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美 아트페어 ‘기후’ 주제로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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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된 美 아트페어 ‘기후’ 주제로 돌파구
  • 미국 LA= 황상호 전문기자
  • 승인 2023.02.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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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아트쇼 환경‧인권 관련 기획전시 ‘DiverseArt LA’
한호 작가의 9폭 병풍 ‘영원한 빛’, K-아트 ‘집중조명’
LA아트쇼 내부 모습이다. 철제로 만든 종이비행기 작품 옆으로 관람객이 오가고 있다. 사진=황상호
LA아트쇼 내부 모습이다. 철제로 만든 종이비행기 작품 옆으로 관람객이 오가고 있다. 사진=황상호

 

미국 서부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로스앤젤레스 아트쇼(이하 LA아트쇼)216(현지 날짜)부터 19일까지 LA 컨벤션센터 웨스트홀에서 열렸다.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갤러리와 박물관, 비영리 예술단체가 참가했다.

LA아트쇼는 1994년 갤러리 14개가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8년 갤러리 115개와 박물관 9곳이 참여하는 등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2014년 갤러리 134개와 비영리 예술단체 16곳이 부스를 열면서 규모 면에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부터 참여 갤러리 수가 줄어드는 등 정체기를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LA아트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특별 기획전인 다이벌스아트LA(DiverseArt LA)’를 개최했다. 다이벌스아트LA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기후와 인권 등 사회 정의를 주제로 한 기획전이다. 상업적인 아트페어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표현하는 작가를 앞세운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미디어아트 한호 작가와 비디오아트 카르멘 이사시(Carmen Isasi), 벽화가 주디스 바카(Judith F. Baca) 등 작가 9명이 초대됐다.


환경 파괴, 심판의 날이 왔다

한국작가 한호의 작품 ‘영원한 빛-21세기 최후의 심판'이다. 작품 뒤에서 LED 빛이 나와 작품을 비추고 있다. 작품 중앙에는 한 남성이 두 손을 벌려 핵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그 아래 소녀상이 있다.
한국작가 한호의 작품 ‘영원한 빛-21세기 최후의 심판'이다. 작품 뒤에서 LED 빛이 나와 작품을 비추고 있다. 작품 중앙에는 한 남성이 두 손을 벌려 핵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그 아래 소녀상이 있다.

9폭짜리 대형 병풍에 하얗게 타오르는 태양과 개기일식 중인 검은 태양이 함께 떴다. 병풍마다 브라질과 스페인 등 다양한 문명을 상징하는 인물이 그려 있다. 주로 여성과 소녀다. 가면 춤을 추는 여자와 승무를 하는 춤꾼, 히잡을 쓰고 온몸이 밧줄로 묶인 여성도 있다. 그 가운데 소녀상이 있다. 아래에는 여자아이가 바닥에 철퍼덕 앉아 울고 있다.

한국 작가 한호의 미디어아트 작품 영원한 빛-21세기 최후의 심판이다. 작가는 작품 중앙에 핵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을 그리고, 그로 인해 파괴되는 세계 다양한 문화를 표현했다. 병풍 아랫부분에는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의 철조망을 스케치했다.

한호 작가는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고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온난화는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 정말 지구 종말이 마지막이 가까워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파괴적인 현상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 여성과 아이라며 이데올로기와 욕망에 사로잡힌 현 세태를 꼬집고 싶었다"고 작품 취지를 설명했다.

작가는 단단한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다시 구멍을 뚫어 LED 빛을 투사하는 방법을 썼다. 동양과 서양, 이성과 감성의 만남이다. 빛의 강도와 색감에 따라 작품은 다르게 표현된다. 전시관에서는 작품과 함께 북소리와 징소리, 꽹과리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주디스 바카의 작품 ‘신이 여성일 때(When God Was A Woman)’다.
주디스 바카의 작품 ‘신이 여성일 때(When God Was A Woman)’다.

생태계를 자원'으로만 인식했던 서구식 이원론이 환경 파괴의 시작점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이 과학만능주의와 인종 차별, 여성 억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 생태 여성주의(Eco-feminism)가 주목받고 있다. 여성적 보살핌으로 자연과 인간의 호혜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옥수수와 보리로 된 모자를 쓴 여신이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고 있다. 팔은 나뭇가지가 되고 발은 뿌리가 되어 온 우주를 연결한다. 연못에는 인간 역사 이전의 고대 생명체가 살아 숨쉬고 있다. 인간의 심장이 고대 동물의 탄생과 같은 원리로 세포에서 움트고 있다.

