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중민주주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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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중민주주의를 말하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3.2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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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편집국장 : 외딴 우물

18113, 영국 노팅엄에서 노동자 비밀조직이 공장을 습격해 예순세 대의 방직기를 파괴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총과 해머로 무장했고, 이 지역에서만 1000여 대의 기계를 부쉈다. 가상 인물일 수도 있는 주동자 러드의 이름을 따서 기계파괴운동을 러다이트(Luddite)’라고 불렀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방직기가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은 기계의 속도와 능률에 맞추어 하루 12~16시간을 일해야 했고, 급기야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마저 밀려오는 상황이었다. 영국 의회는 러다이트 처벌법을 만들었고, 18132, 열네 명을 목매달아 죽였다. 100년도 더 된 얘기다.

지금 우리는 더 큰 두려움에 직면했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할 것인가, 소외시킬 것인가?’라는 명제를 넘어서 인간의 퇴화와 멸종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완전 자동화된 기계는 노동에서 인간을 지우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로봇팔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것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 정도다. 오송역에서 세종시 구간에는 운전자가 타지만 운전대는 잡지 않는 자율주행 버스가 다닌다. 현행법으로 인해 운전자가 타지만, 머지않아 그는 버스에서 내릴 것이다. GPT가 문서를 작성하고 시나리오를 쓰며,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왔다. 충청북도는 AI영재고등학교를 만든단다.

커피를 내리고, 운전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인간의 노동은 이미 지워지는 중이다. 앞으로 그 노동을 위해서 필요했던 교육과 훈련의 시간도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간마저 지워지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노동의 종말그 이후를 염려하는 이 시대에 정부는 69시간 유연 근무를 추진하고 있다. “60시간 이상은 과하다라며 재검토를 지시하는 대통령은 애민군주(愛民君主)’인 양 행세한다. 5일에 60~69시간 근무하려면 하루 12~14시간을 일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파괴해야 하나? 일할(일하려는) 사람이 줄어 이주노동자를 모셔오는 나라에서 주 60시간 이상의 노동이 필요한지, 아닌지로 갈등을 조장하는 구태정치를 탄핵한다. 노동이 지워진 미래가 지옥인지, 낙원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노조 말살이나 궁리하는 시대착오를 탄핵한다.

이제 정치는 사람들(民衆, People)’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슨 주의(主義, Doctrine)’인가를 따지지 말고 재난과 위험, 안보(의료와 농업 포함)는 공공을 바라봐야 한다. 누구든지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초과이윤은 나누자고 말해야 한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예술가라는 김준권 판화가의 말처럼 학문과 예술도 도제(徒弟), 아카데미의 시대를 넘어서고 있다. ‘많이 팔린 책과 그림값이 뉴스가 되기보다 자작시낭송회와 동네오케스트라 연주회가 화제가 되어야 한다. 총체적으로 새로운 민중민주주의(Peoples Democracy)’를 꿈꿔야 하고, 더는 늦출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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