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활극 민주시장 오민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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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활극 민주시장 오민심-7
  • 글 : 이재표, 삽화 : 최나훈
  • 승인 2023.02.16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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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두 사람이 한 건 할 줄 알았어”
삽화 : 최나훈
삽화 : 최나훈

도미토리가 최소한 4성급 호텔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최부호 의원은 멘붕이 왔다. 100억대 자산가인 그는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 느긋하게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별 다섯 개 이하에서는 자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초선 때 경험한 국외연수도 이번과는 딴판이었다. 사실 최 의원은 첫 국외연수 때 처음으로 의원 하기를 잘했다고 느꼈다.

평생 사장님소리를 들으며 받았던 대우와는 분명 다른 차원이었다. 부모님의 양곡상을 물려받은 그는 양곡 대부업부터 시작해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돈놀이로 돈을 불렸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금배지까지 달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는데, 장사할 때 상전 같았던 공무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뀌니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다.

첫 국외연수 때였다. 새벽 비행기를 타느라 아침을 못 먹을 것 같아서 따뜻한 모찌나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함께 연수를 가는 의회 사무국 직원이 찹쌀떡 도시락을 준비해 왔다. 최 의원은 말랑말랑한 모찌를 베어 물며 , 이게 권력의 맛이구나생각했다. 그런데 도미토리가 민박집이었다니!

다른 의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 의원과 단짝인 강성해 의원은 최부호 의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포털사이트 어학사전이었다.
●Dormitory :
공동침실, 기숙사.

강성해 의원도 현장에 도착해서야 사전에서 도미토리를 찾아본 것이다.

비좁은 방에는 이층침대가 마주 보고 있고, 공동으로 쓰는 샤워실 겸 화장실 한 개에 여성용 간이 화장실이 하나 더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일행이 남성 넷, 여성 셋, 총 일곱 명이라 다른 손님들과 섞이지 않고 남녀 각각 4인실을 쓰게 됐다는 점이었다. 배낭연수를 제안한 오민심, 안재학 의원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나섰다.


주방장은 제가 맡을게요. 침대에서 자고, 제때 밥 나오면 그게 호텔이죠. 뭐 따로 있습니까?”

이 정도면 5성급 도미토리가 맞아요. 제가 도합 1년 넘게 배낭여행 다녔잖아요. 우리끼리 쓰는 방에다 화장실도 두 개고, 밥해 먹을 주방까지 시설 짱입니다.”


삼십 대 청년 의원이 너스레를 떨자 육십 대 최부호, 강성해 의원도 맞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살렸다.


내일 저녁은 나랑 강 의원이 할게요. 의원 되기 전에는 맨날 밤낚시 다니면서 매운탕 끓이고 두루치기 볶는 데 선수였으니까.”

아니 민주시가 여성친화도시 한다는 거 아닙니까? 여성 의원들은 손에 물 묻히지 말고 남자 의원들이 여성친화도시 실습합시다.”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이튿날부터 걷고 버스를 타는 것은 기본이었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이층버스와 굴절버스가 다니는데 모두 전기로 움직이는 저상버스였다.

오민심 의원은 사전 자료조사를 하면서 런던이 승용차의 도심 진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도 학창 시절에 들은 런던의 잔상이 머릿속에 선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람들로 붐비고, 밀리는 차들이 꼬리를 무는 스모그 자욱한 거리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거리는 없었다.

런던시는 2003년부터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대해 혼잡통행료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1만 원 정도였는데, 돈도 돈이지만 불편함 때문에 반발이 컸다. 하지만 이내 교통혼잡이 줄고 대중교통 이용이 늘었다. 그러니 대기가 맑아지고 도시환경이 개선됐다.

2006년 켄 리빙스턴 시장은 혼잡통행료에 환경세 개념을 도입해 오염량 배출이 많은 사륜구동 차량 등에는 하루 최대 25파운드(4만 원)까지 통행료를 올렸다. 대신 전기차나 수소차 등은 통행료를 감면했다. 20년이 흐르니 런던의 대기는 대한민국의 시골 하늘처럼 맑아졌다. 런던은 한 마디로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승용차는 불편한 도시다.

도심이든 주택가든 차도는 좁고 인도는 넓었다. 사람들은 차도를 마음껏(?) 건넜다. 실제로 신호등은 별로 없었다. 사람이 길을 건너면 차는 항상 멈췄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따로 만들기보다는 도시 전체를 보행 약자 기준으로 설계했다.

빅벤으로 잘 알려진 국회의사당 인근에는 마그나카르타부터 청교도혁명을 이끌었던 크롬웰의 동상이 있었다. 오민심 의원은 그 앞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했다. 기부함만 놓여있을 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내셔널갤러리와 박물관에서 문화의 향기도 만끽했다.

연수를 다녀온 뒤에도 의원들끼리 두고두고 얘기했던 것은 태스코에서 끼닛거리를 산 뒤 공터에 둘러앉아 먹었던 여러 날의 점심이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나중엔 소풍 분위기였다. 물론 하루는 스테이크를 썰었다. 저녁을 먹고 식당 앞 넓은 인도 벤치에 앉아 영국사람들을 구경한 것도 즐거운 추억이다. 그들은 유니폼을 입은 낯선 동양인들을 구경했으리라.

런던에서 마지막 날 숙소 주방에서 평가회가 열렸다. 오민심 의원과 안재학 의원은 동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는 두 사람이 한 건 할 줄 알았지. 평생 이런 여행은 처음이었네. 내년에는 우리끼리 시간을 맞춰서 우리 돈으로 일본 갑시다.”

나는 이제 한국 가면 버스만 타고 다닐 거야.”

민주시는 버스 노선부터 바꿔야 해요. 혼잡통행료도 만들고.”

그럼 나중에?”

하하하!”


*다음호에 제8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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