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연장 18일 만에 돌연 취소 ‘국정원 배후 의심’
2022년 8월부터 KT 지니TV(ch262)에서 방송해왔던 통일TV가 지난 1월 18일 KT로부터 갑작스레 퇴출 통보를 받고, 당일 송출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통일TV가 퇴출된 직후, KT는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의 강연을 프로그램으로 편성한 JBSTV를 새로운 채널 사용업체로 승인했다. 내막을 심층 취재했다. /편집자 주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북한방송을 개방하겠다”고 공약했던 윤석열 정부 하에서 KT 지니TV를 통해 방송하던 통일TV가 폐쇄됐다. 이는 30년 케이블TV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강제 송출 중단으로, 통보 이후 두 시간 만에 송출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필자는 2001~2013년 《민족21》에서 기자와 편집국장,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민족21》은 ‘남북이 함께 하는 통일전문지’를 내걸고 2001년 3월 창간된 월간지다. 창간 이후 《민족21》은 해마다 서너 차례씩 방북 취재를 하며 북의 실상을 편견 없이 보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민족21》은 대표적인 통일언론으로 성장했다. 당시 남쪽 언론사 중에서는 북을 가장 많이 방문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통일부는 더 이상 《민족21》의 방북 취재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2011년에는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기도 했다. 《민족21》은 정권으로부터 북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해온 ‘종북잡지’로 낙인찍혔고, 2013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케이블TV 역사상 첫 강제중단
그런 경험 때문에 2022년 8월 17일 IPTV인 KT 지니TV(ch262)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통일TV가 무척 반가웠다. 기사와 사진으로 북을 소개한 《족21》과 달리 통일TV는 24시간 방송채널이다. 현재는 조선중앙TV에서 제공받은 영상을 소개하는 〈북녘의 하루〉와 〈생생 북녘〉 2개 프로그램과 각 분야 전문가 강의를 방송하는 〈내일로 가는 지혜의 샘터〉로 구성돼 있지만, 조만간 직접 방북 취재한 영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지난 1월 18일 KT는 “조선중앙TV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북한 체제를 선전했다”는 이유를 들어 통일TV의 송출을 중단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진천규 통일TV 대표로부터 설명을 들어보았다.
진천규 대표는 “KT 직원이 통지서를 들고 온 게 오후 5시였다. 통지서에는 방송 내용이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대단히 추상적인 문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통지서를 전달하고 간 뒤 2시간 후인 오후 7시부터 송출을 중단해버렸다. 백번을 양보해 방송 내용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사전에 주의나 경고를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KT는 그런 절차조차 무시했다. 막무가내로 방송을 중단시켰다. 다들 30년 케이블방송, IPTV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불현듯 기시감이 들었다. 12년 전 《민족21》 탄압이 생각났다. 그때처럼 국정원이 직접 나서서 국가보안법으로 압수수색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다. 그래서 더욱 고약하다. KT는 통일TV와의 계약을 2023년에도 정상적으로 연장했다고 한다.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면 사전에 해지 의사를 충분히 밝힐 수 있었다. 하지만 KT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는 18일 만에 퇴출을 통보했다. 갑작스레 벌어진 이번 사태가 KT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님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대통령 공약 뒤엎는 돌발상황
통일TV는 2018년 8월 북측과 저작권 사용에 대한 협력사업 합의서를 체결한 뒤 4년 가까이 개국을 기다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등록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불허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정원의 반대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21년 5월 등록증을 받았지만 채널 확보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가 “북한 방송을 개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통일부도 2022년 7월 대통령 업무추진 보고에서 ‘북한 언론 국내 공개 허용 검토’를 언급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통일TV도 7월 20일 KT와 계약하고, 8월 17일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통일TV를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직접 나서자니 ‘언론 탄압’ 논란도 염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손 안 대고 코 푼다고, 결국 KT가 총대를 멘 셈이다. 한쪽에서는 북한 방송 개방을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북한 영상을 보여줬다고 된서리를 맞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벌어진 셈이다.
통일TV 대표는 《한겨레》 사진기자 출신인 진천규 기자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공동취재단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그는 2001년 미국으로 이민 가서도 언론 활동을 계속했다. 남북관계가 꽉 막힌 2017년부터 18차례 방북 취재를 했다. 취재기를 담은 책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통일TV협동조합의 이사장은 김진향 전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 역시 대표적인 남북관계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이들에게까지 ‘종북’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합당한가? 그렇다면 화해협력과 평화번영의 남북관계는 더는 설 자리가 없다. 오직 남는 것은 선제타격과 주적론뿐이다.
김진향 이사장은 “통일TV는 북측 방송 중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교육, 기업과 협동농장 운영사례 등을 중심으로 남측 국민이 전혀 몰랐던 북측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북한 바로 알기 방송’이었다”며 “북녘 동포들을 적이 아니라 한 민족, 한 가족, 한 형제자매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북녘 동포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통일TV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통일TV는 송출이 중단되면서 유튜브 통일TV 채널을 통해서만 지난 방송을 다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대체적인 시청 소감은 “공중파에 나온 ‘통일전망대’나 ‘남북의 창’ 프로그램보다 훨씬 생생하고 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재밌다”는 정도다.
언론비평전문매체인 미디어오늘에서 “권력의 언론에 대한 압박과 탄압은 점점 더 치밀해지고 전면화되고 있다”면서 “통일TV 사태를 변방 언론의 외로운 싸움으로 놓아둔다면 그것은 ‘통일TV 문제’가 아니라 ‘한국언론의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영민 1998년 월간 말지 기자로 언론 활동을 시작해 민족21에서 10여 년간 기자, 편집국장, 대표를 역임한 남북관계, 평화통일 분야 전문가.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복한 통일 이야기>를 썼고, 현재는 사단법인 평화의길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평화의길 유튜브 방송 <명진TV>를 총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