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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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디에
  •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 승인 2022.11.16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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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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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희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내 삶의 희망이 어디에 있고, 우리 사회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자주 생각하고 이야기 한다.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 세 곳인데, 멤버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 할 때마다 희망의 근거를 이야기 하곤 한다. 우리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자체가 희망이라고 두런두런 속삭인다. 집회와 시위에 많은 이들이 모이면 세상이 바뀔 것 같아 흐뭇하다. 믿음직한 대통령이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0·29 이태원 참사처럼 끔찍한 사건을 마주할 때면 순식간에 희망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 무진 애를 써 봐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동안 마주했던 수많은 참사들이 떠오르면서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멀쩡해보였던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하고, 지하철에 불이 나고, 여객선이 물에 잠겼던 일만이 아니다. 살면서 어이없는 사건과 사고를 얼마나 많이 만났던가. 가끔은 내가 살아있는 일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여성이라면 더할 것이다.

루쉰은 희망이 길처럼 원래 없는 것이라 했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생기듯 희망이 된다 했다. 그렇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직 많은 이들이 걷지 않기 때문일까. 그동안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하고, 투표를 하기도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더 많이 노래하고, 더 자주 촛불을 들었어야 했던 걸까.

기후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최근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회복 불가능한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일하러 출근했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으로 살해당한 여성들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빈부의 격차 또한 계속 벌어지는 중이다. 빨리 무슨 수라도 내야지 이러다가는 큰 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날마다 마음이 급해지고 조바심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더 많이 참여해야 할 것 같다.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고, 페트병에 담은 물건은 좀처럼 사지 않는다. 이런저런 시민사회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후원을 하기도 한다. 청원과 시위에도 곧잘 참여한다.

지금 당장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숱하게 배웠다. 세상에 영화나 드라마처럼 악당이 일망타진 되는 일은 없었다. 악당이 일망타진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는 계속 새로운 악당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냉소하고 싶지 않다. 변화는 곳곳에 있다. 노동자를 못 살게 구는 기업의 매출이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세상이 멈춰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러 갈 때면 곳곳에 붙어 있는 불법촬영 금지 안내 문구를 볼 때도 미흡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증거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건 우리가 아직도 과거의 길들여진 믿음을 다 버리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헤어져야 할 정치와 헤어지지 못하고, 작별해야 할 상식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 믿지 못하고, 우리 안에 얼마나 소중한 가치가 살아있는지 의심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더 과감해도 되고, 더 새로워도 된다. 지금은 미적거릴 때가 아니라 가속 페달을 밟을 때다. 그렇다. 희망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용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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