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닥터 지바고’와 이집트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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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닥터 지바고’와 이집트의 유물
  •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 승인 2023.01.04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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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동시대에 ‘살아계신’이란 독특한 이름으로 실존
1903년 튀니지의 카르타고에서 활동하는 지바고.
1903년 튀니지의 카르타고에서 활동하는 지바고.

러시아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영화는 아마 닥터 지바고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러시아에서 이집트를 전공하는 고고학자 지바고가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둘의 모습에는 참 유사점이 많다.

어쩌다 보니 나는 시베리아와 평생 인연을 맺고 살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지금도 인연을 맺고 살다 보니 지금도 나는 시베리아의 그 추위가 그립다.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면 찹찹한 한기가 온몸을 콕콕 찌르는 듯하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구멍 안이 순간 얼어붙는 듯하다. 그 추위를 견디려고 몸 안에서는 뜨거운 열기를 발산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덧 온몸이 상쾌해진다. 추위가 주는 이 역설적인 상쾌함은 살아본 사람만이 느끼는 즐거움이다.

영화 닥터 지바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러시아의 설원과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라라의 테마를 떠올린다. 아름다운 설원 사이의 음침한 시베리아의 집과 군상들, 그리고 그 가운데를 흐르는 두 주인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참 대조적이며 아름답다. 지금도 닥터 지바고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정작 러시아 내에서는 노벨상까지 받은 이 닥터 지바고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냉전이 한창인 시절에 이 소설은 금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닥터 지바고의 수상에는 소련의 체제를 비판하기 위한 CIA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다. 어쨌거나 러시아에서는 개방이 되고 나서야 그의 이름을 접하기 시작했으니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러시아 사람들은 그 소설의 내용보다 지바고라는 아주 독특한 성을 신기해했다.

작가인 파스테르나크는 살아있음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이 성을 만들었다. ‘지바고(Живаго)’살아있는(alive, live)’이라는 뜻의 옛날 러시아어이다. 파스테르나크가 어려서 성경을 암송할 때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마태복음 1616)’라는 구절에서 바로 살아계신에 해당하는 지바고를 수십 년간 기억하고 있었다. 파스테르나크는 개인의 삶이 사라지고 새로운 체제로 모두가 힘들어하는 혁명의 소용돌이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인간성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추운 겨울에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만 남은 숲이지만, 몇 달만 지나면 무성한 자작나무의 숲으로 덮이는 것이 시베리아다. 그 황량하고 추운 겨울의 눈 속에 진정한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본 것이다. 영화에서 구현되는 춥지만 아름다운 설원, 그리고 주인공의 뜨거운 삶은 이런 역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실제 고고학자인 닥터 지바고가 있었다. 제정 러시아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르 지바고(1860~1940)라는 의사로 부유했지만, 평생을 고고학 유물을 찾아 여행했던 사람이다. 말년에는 아예 의사를 그만두고 모스크바 푸시킨 박물관의 정식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찍은 사진과 유물들을 기증하고 관리했다. 당시만 해도 고고학이 정식 직업으로 대접받기 어려운 시절이라 의사나 귀족 같은 사람들이 고고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알렉산드르 지바고는 의외로 영화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와 많이 닮았다. 둘의 공통점은 또 있으니,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을 열연한 오마 샤리프도 실제로 이집트 출신이라는 점이다.

소설가 파스테르나크(1890~1960)도 모스크바에서 살았으니 박물관을 가봤다면 자신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고고학자 지바고의 이름을 접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원소설 어디에도 그와의 관련은 암시된 적이 없다. 과연 우연의 일치인지 참 궁금하다.

어쨌거나 고고학자 지바고는 평생을 고대 폐허를 찾아다니면서 그 위를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함께 담았다. 고고학자의 역할은 죽어있는 유물을 꺼내어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들이 번성하고 자손을 남기었기에 그 폐허의 위에 다시 사람들은 활기차게 살며 삶을 이어간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지난해는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 힘들었고, 또 올해도 쉽지 않다는 경고가 사방에서 나오고 있다. 폐허와 같은 삶이라고 해도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시베리아에서 배운 지혜는 바로 겨울의 역설이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은 힘을 내고 열을 발산하면서 온몸의 기운을 되찾으려 한다. 우리 모두 지바고라는 이름처럼 살아있음을 다시 느끼는 올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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