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채주도 사회’ 종말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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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채주도 사회’ 종말이 다가온다
  • 백정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3.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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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급증, 주택시장 문제 넘어서 위기 상황 ‘경고등’
한은,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열고 금리 인상 중단 결정
선순환 끝나고 ‘부채 악순환 도미노’ 연쇄붕괴 시작돼

한국은행이 2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 수준에서 동결했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금리 동결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다. 당장 추가적인 공공요금 인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계속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중앙은행이 물가통제 수단인 금리 인상을 중단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국내 경기침체가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물가는 오르고, 소비는 둔화하는 스테그플레이션상황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형국이다. 갇혔다는 것은 손발이 묶여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우리 경제의 숨통을 조여 오는 것이 있다. 바로 미분양이라는 검은 구름을 타고 엄습하는 경제위기의 공포가 바로 그것이다. /편집자


 

한국은행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4% 가까이 올려 장기간 유지할 경우 아파트 미분양, 건설사 자금난, 시행사 부도, 신용 제공 금융기관 파산, 신용위기 확산으로 이어지는 ‘부채의 어두운 면’이 등장한다.
한국은행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4% 가까이 올려 장기간 유지할 경우 아파트 미분양, 건설사 자금난, 시행사 부도, 신용 제공 금융기관 파산, 신용위기 확산으로 이어지는 ‘부채의 어두운 면’이 등장한다.

쌓여가는 미분양은 붕괴 신호

국토부가 집계한 작년 12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의 규모는 68000가구를 넘었다. 그중에 절반 이상이 지방에서 쌓이고 있다. 그나마 청주지역은 전국적으로 분양률이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미분양 규모는 올 상반기 중 10만 가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미분양 10만 돌파는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찍은 규모다. 작년에 분양을 연기한 주택 물량과 올해 분양이 예정된 물량을 고려하면 미분양 주택이 연내 11만 가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나오는 중이다.

그러나 미분양 주택통계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규모를 압도하는 속도다. 지난해 6월 이후 올해 1월까지 전국 월별 미분양 주택증가속도는 국토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빠른 상황이다. 시쳇말로 대기권을 뚫고 치솟던 주택가격이 불경기를 만나 급전직하하며 쏟아내는 폭발음이 바로 미분양인 것이다. 그런데 이 폭발음은 단순히 주택가격의 하락 신호음에 그치지 않고 한국경제의 붕괴신호로 불릴 만큼 중요한 신호다.


무너지는 부채주도형 내수경제

그 이유는 부동산 자산이 대한민국의 경제 시스템과 직결된 뇌관이기 때문. 97IMF이후 한국경제는 부채가 주도하는 방식에 철저하게 의존해 왔다. 방식은 이렇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최저로 유지해 시중에 빌린 돈이 넘치게 만든다. 그러면 실물교환에 사용되고 남는 돈 대부분이 오늘 사면, 내일 오르는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된다.

그 과정에서 최근 문제가 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무담보대출방식이 금융회사를 매개로 동원된다. 부동산 버블이 만들어지고, 그 버블의 결과는 집값뿐만 아니라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고용을 마치 아름다운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유발하며, ‘빌린 돈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주체를 만족시킨다. 저금리 > 빌린 돈 > 자산버블 > 내수 성장으로 이어지는 도미노야말로 오늘의 한국경제를 있게 한 부채의 밝은 면이다.

부채전문가로 유명한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부채주도 성장정책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정책의 가장 큰 매력은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자산) 가격 상승이 지속되는 한 집과 집에 동반한 각종 내구재 소비는 물론이고, 건설 분야의 투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장 이보다 더 좋은 경기부양책이 없다.”

이렇다 보니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모든 정부는 겉으로는 부동산 과열을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부채라는 마법이 주도하는 경기부양책에 사활을 걸었다. “보수나, 진보다 똑같다는 표현은, 적어도 부채주도 내수경제 정책에 관한 한 진실이다. 그러나 이 마법의 도미노가 지켜야 할 절대조건이 있다. ‘한국은행의 저금리 기조가 바로 그것. 이 조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 ‘부채 기반 내수 경제 정책은 무너진다.

