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봤던 게 여기 다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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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봤던 게 여기 다 있군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3.03.0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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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서양문명의 뿌리임을 확인한 여행
신화·민주주의·소크라테스·올림픽의 나라

 

 

최근 2주일 동안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다녀왔다. 주제는 서양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관광보다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적을 탐방하는 여행이었다. 지금은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견원지간’처럼 사이가 좋지 않지만 과거 고대로마 시대에는 같은 뿌리였다. 그래서 양 국가에는 공통적으로 고대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다. 여행기간 동안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유적을 돌아봤다.

다만 여행을 앞두고 튀르키예에서 지진으로 인한 대참사가 발생해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초상집에 여행을 간다는 게 걸렸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룰 수 없었다. 막상 튀르키예에 가니 현지인들은 ‘코리아 최고’ ‘감사합니다’라며 환대했다. 이들은 “여행을 취소하지 않고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한국은 형제국가이며 이번 대참사 때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진 때문에 관광객이 급감해 큰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둘러본 여행기를 4회에 걸쳐 실을 예정이다. 두 나라는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라서 잘 알려져 있다. 정보 또한 넘친다. 그래서 관광지 소개가 아니라 거대한 서양문명의 뿌리를 탐방한 나만의 여행기를 쓰려고 한다. 

 

그리스의 얼굴 '파르테논 신전'
그리스의 얼굴 '파르테논 신전'

 

그리스까지 가는데는 거의 하루가 걸렸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직항노선이 아직 없다. 그래서 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뒤 그리스 아테네공항에서 내렸다. 하루를 제외한 6일 동안 아테네, 코린트, 크레타섬을 돌아봤다. 그리스의 면적은 한반도의 3/5 정도이고 인구 또한 1000여 만명 밖에 안된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가 붐비지 않아 좋았다. 더욱이 2월은 관광철이 아니다. 통상 4~10월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날씨는 따뜻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부러워 한 것은 짙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였다. 한국에서는 기상하자마자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이런 수치 자체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찾을 필요가 없었다. 해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수조원의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한국의 운명을 탓할 수밖에.

그리스는 듣던대로 서양문명의 뿌리를 간직한 곳이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누가 그리스를 과거에 매몰된 나라, 볼 것 없는 칙칙한 나라라고 했는가. 오히려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숨막히게 높은 고층건물이 덜해 좋았다. 여기서 있는 동안 고층아파트를 볼 수 없었다. 주택들은 낮았고, 높아야 3~4층이었다.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고, 후에 오리엔트 문화와 만나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했다. 고대 로마를 거쳐 동로마제국, 중세 서유럽, 이슬람제국, 르네상스에 영향을 미치며 서양문화의 근간이 됐다. 이 곳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라, 철학자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민주주의 발상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나라다.

또 소포클레스의 비극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제1회 근대올림픽,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의 나라다. 누군가는 여기에 세계 음악계의 거장인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노래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를 첨가한다. 한국의 성악가 조수미도 이 노래를 불렀다.
 

아테네의 도심 광장. 멀리 산 꼭대기에 아테네 랜드마크인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아테네의 도심 광장. 멀리 산 꼭대기에 아테네 랜드마크인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조각상의 섬세함에 반해
 

그리고 그리스는 수많은 신전과 아고라의 나라다. 도시의 꼭대기를 뜻하는 아크로폴리스에는 신전이 있다. 각 도시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은 당시 번듯한 신전을 여럿 지어야 체면이 섰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대한 대리석 돌기둥을 세우고 신을 모셨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친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제우스 신전, 헤라 신전, 니케 신전, 헤파이스토스 신전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대도시 유적지에 가면 신전과 함께 시장 혹은 광장을 의미하는 아고라가 있다. 여기서 일상적으로 토론이 벌어졌다. 아울러 원형극장, 목욕탕, 도서관, 화장실 등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유적들은 많이 파괴됐으나 일부는 남아 그 시대의 문명과 문화를 전했다. 박물관에는 어김없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문화재가 있었다. 그 양이 많아서 다 보려면 다리가 고생깨나 해야 한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들어가서는 수많은 인체 조각상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술책에서 봤던 것들이다. 얼굴 표정과 몸의 근육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주 재료는 대리석이나 청동인데 마치 밀가루 주무르듯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그런데 코가 뭉개졌거나 팔이 잘려나간 게 많았다. 이는 이민족의 침입이나 통치자들 사이의 권력투쟁시 조각상의 코를 훼손해 적국이 부활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죽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얼굴에서 가장 중요하며 제거하기 쉬운 게 코였다는 것.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에서 자주 발견되는 점이라고 한다.

이런 유물과 유적들을 보며 그 오랜 세월을 견디고 눈 앞에 있는 것이 새삼스레 고맙게 느껴졌다. 동시에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보존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세계인들이 한국에 와 줄서서 보고 가는 문화유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립고고학박물관의 조각상들
국립고고학박물관의 조각상들

 

도편추방제에 쓰였던 도자기
 

유럽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싹튼 것은 기원전 2000년경, 그리스의 남동쪽에 있는 섬 크레타에서 였다. 크레타인들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다니며 서아시아나 아집트 등과 무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 반도의 미케네인들이 습격해 크레타 문명을 무너뜨리고 미케네문명을 만든다. 하지만 기원전 1200년경 북쪽에서 도리아인들이 쳐들어와 미케네문명도 멸망했다. 이후 서로 공격하고 공격당하는 등 한동안 혼란의 역사가 이어졌다.

고대 그리스에는 도시국가가 많았다. 산이 많은 이 나라는 도시들이 뚝뚝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통일을 하지 못했고, 대신 한 때 1000여개의 폴리스가 있을 정도로 도시국가가 번성했다는 것. 아테네는 수많은 폴리스 중 하나였으나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이다. 아니 세계 최초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왕이 아테네를 다스리는 왕정이었지만 기원전 6세기경 귀족들의 힘이 커지면서 과두정으로 바뀌었고, 나중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정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등장한다. 귀족들이 아테네를 다스릴 때 불법으로 권력을 잡은 참주가 나타났다. 참주는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지배자 또는 그러한 독재체제를 말한다. 이 때 클레이스테네스라는 사람이 도편추방제를 제안했다. 도자기 조각에 참주가 될 만한 인물을 시민들에게 적어 내도록 하고, 지목된 사람을 10년 동안 아테네 밖으로 추방하는 제도다. 단 총 투표자가 6000명 이상 돼야 유효했다고 한다. 외국인, 노예, 여성들은 제외시킨 반쪽 민주주의였지만 기원전 6세기에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었다는 점이 놀랍다. 도편추방제는 현재의 주민소환제 기원이 됐다.

그런가하면 중요한 자리를 놓고 인선할 때는 추첨을 통해 선발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당시 도편추방제에 쓰였던 도자기와 추첨할 때 사용된 돌을 아테네의 아탈로스 스토아에서 확인했다. 이 유물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아탈로스 스토아는 파르테논 신전 아래에 있다. 현재는 고대 아고라 박물관이 됐다. 여기에는 아테네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이 있다.

 

도편추방제 때 쓰인 도자기 조각들
도편추방제 때 쓰인 도자기 조각들

 

아테네 시티투어버스
아테네 시티투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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