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머리를 가진 대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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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머리를 가진 대의민주주의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3.01.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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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의 기원과 위기 논쟁 (1)

현대 민주주의의 양대 지주는 대의와 권력분립 제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의와 권력분립을 민주주의에서 연유한 그리고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제도로 여깁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18세기 말 처음으로 제도화된 대의와 권력분립은 절대군주와 같은 독재권력의 등장과 횡포를 예방하기 위해 고안된 것(민주적 계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민중들의 정치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기제로 고안된 것(반민주적 계기)이기도 합니다.
 

존 텀블의 <미국 독립선언>

 

그로부터 2백년이 지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많은 정치학자들은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원인과 대안에서 좌파와 우파는 전혀 다른 주장을 내어놓습니다. 한편은 민주주의 부족으로, 반대편은 그와 정반대로 민주주의 과잉으로 대의민주주의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주장하며, 그에 따라 좌파에서는 참여민주주의·산업민주주의, 우파에서는 헌정주의·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라는 완전히 상반된 해결책을 내어놓았습니다. 현대의 좌우파 이러한 상반된 태도는, 앞서 말한 대의와 권력분립의 야누스적(민주적이면서 반민주적인) 기원과도 밀접하게 연계된 것이기도 합니다.

 

보편적 대의 제도의 기원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신생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783년 독립을 승인받아 모국의 국왕이 사라진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헌정질서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가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군주정이나 귀족정을 흠모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국의 군주를 몰아냈고 신생 미국에 귀족계급 제도 자체가 없기에, 그들은 공화정(Republic)’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공화정은 대의정부(Representative Government)’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공화국이란 그 모든 권력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국민의 다수로부터 나오며, 제한된 기간 동안 기쁨에서 우러나온 선한 행동으로 공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는 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정부는 필수적으로 소수의 구성원들이나 특권층이 아닌 그 사회의 다수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수의 전제적 귀족들이 폭정을 행하면서 동시에 공화주의자의 지위를 획득하거나 그들의 정부에 공화국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하려 할 수도 있다. 공화정부는 그것을 통치하는 사람들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국민에 의해 임명되며 정해진 임기 동안 그 직위에 머무르는 것이다. - 매디슨·해밀턴·제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신생 미국은 대의 제도를 보편적 정치제도로 채택한 최초의 국가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의 제도는 존재했습니다. 고대 로마 공화정체는 집정관과 호민관을 선거로 선출했고, 중세의 일부 도시국가나 근대초 절대왕정 국가도 귀족 중심의 신분제 의회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대의 제도는 신분적 제약에 기초를 두고 있거나 제한된 영역내에서만 작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생 미국은 1) 소규모 도시국가가 아닌 근대의 거대국가 수준에서, 2) 대표의 구성에서 신분적 차별이나 제약이 없고, 3) 왕과 유사한 지위인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대표들이 모든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되고 그들에게 책임을 지는 민주적대의 정부를 최초로 고안해 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축, 권력분립 제도

 

이들이 대의제를 채택한 가장 큰 이유는 군주나 귀족 계급의 독재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의 제도만으로 불충분합니다. 선출된 대표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다른 대표들과 담합하여 언제라도 독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분산시켜 대표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토록 하는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이 필요합니다. 물론 권력분립 제도도 그들의 독창적인 창작물은 아닙니다. 마키아벨리는 귀족과 시민 계급이 권력을 분점하며 서로 간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공화주의가 최선의 정체라고 주장했고, 로크는 이러한 고중세의 공화주의와 유사한 근대적 권력분립의 원리를 정립했고, 몽테스키외는 이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했습니다.

 

한 부문에 여러 권력들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 부문을 관장하는 수반들에게 다른 부문의 권리행사를 저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헌법적 수단과 개인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야심에는 야심으로 대항해야 한다. 개인의 이해관계는 그의 직책의 헌법적 권한과 결부되어야 한다. 정부의 권력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한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앞의 책

 

특히 몽테스키외는 군주·귀족·시민 간의 권력분점이라는 기존의 공화정 이론이 아닌, 국가권력의 제도화된 분립(입법·행정·사법)이라는 새로운 공화정 이론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신생 미국 정치엘리트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몽테스키외를 따라 시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정부조직 내에서 권력을 제도적으로 분립시키되, 거기에 더하여 분립된 권력들이 일정한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이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그들은 입법·행정·사법부의 삼권분립, 중앙·주 정부의 분립, ·하 양원제, 행정부의 거부권, 사법부의 위헌심사, 탄핵제도 등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여러 제도를 고안하고 제도화했습니다. 이러한 권력분립 제도는 대의제와 함께 신생 미국의 핵심적인 정치제도이고, 이 둘은 이후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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