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post)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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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post)는?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12.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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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클라우와 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중심으로 (1)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월러스타인(Immanuel Wallerstein)은 지금껏 세계혁명은 1848년과 1968년단 2번 뿐이었다고 말합니다. 68혁명은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685월 프랑스 한 대학에서 여학생 기숙사에 대한 남학생의 출입규제 불만에서 시작된 시위가 1달도 못 되어 프랑스 전역의 대학생 시위와 노동자 파업으로 확대되었고 이는 곧바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계속되는 반전, 반핵, 페미니즘, 인종차별 반대, 환경보호, 동성애와 마약 합법화를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았고,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도 자유와 인권을 주장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남미와 일본의 젊은 세대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68혁명은 처음에는 좌파들에게 호기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동유럽의 공산정권은 보수 세력과 마찬가지로 68혁명 세대에게는 타도와 저항의 대상이었습니다.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68혁명은 이론과 실천 모든 면에서 근본적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투쟁 지형은 노동 중심의 계급투쟁에서 생태, 여성, 소수자, 평화, 반전 등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신사회 운동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여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부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그것은 나중에 포스트(post)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게 됩니다. 1985년에 출간된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무페(Chantal Mouffe)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은 이러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들 외에도 여러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지만, 이들에게 공통된 기본적 문제의식(현대사회의 새로운 양상과 이에 대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실패)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신사회 운동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등장

 

68년 이후 10여년간 지속된 이러한 사회운동에 대하여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좌파들의 이론적·실천적 무능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라클라우와 무페는 그 무능력과 실패의 근본 원인을, 당시 좌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본질주의(Essentialism)’적 접근방식에서 찾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사회분석과 이행전략은 기본적으로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론을 중심으로 합니다. 인간사회는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소유관계를 토대로 하고, 그 위에 이에 조응하는 정치적·법적·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갖는데, 전자가 후자를 규정하고 제약합니다. 현시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으로 구성되는데,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점차 동질화, 조직화, 정치화 되어 종국에 자본주의를 전복하여 계급과 소유가 사라진 사회주의를 이룩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토대(경제) 결정주의, 계급 환원주의,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특권, 사회주의 필연성이 라클라우와 무페가 지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방식입니다.

 

라클라우와 무페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19세기말부터 역사적 실천의 단계에 돌입하면서, 이론(본질주의)과 현실, 실천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실 정치는 토대(경제)와 계급만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 복잡하고, 현실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지배적 계급이 되지 못하고 농민, 자영업자, 전문직 등 중간계급이 잔존하고, 또한 노동자계급 자체도 단일하고 동질적이지 않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지향을 갖게 된다는 전망도 회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괴리에 직면하여 그들의 고민과 대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카우츠키의 정통주의,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로자의 자발주의, 소렐의 블록 개념, 레닌의 전위당 이론과 계급동맹 전략,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그람시의 헤게모니 전략, 알튀세르의 중층결정이론 등은 이러한 괴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응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자본주의 현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범주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음에도,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교조적인 본질주의에 그대로 머물렀다고 라클라우와 무페는 주장합니다.

 

그람시와 알튀세르에 주목

 

마르크스 후예들의 여러 대응 중, 라클라우와 무페는 그람시의 헤게모니(Hegemony)와 알튀세르의 중층결정(Overdetermination)’ 개념의 재구성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분석과 변혁전략을 구상합니다. 이탈리아의 비운의 혁명가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의 단순한 대립구도로 환원되기 힘들고, 여러 계급과 부문들이 경제적·정치적·문화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를 역사적 블록이라고 지칭하고, 이러한 역사적 블록을 형성케 하는 것이 헤게모니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지배는 물리적 폭력을 기초로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의하면 지배계급의 강권이나 폭력보다는 지적·도덕적 지도력이 중요합니다. 지적·도덕적 지도력에 의하여 수많은 부문의 구성원들이 특정 계급의 가치와 관념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하나의 지배블록이 형성됩니다. 따라서 지배블록을 해체하려는 대안의 블록도 헤게모니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자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사회관계가 본질과 현상이라는 두 범주로 명쾌하게 나누어질 수 없고, 다양 복잡한 현상이 하나의 본질(토대 혹은 경제)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회는 다양 복잡한 요소들이 얽힌 복합체이며, 각 요소들이 상대적 독자성을 갖고 분절화된 채로 서로간에 불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균등하게 영향을 미치는 접합의 관계를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라클라우와 무페에 의하면, 그람시의 헤게모니 전략과 알튀세르의 중층결정 이론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람시는 노동계급을 역사적 블록의 핵으로 그리고 계급투쟁을 헤게모니 투쟁의 근간으로 간주함으로써, 알튀세르는 중층결정 이론에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단서를 붙임으로써,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바퀴 돌아 제자리(본질주의)로 돌아왔다고 라클라우와 무페는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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