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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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 우석훈 경제학자
  • 승인 2023.04.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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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경제학자

로봇 삼계명으로 유명해진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뉴욕 출신이지만, 그는 꼭 브루클린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가 태어난 곳은 러시아지만, 그의 정체성이 형성된 곳은 브루클린이다. 별나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문화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빈민가? 혹은 다문화적 분위기?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움베르트 에코도 북부 이탈리아라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정체성이 강한 편이다. 그도 고향 얘기를 많이 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아닌 것 같지만 작년에 개봉한 영화 <뜨거운 피>도 고향에 관한 얘기다. 부산 조폭들이 가상의 도시 부암이라는 항구 지역을 놓고 벌어지는 지역 패권에 관한 영화였다. 고향에 대한 영화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충청도의 관광 특구를 둘러싸고 친구들이 서로 죽이게 되는 <짝패>였다. 메이킹 필름에서 류승완 감독이 정두홍 무술감독에 대해서 한 얘기는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는 참 나쁜 배우예요. 평소에는 충청도 사투리 많이 쓰다가, 연기만 하면 서울말 써요.” 충청도 사투리가 참 많이 나왔던 영화였다.

가끔 자신이 태어난 곳을 강조하는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21세기 한국은 고향을 지운 사회가 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자동차 번호판에서 지역을 지운 시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전에는 지역명을 자동차 앞자리에 썼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다. 굳이 일상 생활에서 지역성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을까 싶다.

10대와 20대의 차이가 어쩌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대한 이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많은 20대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20대에게 어느덧 고향은 떠나고 싶은 곳이 되었다. 특히 공부 잘 하는 학생일수록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인서울이라는 말이 21세기 초반에 유행을 하더니, 결국은 현실이 되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은 고향을 떠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고향에 남는 게 지금 우리 상황 아닌가? 그렇다면 10대는? 과연 한국이 10대들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고향을 너무너무 싫어해서 언젠가 떠날 곳으로 생각하는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언제 생겨날까? 10대와 20대 그 어느 곳일지도 모른다.

일본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방의 모든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무조건 동경대를 동경 대학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동경으로 진학하는 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있는 한 때 제국 대학이었던 곳들이 여전히 명문 대학으로 작동한다. 사실상 무상 대학으로 운영되는 유럽의 국립대학들은 대학원 이전의 학부는 지방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어있다. 한국과 같이 거국적으로 대학교에 가면서 고향을 떠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저출생과 함께 고향을 지킨다는 것이 이제 절체절명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공항 등 인프라로 대표되는 토건이 더 강해진다. 일본이 잃어버린 20으로 들어가는 90년대에 그랬다. 사람들이 떠나면 관광이라도 하자는 논리가 초반에 강해진다. 그러나 절대적 인구 감소 시대, 관광은 누가 하나? 자기 불황, 관광할 돈이라도 있을까? 살기 좋은 고향 아니 머물고 싶은 고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순간이 왔다. 초등학교 문 닫은 동네는 다시 살리기 어렵고, 버스 노선과 기차 끊긴 지역에 사람들이 다시 오기가 어렵다. 도지사 등 단체장이 읍면 지역에 며칠씩 돌아가면서 머물면서 행정을 하면 좀 나아질까? 내가 도지사라면 그렇게 할 것 같다. 살기 좋은 고향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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