여성 13명이 손바닥을 펼쳐 하늘을 바라다 본다. 뒤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한다. 화염은 불사조처럼 솟구쳐 날아오른다. 여성은 하늘의 계시를 두려움 없이 기다리고 있다. 붉고 검은 신체에서 생명력이 느껴진다. 화산의 재에서 풍요로움이 시작됐고 그 축복 속에서 인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LA 원로 벽화가 주디스 바카(Judith F. Baca 1946년생)의 작품 신이 여성일 때(When God Was A Woman)’화산 폭발에서의 13인의 여성(Thirteen Women in the Volcano Eruption)’이다. 주디스 바카는 나무판 3개를 이어붙인 캔버스 앞 뒤에 아크릴로 이 작품을 그렸다. 자연이 인간을 낳고 다시 인간이 자연을 돌보던 생태 사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슨트 패트릭 무어는 많은 문화권에서도 그렇지만, 그리스 신화와 아즈텍 신화에서는 신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습니다. 그 여신은 우리와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와 물, 자연의 모든 것과 연결돼 있었죠"라고 말했다.


찜통 된 거리, ‘웃을 수밖에

거리예술가 에스시메로(S.c.MeRo)의 설치 작품이다. 다운타운의 열섬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거리예술가 에스시메로(S.c.MeRo)의 설치 작품이다. 다운타운의 열섬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도시 거리에 있는 소화전이 불타고 있다. 줄무늬 죄수복을 입고 있는 팔과 다리가 소화전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뜨거워진 배수로에서는 고기를 굽고 있고 하수구 홀에서는 한창 계란 프라이가 진행 중이다. 거리예술가 에스시메로(S.c.MeRo)의 설치 작품이다. 가로수가 적어 여름마다 열섬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LA 다운타운의 모습을 희화화한 것이다.

이 전시는 비영리단체인 스키드로 쿨링 리소시스(SKID ROW Cooling Resources)와 홈리스케어LA(HHCLA)가 공동 기획했다. 기후 변화로 여름철 기온이 올라가는데도 여전히 LA시와 건물주는 나무 식재 사업 등 기후 변화 대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사는 노숙인들은 여름철 고온 현상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큐레이터 톰 그로드(Tom Grode)는 충청리뷰와 인터뷰에서 다운타운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하면 녹색이 거의 없다.”건물주가 가로수를 심고 관리해야 하지만 최소 5년은 관리해야 해 관계 당국에 벌금 내는 것으로 무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옷을 밟지 마시오

카르멘 이사시(Carmen Isasi)의 ‘사람이 살지 않는 곳(Uninhabited)’이다. 구겨진 이민자의 옷을 깨끗한 정장 차림의 백인 남성이 바라보고 있다.
카르멘 이사시(Carmen Isasi)의 ‘사람이 살지 않는 곳(Uninhabited)’이다. 구겨진 이민자의 옷을 깨끗한 정장 차림의 백인 남성이 바라보고 있다.

전시장 공간 3면에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옷이 물속에 잠기는 영상이 동시에 상영된다. 물속으로 잠기는 옷들은 구조해 달라는 듯 손을 위로 뻗기도 하고 때때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축 쳐져 떨어진다. 영상은 계속 반복된다. 역사가 그러하듯이.

작가 카르멘 이사시(Carmen Isasi)사람이 살지 않는 곳(Uninhabited)’이다. 작가는 정치 불안과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해 이민 행렬이 늘고 있지만 선진국은 오히려 이민 문호를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과정에서 약소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파도에 휩쓸려 숨지는 등 인명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갤러리 바닥에 깔려 있는 옷도 전부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입었던 옷이다. 옷에는 그들의 국가와 처지, 혹은 더 나은 세상으로의 갈망이 녹아 있다. 그 작품을 주름 하나 없는 양장 차림의 백인 2명이 바라보고 있다.

●황상호

글 쓰는 사업가다. 청주방송(CJB)기자에 이어 미국 현지 중앙일보에서 신문기자를 했다. 이후 미국 인권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다, 현재 LA 컬처 투어리즘 업체 ‘소울트래블러17’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프로드 야생온천>, <내 뜻대로 산다>,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벼랑에 선 사람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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