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파는 단맛의 특파원이며 셰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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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파는 단맛의 특파원이며 셰프다
  • 충청리뷰
  • 승인 2023.03.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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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쪽 같은 선비가 아니라 파쪽 같은 머슴이라고!

 

3월 초, ‘조선대파를 뽑았다. 키가 작고 단단했다. 겨우내 얼다 녹다 생육하면서 매운맛이 단맛으로 변한단다! 대파를 뽑으면 땅이 열리고 놀란흙이 뽑혀 올라온다. 대파 뿌리에 묻어 올라오는 생흙이 놀란흙이다. 해토하면서 붉은 흙의 속살이 딸려 나왔다. 흙내음이 맑고, 매웠다.

지난가을 논두렁에 한 줄로 길게 대파와 쪽파를 심었다. 노지(露地)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겨울을 났다. 한파주의보와 폭설경보를 푸릇한 몸 안으로 들이면서 견디었다. 파는 겨우내 더욱 멍이 든 듯 더욱 푸르딩딩 결기를 보였다.

 

 

“2~3월 파는 보약이야. 날것으로 씹어먹어도 달아.”

팔순 노모의 말씀이다. 만신몸주와 대지의 대모신이 몸을 푸는 3월 초. 파는 봄의 전령사다. 냉이, 달래, 섬초와 함께 봄의 대표 먹거리다. 파는 봄의 특파원이다. 쓴맛에도 수십 가지 종류가 있듯이, 단맛에도 수십 가지가 있다. 매운맛이 변해서 만들어진 파의 단맛은 맛의 새로운 발명이다. 봄의 대파를 먹으면 꽃샘추위조차 달고, 공기조차 달아서 숨을 쉴 때마다 단맛이 들락날락했다. 진천 촌구석의 조선대파는 단맛의 셰프이며 특파원이다.

파친놈(파에 미친 놈)’이 되어 볼까? 대파를 끓는 물에 데쳤다. 데친 대파를 그냥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달다! 막걸리 한 병에 데친 대파 백 포기 넘게 단숨에 씹어먹었다. 대파로 두둑하게 배를 채웠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대쪽 같은 선비가 아니라 파쪽 같은 머슴이라고. 그게 더 살맛 난다고!

파의 내부는 단소나 피리처럼 비어 있다. 내부는 파란 공기와 공명음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내시경으로 파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파 줄기의 텅 빈 내부에 수핵이나 수액이 흐르는 것일까?

나는 쪽파를 다듬어 쪽파김치를 잘 담을 수 있는 남자에 해당한다. 노모랑 마당 귀퉁이에 앉아서 이른 봄 햇살을 실컷 쏘이면서 쪽파 껍질을 벗긴다. 손톱과 지문으로 파란 야청빛 물이 알싸하게 배고, 파릇파릇한 파 향기를 솔솔 풍긴다. 내가 담그는 쪽파김치는 아주 단순하다. 별것 없다. 생강과 마늘을 넣지 않는다. 그래야 파 본연의 맛이 더 짙다. 왕소금에 살짝 절인 쪽파를 술술 깔고 멸치액젓을 술술 뿌리고, 새우젓을 고명처럼 얹고 고춧가루를 팍팍 뿌린다. 그게 전부다. 그렇게 김치통에 쪽파와 멸치액젓과 새우젓과 고춧가루를 켜켜이 번갈아 쌓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묵은 김장의 김칫국물을 살짝만 붓는다. 그러면 맛이 기가 막히다.

지금이 가장 달 때여. 날것으로 씹어먹어도 달아. 살짝 데쳐서 삶아 먹어.”

작년 이맘때보다 파값이 무려 360%나 올랐다. 그게 석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삼겹살집에서는 파절이가 실종되었다. 고기보다 비싼 파값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때도 우리 집은 파 풍년이었다. 시골에 다녀올 때 대파, 쪽파, 파김치를 잔뜩 가지고 온다. 시골에는 사계절 내내 파가 끊어질 날이 없다. 비닐하우스와 노지 텃밭과 밭두렁에서 사계절 내내 파가 자란다.

파는 여름파와 겨울파가 있다. 봄에 심고, 가을에 심는다. 대파는 옮겨심으면 더 잘 자란다. 겨울 대파는 노지에서 한겨울 추위를 이긴다. 겨울파는 저온기가 되어도 휴면이 되지 않고, 한겨울에도 생육을 한다. 눈보라를 뒤집어쓰고도 파릇파릇하다. 대나무나 소나무처럼 겨울에도 파릇한 기상을 지니고 있다.

파는 뿌리로 호흡하기 때문에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파를 심을 때 골에 볏짚을 넣어주기도 하거나, 흙을 깊고 잘게 갈아 가급적 푸석푸석하게 해준다. 물 빠짐이 좋은 사양토가 좋다. 모를 높이 올린 골의 남쪽 측면으로 눕혀 눌러주면서 복토를 한다. 눕혀 심어도 자기들이 알아서 일어나 꼿꼿하게 자란다.

대파는 굴, 꼬막, 소고기, 돼지고기 등과 기똥차게 잘 어울린다. 삼겹살과 대파김치의 조합은 환상의 짝꿍이다. 소고깃국을 끓일 때 소고기무우대파국을 끓이면 천하일미가 된다. 육개장에는 대파가 듬뿍 들어가야 한다. 대파라면,

쪽파로는 파전이 가장 유명하겠지? 해물파전이나 낙지파전에 쪽파를 듬뿍 넣고 지글지글 기름에 부쳐내면 살아진 입맛도 다시 살아나는 법이다. 쪽파김치, 쪽파무침은 말해서 무엇하랴. 쪽파를 그냥 삶아서 그냥 초고주장에 찍어서 먹으면 새콤달콤하니 한 끼에 수백 개의 삶은 쪽파 숙회를 먹을 수 있다. 해물파전, 오징어 문어 쪽파말이, 쪽파숙회, 쪽파부침개 등등…….겨울파를 5월까지 두면 파꽃이 핀다. 파꽃 모양은 하얗고 둥근 우주선 같다. 꽃대가 따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파잎이 오동통 살이 찌고 그 끝에 꽃이 핀다. 그래서 심장에 씨를 얹히는 꽃’, ‘하늘 향해 옹골지게 주먹질하는 꽃’, ‘별똥별 씨앗을 품는 꽃등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장인수 시인 국어교사
장인수 시인 국어교사

파씨는 새까맣다. 한두 잠을 잔 어린 누에들이 싸지른 까만 똥알과 거의 흡사하다. 씨앗 한 봉지에 오천 원 한다. 파촉이 올라오면 새까만 파씨의 껍질이 바늘 같은 파촉의 끝에 붙어서 함께 허공으로 올라온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파란 겨울 조선대파의 모습을 바라보면 신기하다. 계절을 깨우고, 흙을 깨우고, 내 정신과 영성을 깨우고, 내 입맛을 화들짝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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