

우리에겐 서로 우리가 있다. 나 역시도 평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우리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을 서로에게 전해주자. 그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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