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짜 위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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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짜 위험인가
  • 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 승인 2022.12.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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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김승호 청주 서원고 교사 

얼마 전, 일본 학교 탐방을 다녀왔다. 일부 학교는 교실 옆에 테라스가 있었다. 한국은 위험해서 논란이 많은 일이다. 학교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애들끼리 여기서 놀다가 사고가 난다거나 하는 위험성은 없나요?” 그 선생님은 답했다. “나가지 말라고 하면 학생들이 나가지 않는다.”

 대답을 듣자 무서워졌다. 나는 일상에서 이렇게 말을 잘 듣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일상에서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다급하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위험이 닥칠 때는 말을 잘 듣는다. 나는 일본의 학교 모습이 위험의 일상화는 아닐까 생각했다. 

 학교 곳곳에는 훈련용인지 실전용인지 알 수 없는 안전모가 놓여있었고, 지진이 날 경우를 대비해 마을 주민들까지 대피할 수 있는 지하 강당이 있었다. 심지어 먹을 비상식량까지 갖춰져 있다고 했다. 그만큼 이들에게 지진의 위협은 컸다. 안전을 위협받을 때 우리는 지시와 통제를 따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일사분란함은 일상보다는 위험 상황의 모습에 가깝다. 

 우리 사회도 점점 일상을 위협받고 있다. 대형 참사들은 물론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연일 터진다. 폭우로 인한 수해, 지진, 아파트 붕괴들이 벌어지고 국제 정세도 심상치 않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느끼는 안전에 대한 위협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예컨대 학교에서도 지진 대피 훈련을 정기적으로 한다. 지진 대피 훈련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지진 발생이라는 가정 하에 책상 밑에 숨어들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머리를 보호한 채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와 운동장에 모이는 시나리오다. 이 훈련이 의미 있게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학생들 다수는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이들은 지진의 위험을 멀게만 느끼고 있었고, 일사분란함과 거리가 멀었다. 위험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합의해야 비로소 위험이다. 외국에서 볼 때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걱정하게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우리의 안전 욕구를 가장 자극하는 것은, 입시학원의 공포마케팅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부를 준비해야 한다거나, 공부를 중학교 때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거나 하는 마케팅들이 넘친다. 그 공포는 전국 곳곳에 퍼져 지방 학부모들도 자녀가 어릴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리며 사교육에 지갑을 연다. 많은 국민이 지진이나 북한 미사일보다 이 경쟁에서 뒤처지는 위험을 실제라고 여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떠올려보자. 새벽부터 교사들은 마치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것처럼 맡은 임무를 다하고, 많은 회사들이 출근 시간을 늦춘다. 증권시장도 늦게 열리고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된다. 시험장에 늦게 도착하는 학생들을 위해 경찰차가 운행된다. 이것이야말로 일사분란함이고,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한 번은 수능시험 감독 때 마지막 시간이 끝나고, “수능 시험이 인생의 끝도 아니고 전부도 아니다.”라고 말을 건넸다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인 건 맞잖아요?”라는 반박을 들었다. 이렇게 학습된 공포 앞에 지진이나 기후 위기 같은 일들은 먼 얘기가 된다.

삶에 더 가까운 공포는 내 성적, 내 진학, 내 진로, 내 취업이 되고 이를 돌파해야만 비로소 안전한 삶이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재해나 참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생존경쟁의 패배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통제하는 위험이다. 이대로 좋은가? 암묵적으로 합의된 위험을 바꾸는 것은 명시적인 합의일 것이다. 학교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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