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왜 ‘독재’라는 단어를 사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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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왜 ‘독재’라는 단어를 사용했나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11.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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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의미와 문제점 (2)

 

전회에서 :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이상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 독재체제는 모든 권력이 모든 인민의 직접 수행 또는 통제 하에 있기에 부르주아 민주체제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합니다.

 

형식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자치와 대리제에 근거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의회와 대표제에 근거한 우리의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적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도 그러할까요?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다수 인민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독재를 행하는 체제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가사 그것이 독재적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낳을, 그래서 미래를 위하여 일시적으로 견딜만한 체제일까요? 아니면 그것은 이상적인 공산사회는커녕 그와 정반대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더 나쁜 체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져 봅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민주적일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단계에서는 소유와 계급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에 프롤레타리아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자영업자·농민·전문직 종사자 등 중간계급들은 물론 비프롤레타리아 노동자(현대적 공업계열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도 존재합니다. 또한 자원 부족과 빈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단계가 아니기에, 자원과 권력의 배분을 둘러싸고 계급 간에 이해와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1922년의 레닌과 스탈린
1922년의 레닌과 스탈린

 

나아가 공산주의적 미래를 지향하는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에 동의 않는 정치세력들도 존재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구상에서는 이렇게 서로 대립적이거나 조화 불가능한 다양한 계급·부문·정치세력들의 이해관계와 이견들에 대하여 충분히 고려되어 있지 않고, 이러한 차이가 용인되고 반영되고 경쟁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인 민주적 제도가 충분히 고려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구성과 운영 원리로 제시된 자치와 대리제 등이 그 민주성을 담보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의 주요 원리 중 하나인 다수의 지배원칙을 보장할 뿐, 또 다른 원리인 소수자나 반대자 보호원칙을 담보하지는 못합니다. 전체 인민, 다른 계급이나 부문, 소수자나 반대자의 이해관계와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그것만을 고려하는 체제는, 결국 민주주의의 부재이자 다수에 의한 폭정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 혹은 다수에 의한독재에 머물까요? 마르크스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가 자연적으로 계급의식을 성취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적·경제적 이해와 분노에 사로잡힌 프롤레타리아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하여 이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엮어내고, 이들로 하여금 정치권력을 장악해 독재권력을 행사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공산사회로 점진적으로 이행토록 만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로 공산주의자들(혹은 공산당)’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이해관계와 동떨어진 이해를 갖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든 나라의 노동계급 정당들의 가장 선진적이며 굳센 부분으로서 다른 모든 정당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며,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비하여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행 경로와 조건들, 그리고 궁극적이고 전반적인 결과를 명료하게 인식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주아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도록 하는 데 있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이것의 예상 가능한 결과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다수 인민이나 노동자들에 의한 것이 아닌, 인민이나 노동자들을 내세운 극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체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반동세력에 의하여 혁명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중간계급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계급과 소유의 철폐에 대한 항의와 태업이 증대되고,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지지부진할수록 공산주의자들의 권력은 더욱 증대되고 강력해져야 합니다.

 

레닌이 알려주는 역사

 

191710월 러시아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레닌(Vladimir Ilich Lenin)은 이미 일정이 잡혀 있었던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 결과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소수당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자 레닌은 혁명의 수호와 지속을 명분으로 제헌의회를 해산하고,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은 물론 같은 사회주의 계열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마저 정치 무대에서 축출하고, 의회의 지위와 권한을 러시아의 코뮌격인 소비에트(Soviet)에 넘겨버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조차 레닌의 조치는 인민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 말살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들의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그 이후 모든 정치과정은 레닌과 일부 볼셰비키 지도자들에 의하여 독단적으로 결정되고, 민주주의 기초가 되는 언론의 자유나 경쟁적인 정당 체계는 다시는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현실 사회주의(구소련과 동구권)의 암울한 미래는 사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으로 마르크스가 의도한 것은 너무나도 민주적인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중 하나인 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수의 원칙에만 기초할 뿐 또 다른 기본 원칙인 소수자나 반대자의 의사와 이익도 적절히 대변되어야 한다는 소수자 보호와 비례의 원칙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종국에는 다수 인민나 노동자들에 의한 독재도 아닌, 일인 혹은 일당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쿠바의 카스트로, 북한의 김일성 체제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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