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종로3가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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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 종로3가를 걷다
  •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 승인 2022.11.10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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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기록작가로 글쓰기를 단련해오던 그가 생애 처음으로 소설을 썼는데, 직접 만나서 받기로 했던 것. 우리는 서로의 안색을 살핀다. 이태원 참사 이후의 첫 만남인 터다. 그날 이후 십여 일이 지났다. 당장은 어떤 말이어도 어긋나고, 어떤 태도여도 마음에 부스러기가 남는다. 단어들이 어눌하게 쪼개져서 튀어나온다. 그동안 바깥에는 나와 본 겨? 밥은 좀 챙겨 먹었고? 목격자도 아닌데, 유가족은 더군다나 아니고. 그런데도 많은 동시대 시민들은 몸이 쳐지고 마음이 뭉개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살아있는 자의 슬픔을 디디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피카디리 극장 골목을 지나 혼자 밥 먹는 노년들이 많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탑골 공원 담장을 빙 둘러앉아 바둑을 두는 남성 노년들 사이를 조금 어슬렁거리다가 돈의문 쪽방 마을 골목을 걸었다. 두 갈래 길이 십자로 만난 곳에서 너댓 사람이 믹스 커피를 손에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쳐 커피를 쏘신 분이 계신가 봐요?’ 인사말을 건네니, ‘, 500원이에요. 조기 조 집에 가면 뜨건 물과 커피 막대를 줍니다라고 웃으며 골목 한쪽을 가리킨다. 다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실태조사를 한다는 벽보를 지나, 벽에 붙어있는 적지 않은 숫자의 에어컨 실외기에 시선을 두는 내게 그가 관련된 정보를 알려준다. 폭염이 워낙 심하니까. 실태조사는 서울시를 다그친 거. ‘홈리스행동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교사인 그는 이 골목을 지나는 통행증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본다. 건물 84개 동에 730실의 쪽방으로 이뤄져 있는 돈의문에는 20226월 현재 501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그중 약 33%(167)65세 이상 홀몸 어르신이다. 쪽방촌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방마다 에어컨이 들어가는 것을 상상했는데 에어컨 하나로 한 8개 방이 같이 쓰다 보니까 용량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며 보완 대책을 약속한 바 있단다. 그 약속을 지킨 걸까.

 

책에 쓰인 엄마와 아버지의 늙음과 죽음에 관한 기술, 둘을 포함한 가족관계와 그 변화들에 관한 관점의 차이를 글로 쓰는 것으로 인해 미경과 남매들 사이에 불화가 생겨났다. 그 차이가 시발이 되어 빈곤과 소수자들에게 대한 관점과 태도로 여러 차례 부딪쳤다. 엄마 사망 후 3년 차. 미경은 모멸감을 느끼게 만든 갈등을 계기이자 핑계로 결국 남매들에게 단절을 선언했다. [...] 혈족과의 단절은 미경에게도 심리적 피가 흐르는 고통을 주었지만, 소통 불가능한 불화와 묵과, 그들은 이해 불가능한 내 쪽의 모멸을 연장하며 관계를 지속하느니 단절을 택한 것이다. [...] 아팠지만 삶이 단출해져서 좋다.”(황노인 실종사건, 125)

 

그의 책을 읽는데 머릿속에서 또 다른 책의 문장이 함께 울린다. 민법779조에 명시된 그 가족이 아닌 생활돌봄 관계의 권리를 주창하는 책이다. “‘무슨 관계인가요?라는 질문에는 법에서 배제하는 시민권의 영역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 가족바깥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애도마저 저항이고 투쟁이다.”(가족을 구성할 권리, 72-74)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는 그 가족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도 애도가 저항이고 투쟁이 되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그저 가족이라는 핑계가 필요할 뿐임을 국가 스스로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지 않은가. 국가를 다그치며, 할 말을 정확하게 날카롭게 벼리며, 필요하면 싸우면서, 서로-함께 돌보는 관계를 지키는 거, 이게 우리 시민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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