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통하는 충북인 ‘신채호-류자명-조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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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통하는 충북인 ‘신채호-류자명-조남기’
  • 조창완 전문기자
  • 승인 2023.03.2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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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베이징-타이완-다롄까지…폭넓고, 흠결 없는 서사
류- 윈난지역에 벼농사 가능케 만든 당대의 ‘농업영웅’
조- 중국 군대 최고 계급인 상장에, 정협 부의장 지내

중국 사람에게 당신이 아는 한국 사람은 누구냐라고 물으면 가장 높은 지명도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이 김교각(金喬覺 697~794) 스님이다. 신라 왕자로 태어났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불교계의 신화가 된 분이기 때문이다. 중국 4대 불교 성지인 우타이산(五台山), 어메이산(峨眉山), 푸투오산(普陀山), 지우화산(九华山)은 각각 보살을 모시는데, 다른 산들이 불교 초기 보살들을 모시지만, 지우화산 만은 지장보살이 곧, 김교각 스님이다. 안후이(安徽)성 지우화산에는 김교각 스님의 고향인 한국을 기려, 모든 안내에 한국어를 병기한다.

한국 지자체가 중국과 교류할 때 가장 좋은 모티브 중 하나가 중국에서 잘 인지된 한국 인물이다. 가령 중국 근대 음악에 큰 공헌을 한 광주, 전남은 정율성을 통해서 중국에 그 지역을 각인시켰고, 상당히 성공했다. 제주도는 한중 교류 초반기부터 진시황 때 전설 속의 인물인 서복(徐福)을 활용해 중국 속에 성공적으로 지역을 인식시켰다. 이런 인지도는 관광 등에서 다양한 성과를 봤다.

충북도 중국에서 통할 수 있는 인물이 적지 않다. 우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중국에서 대단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중국인들 속에 인지도는 크게 높지 않지만, 다양한 스토리를 발굴하면 중국에도 단재의 위대한 정신을 알리고, 충북을 중국에 각인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충주 출신 류자명(柳子明) 선생은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중국 농업에 큰 영웅인 만큼 충북을 알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당대 인물 가운데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중국 군인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청주 태생의 조남기(赵南起, 자오난치) 장군을 스토리텔링 할 수 있다. 다른 분들도 있지만 세 사람을 중심으로 중국 내 인물 스토리텔링을 구상해본다.


흠결 없는 독립운동가 신채호

중국 다롄 뤼순감옥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수감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단재는 이 감옥에서 순국했다.

31운동 2년 후인 1921년 베이징에 살던 단재 신채호는 이불 한 채를 살 돈이 없었지만, 천고(天鼓)를 발간하기 시작한다. 여러 필명으로 되어 있지만 원고는 대부분 단재 신채호 선생이 혼자 썼다. 대조선군정서(大朝鮮軍政署)의 승리 등 기사는 물론이고, ·한친우회(·韓親友會) 설립 필요성 등 다양한 주장을 담았다. 당시 국제정세도 소개하는데, 중심 논조는 조선과 중국이 합작해 일본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재 선생의 삶은 흥미로운 중국 서사다. 베이징, 상하이는 물론이고 체포된 대만 지룽항이나 운명한 뤼순감옥까지 중국 전역이다. 베이징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자유롭게 중국어로 잡지를 만들었다.

물론 중국인들 가운데 단재 신채호의 역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니 뤼순감옥이나 한중 교류사를 이야기하면서 단재는 별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단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거의 없고, 대전에서 연극 천고와 의열단이 만들어졌지만, 확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단재 선생의 중국 내 생활은 상당히 극적이다. 특히 1928년 대만 지룽항에서 체포되는 여정 등은 극적인 요소가 풍부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롄(大連) 지역을 여행하면서 뤼순감옥을 방문하지만 중국인들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강점기를 상기하기 위해 뤼순항을 찾는다. 뤼순감옥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터지만 신채호 선생의 순국 터이기도 하다. 관련해 더 많은 스토리를 발굴해, 극화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단재를 인식할 수 있다.


중국 농업의 귀인 류자명

류자명 고거. 후난성 창사 후난대학에 있는 류자명 옛집 자리. 아래에는 한글로 ‘버드나무가 고향을 떠나다’라고 쓰여있어 처연한 마음이 든다.
류자명 고거. 후난성 창사 후난대학에 있는 류자명 옛집 자리. 아래에는 한글로 ‘버드나무가 고향을 떠나다’라고 쓰여있어 처연한 마음이 든다.

류자명(柳子明, 1894~1985)은 위대한 독립운동가지만 아나키스트라는 족쇄로 인해 사람들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해방 후 갈라진 조국을 두고 선택을 포기했다가, 중국에 남아서 중국 농업의 위대한 영웅이 된 인물이다. 충주 태생으로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류자명은 충주농고의 전신인 충주간이농업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3·1 운동에 가담했다가 육로를 통해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이후 무장 항일 투쟁에 뜻을 두고 김원봉의 의열단에 가입하였으며, 이회영, 김창숙, 신채호 등과 더불어 아나키스트 노선에서 활동했다. 1924년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설립에 관여했다. 19304월에는 상해의 프랑스 조계에서 아나키스트운동의 강령과 규약을 발표했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중국인, 인도인들과 함께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김규식이 회장을 맡았으며, 기관지 <동방민족>을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발행했다. 류자명은 조선혁명자연맹, 남화한인청년연맹, 불멸구락부 등의 독립운동 조직에 꾸준히 가담했다. 1930년대에는 조선의용대 지도위원, 1940년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학무부 차장을 역임하였다.

