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배를 타고 크레타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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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배를 타고 크레타섬으로 간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3.03.16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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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서양문명이 싹트고, 크노소스궁전이 있는 곳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

 

그리스 코린트 시골마을. 아침에 일어나니 소박하지만 유럽의 시골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낮은 건물, 빨간색 지붕, 키 큰 나무, 마당에서 뛰어노는 개와 고양이 등. 한적하고도 아름다웠다. 주인이 아침식사를 하라고 해서 2층 식당으로 갔다. 빵, 우유, 삶은 달걀, 과일, 올리브, 잼, 꿀, 버터, 커피 등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맛있게 먹고 코린트 유적을 보러 간다. 아크로코린트는 높은 곳에 있는 코린트라는 뜻이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유사시에 주민들이 피난했던 요새같은 시설이 있다. 농성(籠城)의 본 뜻은 성문을 굳게 잠그고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성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국가들은 성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에 농성을 했다. 성을 어찌나 튼튼하게 쌓았는지 지금 봐도 놀랄 정도다.
 

미케네 유적 '사자의 문'. 가운데에 두 마리의 사자 조각이 있다.
미케네 유적 '사자의 문'. 가운데에 두 마리의 사자 조각이 있다.

 

이제 그리스 문명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미케네 문명을 확인하러 한다. 미케네는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 뒤를 이어 에게해를 지배했고 서아시아와 이탈리아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화려한 왕조였다고 한다.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은 트로이에 이어 미케네를 발굴했다. 미케네의 성문인 ‘사자의 문’ 안쪽에서 수혈묘를 발견해 이 지역이 미케네라는 것을 알렸다고.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이 곳에 황금이 많았다고 했다. 실제 무덤의 부장품을 통해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무덤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무덤은 아가멤논 것이라는 설도 있다. 거대한 사자문과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를 보고, 박물관에서 미케네 문명을 대표하는 유물 아가멤논의 황금가면도 확인했다.

마을로 내려와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요리를 하고, 할아버지는 음식을 나르며 심부름을 했다. 시골 마을에 가면 이렇게 노부부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많다. 파스타는 맛있고 푸짐했다. 할아버지는 수제 디저트까지 가져다주며 여행객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크레타섬의 상징 크노소스궁전.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여러 차례 파괴됐다고 한다.
크레타섬의 상징 크노소스궁전.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여러 차례 파괴됐다고 한다.

 

크레타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
크레타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

미노아 문명이 꽃 핀 곳
 

이 날 저녁에는 크레타행 페리를 탔다. 내일 아침이면 크레타섬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스에서 크레타섬으로 가는 방법은 비행기와 배가 있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만에 도착하지만, 페리는 8시간 정도 걸린다. 그럼에도 운치있는 야간 페리를 탄다. 창문으로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비쳤다. 페리는 침대칸을 갖춘 아주 큰 배였다. 1층은 식당이고 2층이상이 객실이다.

식당으로 가자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들었다. 줄서서 가면서 음식을 고르고 마지막에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빵, 고기, 샐러드, 음료수 등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객실로 돌아가고, 일부는 식당 의자나 복도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깊은 밤, 배는 흔들리는 기색도 없이 간다. 객실에는 1인용 침대 2개 혹은 3개, 화장실 겸 목욕탕, 의자 한 개, 옷장 한 개가 전부였다. 자다 깨니 창문이 환했다. 아침이다. 드디어 크레타섬에 도착했다.

크레타섬은 처음으로 서양문명이 싹튼 곳이다. 그뿐 아니다. 크레타섬은 신들의 제왕 제우스의 고향이며 저 유명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곳이다. 그러니 어떻게 안 갈 수 있는가. 크레타섬은 신비한 신화와 푸른 바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 관광객들이 넘친다. 특히 여름에는 짙푸른 바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고, 우리나라 제주도의 4~5배 정도 된다.

크레타섬은 유럽과 소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해양 삼각지에 위치해 일찍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했다. 때문에 고대 이집트와 오리엔트의 앞선 문명을 받아들였고 미노아 문명을 꽃피운다. 미노아는 그리스의 전설적인 군주 미노스 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2600년부터 기원전 1100년까지 1500년 동안 번성했다. 이후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그리스 본토 미케네인들의 침입을 받아 그리스에 흡수됐다.
 

