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스라소니와 청주동물원의 꿈
상태바
새끼 스라소니와 청주동물원의 꿈
  •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 승인 2022.12.08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주동물원 현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 갖추는 중, 연구기능도 강화

2021년 봄, 청주동물원에서는 새끼 스라소니가 태어났다. 스라소니는 줄범(호랑이), 돈범(표범)을 비롯해 한국에 자생하던 대형 고양잇과 동물 중 하나이다.

발음이 비슷하고 우리에게 더 친숙한 시라소니20년 전 어느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시대극의 등장인물로 우리 스라소니 친구들과는 관련이 없다.

 

 

아무튼 스라소니는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도 매우 특징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가장 알아보기 쉬운 특징은 꼬리와 귀의 모양이다. 스라소니는 다른 대형 고양이에 비해 꼬리가 매우 짧다. 표범의 경우 꼬리 길이가 코에서 둔부 길이와 비슷하게 긴 반면 스라소니는 오금도 닿을랑 말랑 한 길이다. 또 귀는 위아래로 높고 위쪽은 뾰족하며 귀의 높은 쪽 끝에 가느다란 기둥 모양으로 털 여러 가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이 안테나 같은 털 다발은 마치 남산에 얹어진 N서울타워처럼 귀 위로 솟아있다. 그 외에도 몸 크기에 비해 다리가 긴 편이고 눈밭에서도 잘 뛸 수 있도록 발바닥이 넓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작년 스라소니의 탄생은 반() 계획적인 번식이었다. 스라소니 번식은 쉽게 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합사 상태였던 스라소니 부부 유라와 시안이는 근친 관계가 아니어서 선천적인 장애의 위험도 비교적 낮아 번식을 제한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존에 있던 스라소니 개체가 다른 동물원으로 이사 가면서 공간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도 동물원 직원들은 이번 새끼들을 큰 걱정 없이 환영할 수 있었다.

 

야생조수관람장에서 출발한 청주동물원

 

현실이 항상 이렇게 호의적인 건 아니다. 새로운 동물의 탄생은 숭고한 경사지만 동물원에서는 우려되는 상황일 때도 있다. 새로 태어나는 동물의 수만큼 공간을 새로 만들어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 안에서도 다채로운 운동을 유도할 수 있는 행동풍부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절대적인 공간이 부족하면 효과가 미미하다. 1997년 개장한 청주 야생조수관람장은 이름대로 관람에 초점을 맞춘 시설이었다. 관람로에 서서 쉽게 동물을 관람하는 것만이 목적이었으므로 동물이 관람객의 시선과 가깝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계속해서 높아지는 시민의 도덕 수준 덕분에 지금은 새로운 공간들을 설계하고 만들고 있다. 동물들이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 움직임이 더 자유로운 시설로 탈바꿈한 공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동물의 모습은 살아있는 박제와도 같다. 외모는 그럴싸하지만 자연에 실존하는 동물이 아니다. 이젠 행동도 실존하는 동물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고 야외 공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베리아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은 4배가량 넓어진 공간을 산책할 수 있게 됐다. 원래 경사가 급한 곳에 높은 울타리를 치는 방식으로 발굽 동물인 히말라야타알이 자연스러운 경사를 산맥 지형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새로 짓는 시설들은 동물들의 건강도 고려해서 짓는다. 부상의 위험이 있는 구조물을 줄이고 일부 공간에 긍정강화훈련도 감안한 새로운 시설들도 잊지 않았다. 안정적인 바닥을 만들고 보상을 투입할 수 있는 투입구를 만든 훈련 장소에서 체중, 체온을 측정하거나 피를 뽑는 등 간단한 건강검사에 동물들은 자발적으로 협조할 것이다.

청주동물원은 과거 야생조수관람장의 모습을 탈피하고 현 시대가 요구하는 동물원의 모습을 갖추는 중이다. 동물을 관람하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관람 대상을 제공하는 역할만 한다면 동물원들은 반복적인 동물의 상업적인 유통을 조장할 뿐이다. 근래엔 동물원의 연구 기능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사육 상태 개체들의 번식을 유도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고 진료에서 사용했던 약의 부작용을 분석하여 증례를 공유한다. 동물원들의 연구는 동물 보전에 직접 연결되는 정보를 생산한다.

 

동물원이 품는 미래

 

자연에 사는 동물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 보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단순히 인간이 환경을 과하게 소비하고 파괴했기 때문에 원상 복귀시켜야 할 의무가 발생했다는 점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생태계의 균형은 오랜 기간 축적되며 완충장치가 많았다. 다만 가속화되는 파괴로 더 이상 균형이 유지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손실되는 시간과 노력과 돈의 규모도 상당하다.

최근 세계적인 재난이었던 질병을 살펴봐도 동물로부터 건너온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이었다. 박쥐에 감염되던 미생물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전파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종간 이동(Spillover; 넘쳐 쏟아짐)이라고 하는데 생태계 구성원이 적을수록 변이로 감염되는 동물의 비중이 더 높아져 확산이 빨라진다. 이 때문에 생태계는 복잡하게 유지돼야 하고 구성원들이 모두 건강해야 질병의 위험이 줄어든다. 사람, 동물, 생태계의 건강은 하나로 연결돼있고 이걸 원헬스(One Health)라고 한다.

스라소니는 우리나라의 대형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 체중은 작은 편이지만 체구에 비해 월등한 사냥 실력을 갖추고 있어 작지만 강한 친구로 여겨진다. 청주동물원도 강한 동물원이 되기 위해 다양한 진료 증례를 분석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하고 활발히 공유하며 생식세포를 냉동하는 Frozen Zoo도 가동하여 서식지외보전 관련 연구를 강화해나갈 것이다. 청주동물원의 스라소니 동물사는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퇴근길에 보면 노을이 측광으로 얼굴 윤곽을 밝힌다. 골든아워가 잘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퇴근한다. 그러다가 또 월급날이 돌아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