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계산, 그리고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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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계산, 그리고 상상
  •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3.01.1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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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우주를 만나는 방법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을 다 아시죠? 우리가 알고 있는 밤하늘은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는 모습입니다. 간혹 별똥별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밤하늘은 조용하고 아름다우며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고흐의 밤하늘에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화려하다고 해야 할지, 난폭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우리가 눈으로 보는 밤하늘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흐의 눈이라고 우리의 눈과 달라서 밤하늘이 그렇게 보였을 리는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고흐가 밤하늘이 아니라 고흐가 상상한 밤하늘이었기 때문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여러분은 실제 하늘이 저런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정말 저런 난폭한 하늘은 존재하지 않을까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는 천지에는 너희 철학이 몽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여기서 너희 철학이 몽상하는이라는 표현은 반드시 철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 인간들이 알거나 상상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로 셰익스피어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고흐가 상상하는 것도 예외일 수가 없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실제 하늘에는 고흐가 상상한 그 밤하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에는 고흐가 상상한 것과 같은, 아니면 그보다 더 대단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말이 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사람이 맨눈으로 별을 관찰하다가 망원경이 나오면서 달에도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양은 그냥 매끈하고 밝게 빛나는 공이 아닙니다. 원자폭탄은 폭탄 축에도 들지 않을 대단한 폭발과 소용돌이가 그 속에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토성에도 띠가 있고, 목성에도 지구의 달처럼 위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천동설을 믿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허블 망원경이 나오고, 최근에는 제임스웹 망원경이 나오면서 하늘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이 망원경에 잡힌 하늘의 실제 모습에 비하면 고흐가 상상한 하늘은 너무 순진한 하늘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이 망원경으로 관찰한 우주의 모습은 고흐의 상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현란하고 난폭합니다. 거대한 성운 속에서 별들이 탄생하고, 별이 폭발하고, 은하와 은하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이제 셰익스피어의 저 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짐작이 갑니까? 셰익스피어가 과학자도 아니면서 이 우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았을까요? 셰익스피어가 빅뱅을 알았을까요? 블랙홀을 알았을까요?

셰익스피어는 뉴턴이 태어나기 1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지동설이 나오기도 전이었지요. 그때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우주는 이 지구보다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시절 셰익스피어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인도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왜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합니다.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이 우주의 모습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본 우주는 실제 우주의 아주 작은 한 모퉁이에 불과합니다.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우주에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것만 가지고도 과학자가 관찰한 것이 예술가가 상상한 것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는 관찰만 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천문학자라고 하면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알겠지요? 물론 그들도 망원경을 들여다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현미경을 보는 데 사용하고, 현미경을 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계산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망원경을 가장 보지 않는 사람들이 천문학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블랙홀이나 빅뱅은 망원경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블랙홀은 빛을 내지 않아서 망원경으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빅뱅은 138억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빅뱅에서 만들어진 빛은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도 못했습니다.

블랙홀이나 빅뱅은 과학자들이 관찰이 아니라 계산을 해서 알아낸 것입니다. 계산을 통해서 우주의 나이를 알고, 계산을 통해서 우주의 크기를 알아낸 것입니다.

과학에서 관찰이 중요하지만, 관찰할 수 없을 때 과학자들은 계산합니다. 그런데 계산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빅뱅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나 빅뱅 이전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자들이 계산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에 우리 우주만 있는지 얼마나 많은 우주가 더 있는지 계산도 할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계산도 할 수 없는 다중우주라는 말이 현대의 유행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중우주는 과학자들이 관찰한 것도, 계산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한 것입니다. 이렇게 계산도 할 수 없을 때 과학자들도 예술가처럼 상상하게 됩니다.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관찰이 안 될 때, 과학자들은 계산합니다. 계산도 할 수 없을 때, 과학자들은 상상합니다. 관찰이 상상을 뛰어넘고, 계산이 관찰을 뛰어넘고, 그리고 다시 상상이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이렇게 돌고 돌아 과학과 예술이 서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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