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죽골 장승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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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죽골 장승제에서
  • 이방주 수필가
  • 승인 2023.03.0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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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죽골 장승제에 다녀왔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얼음이 풀리고 흙이 부드러워진다. 못가에 버드나무는 잔가지부터 옥색을 띤다. 대보름은 대개 입춘과 이웃한다. 이때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면서 새해 사람살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 동제를 지내는 마을은 거의 사라졌다. 원형대로 전승되던 문의면 노현리 달집태우기도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문의면 남계리 방죽골에서 장승제를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주에서 청남대쪽으로 가노라면 오른쪽으로 방죽골 마을유래비가 보인다. 회덕황씨 문의파 낙향시조인 황희옥이 1470년경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땅을 개간하고 방죽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며 연년세세 황씨네 삶의 터전이 되었다. 마을은 나지막한 야산 기슭에 동남향으로 포근하게 들어앉았다. 앞에는 정방형의 방죽이 있고 방죽의 둑에는 수백 년 된 버드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졌다. 방죽 가운데에 동그란 섬을 만들어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본떴다. 단순한 배산임수가 아니라 작은 우주를 형상했다.

방죽 양쪽으로 길이 있다. 마을에서 오른쪽 길로 나가면 문의면 소재지이고, 왼쪽 길로 나가면 청주시내로 가는 큰길이 나온다. 양쪽 들머리에 석장승이 서 있다. 오른쪽에는 천하대장군이, 왼쪽에는 지하여장군이다. 자연스럽게 방죽을 건너 마주보고 인줄로 이어 성역임을 알린다. 석장승 옆에는 돌무더기도 있다. 아마도 예전에는 장승 옆에 솟대가 몇 서 있었을 것이다. 장승은 수백 년 마을사람들의 드나듦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마을의 전후좌우를 다 알 터이니 수호신일 수밖에 없다.

장승은 벅수라고도 한다. 마을 어귀에서 마을의 수호신이 되기도 하고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때로 마을 경계표지가 된다. ‘장승배기란 장승이 있는 자리에 생긴 지명이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제를 지내면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소망을 기원한다. 동민이 한마음이 되는 의미가 더 크다. 정월 열나흗날에 오곡밥과 아홉 가지 묵나물을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하고, 터주, 조왕, 성황, 장승에 치성하는 것도 한마음의 의미를 지닌다. 동제, 성황제, 장승제, 달집태우기는 소중한 우리 문화인데 지금은 사라지거나 변질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방죽골 장승제에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이런 행사는 대개 신시(申時)에 시작한다. 오후 3시에 마을회관에서 풍물로 천지를 진혼하며 시작했다. 꽹과리와 징으로 하늘을 부르면 북과 장구가 땅의 소리로 화답한다. 먼저 천하대장군 앞에서 제를 올렸다.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향기로 장승을 깨운다. 제수는 단순하다. 삼색과일, , 산적, 흰무리, 돼지머리가 전부이다. 독축, 소원지 소지, 축문을 불태우는 망조례, 떡과 술을 나누는 음복례로 끝났다. 천하대장군제가 끝나고 지하여장군제도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특이하게도 떡과 북어, 동전 삼천 냥을 백지에 싸서 무명실로 묶어 장승에 매달았다. 수백 년 받아먹었으니 민심이 변하는 것도 다 알겠다.

간소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보였다. 대개 이런 행사를 하면 선출직 인사들이 몰려와 주민들과 눈맞춤을 한다. 방죽골 장승제는 순수하게 마을 사람들끼리 간소하게 지내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잿밥에 시선을 두는 이가 없으니 나 같은 참관자까지 염불에 마음을 두게 된다. 회덕황씨가 아니라도 마을은 모두 하나가 된다. 나도 지폐 한 장을 놓고 재배했다. 참관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 것을 장승도 기억할 것이다.

내년에도 꼭 오라는 제주의 인사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입춘의 볕이 마을에 가득하다. 봄이 착하고 반듯하게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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