류자명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1923) 기초에 참가했을 만큼 아나키즘 이론에 밝았으며, 탁월한 어학 실력과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독립 운동계의 일급 참모였다. 광복 후 한국전쟁 등으로 귀국 시기를 놓치면서 중국 후난(湖南)농업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했다.

류자명은 중국 당대 최고의 농업인이다. 벼농사가 어려운 윈난 지역에 벼농사를 가능하게 한 것도 류자명의 연구 결과였다. 후난대학은 중국 최고의 농업대학이고, 류자명 선생은 중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농학자로 평가받는다. 후난대학은 류자명 기념관과 동상을 세웠을 정도다.


조남기, 중국 군대 최고직 올라

2018년 베이징서 열린 조남기 장군 추도식
2018년 베이징서 열린 조남기 장군 추도식

중국 공산당은 1949년 해방 과정에서 한국인들에게 적지 않은 빚을 졌다. 덩샤오핑 등을 살리는 역할을 하다가 희생된 양림, 임시정부에서 파견되어 산시성 타이항산 전투에서 팔로군의 길을 열고 희생한 윤세주는 물론이고 공산당에 포병 부대의 기초를 세운 무정 장군도 빼놓을 수 있다. 동북항일운동에도 양세봉 장군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있다.

이런 한국 출신 군인의 계보를 이은 인물이 조남기 장군이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조 장군은 1939년 중국으로 건너가 자위대로 항일전을 하다가 군인이 됐다. 군대에서 상장을 지냈고, 군을 나와서는 우리 국회에 해당하는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의장(한국 국회부의장급)을 지냈다. 조남기 장군은 한중 수교 이후 군대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 한중 간 교류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특히 한국을 방문해 고향을 방문하는 등 수구초심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중국 내 동포들을 넘어 소수민족 가운데, 군대에서 가장 높은 직위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군은 상장이 가장 높은 직급으로 우리 군의 대장에 해당하는 직위다. 조 장군은 2018617, 향년 91세로 운명했는데, 625일 시진핑 등 전 상무위원이 도열한 가운데 베이징 빠바오산 혁명묘지(八宝山革命公墓)에 묻혔다.


역사, 농업, 군사 등 이벤트 만들자

그러면 인물을 통한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가능할까. 가장 기본은 인물 스토리를 잘 정리하는 것이다. 중국인들 가운데 조남기 장군을 아는 이들은 많지만, 조장군의 고향을 연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가장 청주공항에 조장군의 고향임을 알리는 홍보물을 두면 관심은 고조될 것이다.

요즘은 인물 이야기도 원소스멀티유즈가 필요하다. 이런 분들의 삶을 웹툰이나 만화 등으로 만들어야 한 명이라도 더 볼 수 있다. 문제는 단순한 연대기처럼 엮어서는 흥미가 없다. 강원도 춘천시가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다룬 <의병장 희순>을 만든 것처럼, 편한 콘텐츠가 있어야 사람들이 더 쉽게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에 관한 이슈가 나올 때, 부각할 수 있는 분이다. 현재 베이징대학 도서관 서고에 천고가 보관되어 있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누구도 원본을 촬영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충북도나 우리 역사 학계가 천고에 관한 이벤트(: 한중우호의 선도잡지 천고공개)를 진행할 경우 두 나라가 공동으로 노력할 것들을 만들어내고, 천고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수 있다.

류자명 선생은 한중 사이에 가장 중요한 미래 산업인 농업의 선도자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류자명 선생의 고향에 류자명 기념관을 만들고, 한중 농업의 미래를 설계한다면 충북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선도할 수 있다.

조남기 장군 역시 중국 내 한국인의 역할을 복기할 수 있는 소중한 역사 인물이다. 한중이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역사에서 온 가장 큰 교훈이다. 중국 교포 가운데는 조 장군에 이어서 2015년에는 중국 미사일 부대를 이끄는 이현옥 소장이 탄생했다. 이 소장은 2019년에 중국 군대 최고 기술자에게 부여되는 중국공정원(中国工程院) 원사(院士)에도 뽑혔고, 22년에는 중국공산당에서 서열 205명 아래에 171명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후보위원(中央委员会候补委员)에 선출되기도 했다.

●조창완

미디어오늘 등에서 기자로, 차이나리뷰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보건의료가 있는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회사에서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새만금개발청에서 전문공무원. 보성그룹에서 마케팅담당 상무,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경력이 있다. <달콤한 중국> 등 12권의 중국 관련 책을 썼고, <신중년이 온다> 등 인문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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