크레타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
크레타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

 

크노소스궁전 터에 서다
 

미궁(迷宮)의 전설이 깃든 크노소스궁전으로 간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만들 것을 명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으나 꼬불꼬불해 나올 수 없는 궁전 말이다. 어떤 사건이 해결되지 않을 때 ‘미궁에 빠졌다’고 하고, 미궁 속의 꼬불꼬불한 길을 미로(迷路)라고 부른다.

미노스 왕은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다. 미노타우로스는 황소 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사람 고기를 먹는 괴물이다. 왕은 당시 약소국 아테네를 협박해 14명의 선남선녀를 바치도록 했다.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쓰기 위해서였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14명의 제물에 섞여서 크레타로 갔다. 그런데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반해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준다. 실이 감겨있는 실타래를 준 것이다. 테세우스는 실타래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은 뒤 들어가면서 솔솔 풀었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타래를 감으며 살아 나온다.

하지만 괴물을 물리치면 배에 흰 돛을 달고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테세우스는 깜빡 잊고 검은 돛을 달고 갔다. 그러자 아들을 기다리던 아이게우스 왕은 크게 낙심해 바다로 떨어져 죽는다. 이 바다가 에게해라고 한다.

미노아 문명의 상징 크노소스궁전은 실제 미로처럼 복잡하고 넓었다. 이 곳은 숱한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여러 차례 파괴됐다고 한다.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는 35년 동안 이 곳을 발굴하고 복원했다. 그는 미노스 왕의 전설을 믿고 크레타 문명을 찾아 나섰다. 마치 트로이를 발굴한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처럼. 에반스에 의해 비로소 크레타 문명이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같은 자재로 복원해 원형을 훼손했다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는 것.

이 곳은 왕실과 접견실, 창고와 주방, 예배를 드리는 장소까지 1300개가 넘는 작은 방들이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크노소스궁전은 왕궁중심이라서 내부 벽이나 천장에 신의 모습 보다는 궁정풍속, 동물, 식물, 물고기 등의 회화로 장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모든 유물은 복제품이고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크노소스궁전 터를 돌아다녀 보니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눈에 띄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궁전이 많이 허물어지기는 했으나 기원전 미노아 문명 때의 현장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지금 미노타우로스, 테세우스, 미궁의 신화가 있는 크노소스궁전에 있다.

 

소박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소박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밤의 크레타섬
 

이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만날 차례다. 이라클리온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미르티야라는 마을이다. 이 곳은 일부러 찾아가야 할 정도로 시골이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지 않으면 못 찾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건물이 한 채 서 있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박물관은 매우 소박했다. 작가의 아버지가 살던 집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작가가 쓴 편지, 일기, 사진, 유품, 각종 시청각 자료가 있다. 옆에는 역시 소박한 카페와 기념품 가게가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섬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나 튀르키예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내 자유의 소중함을 많이 설파했다.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씌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호쾌한 자유인 조르바와 주인공 ‘나’가 크레타섬에서 펼치는 재밌는 얘기다.

크레타섬은 밤이 되니 완전 다른 얼굴이다. 낮에는 신화와 역사가 융합된 오래된 섬 느낌이 강했는데 밤이 되자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중심도시 이라클리온의 음식점과 카페의 불은 밤 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도심에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많았다. 네온사인도 최첨단을 걷는 뉴욕이나 서울처럼 밝지 않고 아늑했다. 중심도로를 조금 걸어가니 바닷가가 나왔다. 주변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으며 잠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생각을 한다. 이 책은 하루키가 1986~1989년 유럽으로 긴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이다. 크레타섬 얘기도 나온다.

다음 날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유물들이 어찌나 많은지 다리가 아프도록 오르내렸다. 크노소스궁전에서 출토된 진품들과 수많은 조각, 도자기, 그림, 장신구 등을 보았다. 미노아 문명이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 그리스에는 ‘타베르나’라는 전통 음식점들이 많다. 낮 12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영업을 한다. 고기, 생선, 샐러드 등을 판다. 수블라키라 불리는 꼬치구이, 농축 요구르트에 각종 채소를 넣은 차지키, 산양 또는 염소 젖으로 만든 페타치즈, 올리브가 대중적이다. 와인은 종류가 많고 맛도 좋았다. 또 그리스에는 오렌지가 흔했다. 가로수가 오렌지나무다. 어디서든 주렁주렁 달린 오렌지를 볼 수 있다.

 

크레타섬의 밤 거리
크레타섬의 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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