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활극 민주시장 오민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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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활극 민주시장 오민심-3
  • 이재표
  • 승인 2023.01.12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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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의원이 주민발안으로 조례를 만들다!
삽화=최나훈

오민심 의원은 새벽 5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첫 등원을 앞두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장날 오거리시장처럼 머릿속이 복잡했다. 의정활동 4년의 밑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고 또 그렸다. 상상 속에서 옷장 속의 옷을 다 꺼내 입어보았다. 내일 아침에 미역국을 끓일지 된장찌개를 끓일지도 고민이었다.

어디까지가 생각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얕은 잠이 알람에 와장창 깨졌다. ‘밥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후다닥 일어났는데, 이미 주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조금 더 자지 그래.”

아니에요. 아침밥 차려야죠.”

? 오늘 같은 날은 내가 해야지. 내가 다 했다고 생색 좀 내게 밥 다 차릴 때까지 주방에 들어오지 말아요.”

 

취사병 출신인 남편의 칼질은 수준급이다. 도마 위에서 또각또각 경쾌한 리듬이 들렸다. 멸치와 홍합, 마늘로 맛국물을 내서 끓인 미역국 때문에 오민심 의원의 긴장도 풀렸다. 오민심 의원은 맑게 낸 맛국물로만 끓인 맹 미역국을 좋아한다.

남편은 집을 나서는 오민심 의원을 말없이 안아주었다. 오 의원은 한 일 자로 입술을 다물고 미소 띤 눈인사로 응답하며 집을 나섰다. 아파트 보도블록을 걷는 오민심 의원의 걸음마다 또각또각 남편의 도마소리가 들렸다.

 

의원님 첫 출근 축하드립니다!”

 

경비아저씨였다. 육군 상사 출신이라서 친한 사람들은 김상사님이라고 부르는 분이었다. 직업군인 출신이라면서 거수경례에, 고개까지 숙이는 어설픈 자세가 웃음을 자아냈다. 불과 석 달 전까지도 오 의원은 명절 때마다 경비노동자들에게 양말 한 켤레라도 선물하던 정 많은 1312반장이었다.

3년 전, 옆 동네에서 30대 주민에게 맞은 60대 후반의 경비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오민심 통장이 나서서 관리사무소에 작은 추모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주차공간이 버젓이 남아있는데도 습관적으로 가로주차를 하던 30대가, 이를 지적한 경비노동자를 폭행한 데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오민심 의원은 김상사를 향해 두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그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란 공동주택 경비노동자 인권증진 및 고용안정 조례를 의원 발의가 아니라 주민발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의원 열 명만 서명하면 되는데, 시민단체 출신이라 어쩔 수 없다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존재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5선 의원은 당첨제라 그런지 의원이 의회를 무시한다고 대놓고 핀잔을 주었다.

202212, 무려 32년 만에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됐고, 인구 50~100만명 규모의 도시는 1% 이하의 서명만으로도 주민들이 직접 조례안을 제출할 수 있게 됐으나 주민발안으로 제개정에 이른 조례는 그동안 단 두 건에 불과했다. 오민심 의원은 주민발안을 공감의 과정이라고 여겼다.

민주시 유권자가 71만명이니 7000명의 서명을 받는 게 목표였는데, 민주시민참여연대의 의정감시단 동료들과, 행복동 반장들이 나섰다. 당첨제 동료 의원들도 성의껏 서명을 받아 최종 청구인은 11004명이나 됐다. 하지만 정작 조례가 통과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민주시민 가운데 아파트 수위가 몇 명이나 된다고 조례까지 만듭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캅스로 다 바꿔야 하는데, 시민 전체를 위한 의회가 돼야지 말이야. 소수 기득권이나 지키려는 편협한 사람들이 여기도 있네.”

의원님, 기득권이 무엇인지는 국어사전부터 찾아보세요. 민주시민 80%가 공동주택에 삽니다. 이분들은 과거 단독주택이라면 식구 중에 누군가 해야 할 문단속과 청소 같은 일을 도와주시는 가족 같은 분들입니다. 더구나 민주시도 고령인구 비율이 17.8%나 됩니다. 그분들의 인권은 어디에서 일하고, 무슨 일을 하든 당연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조례는 찬성 서른네 표, 반대 여섯 표, 기권 두 표로 통과됐다. 입주민이 노동자에게 폭언·폭행·부당해고 손해를 입힌 단지에는 보조금 지원을 제한할 수 있게 됐다. 공동주택 노동자의 권리구제 및 심리상담 지원 냉난방 등 기본 시설 설치 보조금 고용안정 정책개발 예산 등을 의무적으로 편성하게 됐다.

오민심 의원만이 아니었다. 당첨제 의원들은 조례 제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면에 사는 70대 의원은 민관협력의원·약국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읍·면에 휴일·야간 진료를 조건으로 하는 민간의원과 약국을 시범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비혼 동거 중에 낳은 딸을 혼자 기르는 30대 여성 의원은 아동의 놀 권리 증진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이 조례는 공동주택 놀이터를 아동 친화적으로 바꾸고, 재활용 체험이나 전통 놀이 등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창의 놀이 프로그램을 순회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급기야 지역신문에 부끄러운 다선 의원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16년간 단 한 건을 발의한 5선 의원은 뒷골이 당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음 호에 4화가 이어집니다.

언급한 조례들은 대전시 대덕구, 제주 서귀포시, 경기도 성남시의 유사 조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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