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의 인문학, 말랑말랑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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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의 인문학, 말랑말랑한 그것
  • 충청리뷰
  • 승인 2023.03.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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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고 위험한 맛이 나는 낭만에 대하여
주현진 인문학자‧한남대학교 초빙교수

세상 모든 것이 생기 돋우는 봄, 노랫소리 넘쳐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봄의 기운이 넓게 흩어지는 4월이 오면, 밝고 아름다운 노랫가락은 통념의 시를 벗어던지고 찬란한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저 파리한 하늘에서 마법이 내려온 것처럼, 이국의 이름 베르테르는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 입 속에서 조금 격하게 터지는 음들이 오페라 서곡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이리라. 곧 형언할 수 없는 낭만(浪漫)이 발생할 것이니 말이다.
 

 

고전문학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리며,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어보자. 젊은 베르테르가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샤를로트를 만나 클로프슈토크( Klopstock)의 시를 이야기하며 사랑의 격정에 휩쓸리는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약혼자와 이미 약속된 미래가 있는 샤를로트를 짝사랑하여 괴로운 베르테르가 잠시 떠났다가 되돌아 쏟아낸 정념은 얼마나 간절한가. 이제 둘의 사랑이 이루어져 낭만의 궁극에 가닿으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18세기 말 서구 낭만주의 문학의 효시가 된 베르테르의 수많은 편지들은 모두가 염원하는 도취적인 낭만을 선사하지 않는다. 베르테르의 자살이라는 결말이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에는 세련된 잔혹성만을 제안할 뿐이다. 이제 4, 목련꽃 가지들 흐드러진 나무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는 것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것만큼이나 잔혹한 일로 비춰질 것이다.

 

단어의 진짜 의미를 곱씹자

 

그럼에도 현대문학의 위대한 시작을 알린 낭만주의의 낭만으로부터 우리들은 여전히 환희의 감정을, ‘말랑말랑한 그것을 기대한다. 왜 그럴까? 엄밀히 따지면, 낭만주의 문학은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의 환상적인 정념과 비애를 동시에 품었던 문학인데 말이다.

아마도 낭만이라는 두 글자가 지닌 통속의 힘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랑의 감정이 아름다운 형식에 담기면, 우리들은 낭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연인들이 서로 마음을 교환할 때 낭만은 필수적인 요건으로 제시된다.

문예사조가 정의한 낭만의 본래 의미에서 우울 혹은 병적인 것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소들은 지워지고, ‘, 환상, 이상이라는 밝은 의미소들만이 현대 대중에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서구문학의 낭만주의를 받아들이면서 현대문학을 이룩한 한국에서 낭만을 수용하는 자세는 더욱더 단순하고 성급하다.

오늘날 우리들의 세속적인 대화에서 사용되는 낭만낭만적인단어들이 전달하는 의미의 가치는 사실상 피상의 가벼움 그대로이다. 이미 통념의 인문학적인 사고로 굳어진 상태다. 그래서 이 단어들의 의미를 따져 묻는 행위 자체가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문예사적으로 중요한 이 단어들을 단순히 조급하게 받아들인 데서 발생한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들은 더 진실하고 진정한 인문학적인 삶의 태도를 탐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여유로운 사유의 공간을 건설하지 못한 채 성급히 지적인 탐색을 추구한다면, 수많은 왜곡과 변형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념의 인문학이 생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낭만을 생각해보자. 사실은, ‘낭만 roman’은 평범한 자들의 문학적인반란이었다. 어휘는 중세시대 지식인들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닌 평민들이 사용하던 로만어로 된 운문형식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어원의 이야기는 일어난 사건이 아닌 이른바 상상된 허구를 뜻한다.

그러니까 낭만은 고정되고 무미건조한 통념이 아닌 상상력을 지시한다. 그리고 상상력은 평민들의 창의적인 때로는 권력자들의 눈에 발칙한생각이었을 것이다. , 중세사회의 평민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열정적으로 꾸며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당대 사회에서 승인된 통념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조롭고 수동적인 통념에는 상상력이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직자, 귀족, 농민이라는 세 계층으로 구조화된 서구 중세사회의 평범한 농민들이 상상력으로 펼쳐낼 수 있었던 환상적인 이야기는 인간의 정념을 토로한 사랑이야기뿐이다. 그것도 같은 사회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간 약속된 사랑이 아닌, 계급을 초월한 금지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어야 했을 테다. 그리하여 중세 말기 암울한 압제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초월적인 사랑을 노래하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일깨우는 낭만을 퍼뜨리면서 방랑하는 음유시인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주현진 인문학자.한남대학교 초빙교수
주현진 인문학자.한남대학교 초빙교수

이들의 격정적인 이야기, 사회질서를 전복하는 문학적 반란은 계승된다. 그래서 17세기 영어는 ‘romantic’이란 상상력으로 말해지는 문학 장르의 특성을 갖는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17세기 말에는 영혼 속에 위험한 맛을 일깨우다라는 의미로서 독일과 프랑스로 전파되었다. 이제 우리들의 4, 통념의 인문학이 낭만에 덧씌워놓은 말랑말랑한 맛을 버리고, 발칙하고 위험한 맛이 나는 낭만을 마음껏 상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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