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궐의 안내자,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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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궐의 안내자,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 고재열 여행감독
  • 승인 2022.11.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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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카자흐스탄 알리는 이 사람, 게스트하우스에서 음식 대접까지

아무리 가스를 밀어 넣어도 석유버너는 무반응이었다. 도대체 불이 붙지 않았다. 차른 캐년에서 라면을 끓여 먹겠다는 낭만적인 계획은 그렇게 무위로 그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가스관을 뚫어내며 반복적으로 가스를 밀어 넣은 끝에 마침내 불이 붙었다. 화력은 충분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기압 때문에 설익기 마련인데 라면도 잘 익었다.

우리에게 초원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제안을 해준 이는 김상욱 카자흐스탄 고려문화원 원장이다. 오랫동안 카자흐스탄국립대학교 한국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그는 이제 중앙아시아 여행감독으로 거듭났다. 1995KOICA 파견으로 알마티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수로 카자흐스탄과 처음 인연을 맺은 뒤로 알마티한글학교를 여는 등 한국을 알리는데 열중했던 그는 이제는 한국인들에게 카자흐스탄을 알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EBS <세계테마기행> 중앙아시아편의 단골 출연자다.

 

오른쪽이 김상욱 원장
오른쪽이 김상욱 원장

 

김 원장의 선택과 집중 덕에 답사

 

지난 10월 중순 카자흐스탄 답사를 위해 그를 찾았다. 코카서스 일정을 마치고 34일의 짧은 일정으로 답사하는 것이어서 많이 둘러볼 수 없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매력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김 원장은 선택과 집중에 탁월했다. 이곳저곳 정신없이 둘러보지 않고 카자흐스탄의 심상을 강렬하게 심어줄 수 있는 곳을 골라서 여유 있게 시간을 주었다.

침볼락에서 육중한 천산산맥의 정기를, 이식호수에서 호반에서 보는 설산의 매력을, 차른캐년에서 황량한 초원의 아득함을 두루 느낄 수 있었다. 내년 봄에 넉넉히 시간을 잡아 천산산맥 트레킹을 기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알프스/돌로미테/코카서스/캄차카/야쿠시마 등 고산 트레킹을 두루 기획해 본 입장에서 천산산맥은 여행지의 장점을 두루 갖춘 곳이었다.

여행객과 함께 찍은 사진.
여행객들과 함께 

 

천산산맥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어프로치)이 좋다는 점이다. 공항이 있는 도시(알마티)에서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세 시간이면 트레킹 시작 지점까지 갈 수 있었다. 그것도 포장도로로. 이는 엄청난 장점이다. 알마티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침볼락까지 갈 수 있었고 이곳에서 곤돌라를 이용하면 3200m 지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런 고산 트레킹을 이렇게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천산산맥의 산세는 보통의 일반인이 경험해 보지 못할 만큼 웅장하다. 알프스나 돌로미테나 캄차카가 주로 3000~4000m 산 주변을 걷는 트레킹인데 천산산맥은 5000~6000m 산이 즐비하다. 히말라야 다음으로 웅장한 산세를 자랑한다. 이런 산군을 대도시에서 숙박하며 당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복이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산 곳곳에 호수가 있다는 점이다. 산은 특히 설산은 호수를 끼고 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미서부와 유럽 산이 매력적인 이유다. 히말라야와 같은 곳은 협곡은 있지만 호수는 드물다. 천산산맥은 침엽수로 둘러싸인 매력적인 호수가 곳곳에 있어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식호수는 그런 천산산맥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송블락이나 쿨사이 호수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었지만 이곳도 충분히 좋았다. 호수를 둘러싸고 바위산과 침엽수림 그리고 단풍숲과 설산까지 두루 만끽할 수 있었다. 호수만 따라서 걷는 것 만으로도 이 다채로운 풍경을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이식호수
아름다운 천산산맥 이식호수

 

천산산맥 이식호수
아름다운 천산산맥 이식호수

 

여행지 카자흐스탄의 매력

 

차른캐년은 카자흐스탄 답사의 화룡점정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따라 차를 몰고 가면 점점 식생이 희박해지다가 황량한 바위산과 협곡이 나왔다. 협곡을 내려다보는 순간 이젠 힘들게 그랜드캐년 안 가도 되겠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조그만 매점 하나 없는 이곳에서 끓여 먹었던 라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라면만이 아니었다. 김 원장은 매일 저녁 일행을 위해 숙소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었다. 한국에서 오는 지인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두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카작살롱으로 삼기로 했다. 숙소에서 김 원장은 스탈린 시절 강제이주를 해와 척박한 이곳에 농업을 일구고 카자흐스탄 주류사회에 편입된 고려인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역동적인 카자흐스탄 사회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에 동돌궐(지금의 몽골 지역)과 서돌궐(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의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 신돌권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만큼 카자흐스탄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신돌궐의 무기는 지하자원이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자원부국에 안주하지 않고 중앙아시아의 물류 중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고려인들이 어렵게 이룬 기반이 있음에도 한국 정부가 잘 활용하지 못하고 카자흐스탄과 효과적인 관계를 맺어가지 못하는 부분을 안타까워했다.

실크로드가 남긴 개방성은 카자흐스탄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카자흐스탄에는 130여개의 소수민족이 있는데, 다른 아시아국가의 소수민족과는 달랐다. 유대인 독일인 아르메니아인 등등 유라시아의 사연 많은 민족이 두루 섞여있다. 이들이 빚어낸 민족간의 하모니가 개방성을 남겼다. 그 개방성 덕분에 부지런한 고려인이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고재열 여행감독
고재열 여행감독

여행 기획자의 관점에서 카자흐스탄은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국민소득이 다른 중앙아시아국가보다 높아서 관광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 있다. 다양한 소수민족이 있어 음식문화도 풍부한 편이다. 항공편 역시 알마티나 아스타나가 경유 도시로 인기가 있는 편이어서 스탑오버 투어여행지로도 개발이 가능하다. 내년에 신돌궐 기행을 만들어 보려는 이유다. 김 원장을 따라간다면 높디 높은 천산산맥도 전혀 걱정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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