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형벌…용서를 구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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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형벌…용서를 구하는 시간
  • 이지상 가수
  • 승인 2023.02.06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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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말 “밥 좀 사주세요”

그 여인이 서 있던 곳은 전철역으로 가는 상가 뒤편의 후미진 골목이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고 간간이 성경책을 품에 안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곳이었다. 여인은 사람들이 지나칠 때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는데 농익은 은행잎이 도로 위를 구르는 음량만큼 이어서 어지간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여인은 조금 퉁퉁했고 머리는 감지 않았으며 오래전에 세탁한 듯한 코트를 입고 있었으나 지나치게 낡지는 않은 신발을 신고 있어서 노숙인이라고 여길 만큼은 아니었다. 여인은 늘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가 읊조린 말은 총 여섯 음절이었다. 뒤의 네 음절 사주세요는 확실히 알아들었으나 앞의 두 음절 ○○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파는 것은 분명 했지만 여인은 내놓은 물건이 없었고 몸집 만 한 트렁크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다.
 

 

여인은 간혹 아무도 지나치지 않는 빈 공간에서도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여인이 바라보는 맞은편엔 교회 담벼락 위로 십자가가 선명했다. 여인의 말, 앞의 두 음절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어느 날은 아마도 낙엽이 수북이 쌓인 무렵이었을 것이다.

전철을 타고 두리번거리면 여인의 말이 이명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날, 여인의 말을 음절 따라서 중얼거리다가 문득 멈칫, 시선은 허공에 고정되었고 아무것도 잡지 않은 손바닥인데도 땀이 맺혔다. 몸은 내 것이 아닌 양 굳어지는데 눈시울만큼은 자꾸 뜨거워졌다. 여인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나의 목에서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밥 좀그 여인의 말은 밥 좀 사주세요였다.

첫눈이 내렸고 겨울이 왔다. 여인은 더 이상 그곳에 오지 않았고 그 골목을 지나면서 준비해두었던 만 원짜리 한 장도 점점 꼬깃해졌다. 그때 용서라는 말을 떠올렸다. 더 정확히는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일곱 글자였다.

20092월 천국의 시민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의 유언은 사랑하세요, 그리고 용서하세요였다. 사랑이 여린 씨앗을 보듬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일이라면 용서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꿰매어 빚어내는 빛나는 환생을 꿈꾸는 일이다. 사랑이 자신을 내어놓음으로써 희열을 얻는 적극적인 행위라면 용서는 총탄이 휘젓고 간 죽음의 자리에 억지로 꽃 한 송이를 놓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희열과 고통 사이의 어디쯤에서 타협하는 일을 삶의 지혜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고맙게도 추기경의 유언을 사람들은, 사랑과 용서 사이에서 적당함으로 안주했던 지혜의 추를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옮기라는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40만이 넘는 추모객이 명동성당을 찾았고 그해 장기기증이 폭주했었다. 추기경의 삶을 시대의 스승으로 여기며 배우고자 했던 나에게도 유언은 큰 울림이었다. 내어놓을 것이 빈약해 사랑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라도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했다. 다만 그런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용서는 될 수 있는 한 많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용서를 해야 할 일 또한 많지는 않았다. 도리어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을 제로섬(zero-sum)게임의 사회로 본다. 누군가 배부르면 누군가는 배곯는 이 저열한 게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악착같이 달려들어 남의 것을 더 많이 빼앗거나 아니면 게임 적응 능력이 부족한 패자들, 빼앗긴 자들 간의 연대를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나는 후자의 길에서 서성거렸다. 애초 손에 쥔게 없으니 내놓을 것이 없었고 올라가 본 적이 없으니 내려가야 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니 나의 호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누군가의 노력을 탐한 것이고 나의 입에 들어온 음식은 또 누군가의 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여겼다. ‘남의 돈 빼앗아 먹고 살지는 말라는 어머니의 유지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처지이니 용서하는 일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의 근간은 연민에서 비롯된다. 굳이 사단(四端)으로 치자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의 결과다.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일은 위험하다. ‘용서를 구하는일은 부끄러움에서 나온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뿌리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일은 조금은 지나쳐도 좋다.

그때 추기경의 유언에서 한마디가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상상했다.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 그리고 더 많이 용서를 구하세요그 한마디가 사람들이 가슴속에 각인이 되었다면 세상은 좀 더 사람이 사는 마을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이지상 가수
이지상 가수

내일도 그 여인이 서 있었던 골목의 그 자리를 지나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여인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다시 한번 더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여인의 곯은 배를 생각하며 국밥을 먹거나 밤새 떨었을 여인의 겨울나기를 걱정하며 옷깃을 여밀지도 모른다. 여인의 가난을 묵인한 죄에 비해서는 너무도 가벼운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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