이를 막을 방법은 단 하나, 한국은행이 신속하게 저금리 상태를 회복해서, 시중에 빌린 돈을 넘치게 하는 것이다. 지난 2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인상을 중단한 이유다. 만약 한국은행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4% 가까이 올려 장기간 유지할 경우 아파트 미분양, 건설사 자금난, 시행사 부도, 신용 제공 금융기관 파산, 신용위기 확산으로 이어지는 부채의 어두운 면이 등장한다.

 

은행을 제외한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기관 부동산PF대출 잔액(금융감독원 제공)
은행을 제외한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기관 부동산PF대출 잔액(금융감독원 제공)

 

물가의 습격과 저금리의 배신

그렇다면, 왜 정부와 한국은행은 다시 금리 인하를 통해 코로나 이전의 0%대 저금리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해 82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인터뷰로 확실하게 그 이유를 밝혔다.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달러 환율인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따라서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물건의 개수는 그대로인데, 물건 살 돈이 많아지면 물건값은 오르고 돈의 가치는 내려간다. 돈이 많아져서 올라간 물건값을 낮추려면 둘 중 하나, 물건의 개수를 늘리거나 돈의 양을 줄여야 한다. 돈의 양을 조절하는 방식이 바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고, 금리 결정이다.

이제 물건과 돈의 자리에 원화와 달러를 놓으면 그것이 바로 원 달러 환율이다. 원화를 살 달러가 줄어드는데 원화 수량을 늘리면 원화의 가치가 폭락하니 한국은행도 원화의 수량을 줄여야 한다. 적당한 원화 가치는 적당한 외자 유치와 같은 말이다. 이것이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종속된 이유다.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막대한 재정지출로 달러 과잉 공급으로 물가폭등을 겪은 미국이 최근까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방준비제도가 시중 달러 유통을 줄이고 있는데 한국은행이 원화 공급량을 늘리면 한국은 금방 베네수엘라로 변신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꺾이지 않는 물가다. 국내 물가는 지난해 125.1%에 이어 1월에 5.2%로 상승했다. 주요국 물가가 꺾이는 것과 반대로 공공요금, 식료품 중심으로 물가가 오히려 더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3.5%인 현재 기준금리를 올리면 물가와 환율이 안정되는 반면, 수출과 내수는 침체하고, 반대로 낮추면 물가와 환율은 오르지만, 수출과 (부채에 의지한) 내수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한국은행의 오늘인 것이다.


2023, 내 자산을 지키는 비결은?

국가 경제는 내수, 수출, 정부재정 3개 기둥으로 만드는 건축물이다. 내수라는 기둥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무너지는 부채의 토대 위에 있다. 수출은 기본적으로 반도체와 대 중국 수출이 핵심 토대다. 그런데 수출 토대 역시 핵심 수출품목인 반도체의 글로벌 수요 위축과 대중국 무역적자로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단군 이래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고 걱정했는데, 올해는 1월과 2월 두 달 만에 작년 기록한 무역적자의 40%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달성(?)했다는 믿기 힘든 발표가 나왔다. 걱정이 아닌 두려움을 느껴야 할 상황으로, 한국경제를 누가 먼저 잡을지 미분양 증가 속도와 무역적자 폭 확대 속도가 경쟁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기둥은 재정지출이다. 재정의 토대는 정부 예산인데, 윤석열 정부는 부자 감세, 재벌 감세, 건전재정을 외치며 마치 야경국가로 돌아가려는 듯 주머니를 닫고 있다. 정부지출이 시중에 돈을 푸는 행위고, 돈이 풀리면 물가를 자극하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확대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현 정부는 사실상 무대책이다.

결국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3개 기둥 모두 토대가 쓸려나가는 위태로운 상태, 이것이 바로 2023년 우리 경제의 모습이다. 당장은 힘들어도, 결국 나아질 거라는 소리는 작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듣고 포기했다. 인구 규모 5000만 명이 넘는 나라에서 한 해 태어난 신생아가 26만 명을 겨우 넘었다는 사실은 인류사에 처음 등장한 인구재앙사태다. 세계가 한국경제의 장기전망을 낮은 출산율과 연계하며 주목하고 있다. 경제의 현주소를 정확히 이해한 다음 개인행동을 선택하자. 부자 될 고민은 망할 걱정을 해소한 뒤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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