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악취는 덤...땅속 고무호스로 축산폐수 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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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 악취는 덤...땅속 고무호스로 축산폐수 방류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04.06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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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덕산읍 구산·기전리 주민들, “더 이상 못 참겠다” 집단반발
축사에서 200여m 구간 고무호스 묻어 십수 년째 미호강으로 배출
사육환경 너무 더러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돼지들이 불쌍
주민들, “진천군 솜방망이 행정이 화 키웠다” 행정 불신에 원성 고조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축사 내부.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은 뒤엉켜 있고, 통로엔 오물이 가득하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돼지들이 살고 있다.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축사 내부.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은 뒤엉켜 있고, 통로엔 오물이 가득하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돼지들이 살고 있다.

 

인지상정이라고, 한동네 주민이 살아보겠다고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데 악취가 좀 난다고 어떻게 야박하게 할 수 있겠나 싶어 참고 견뎌왔어요. 그런데 고무관을 묻어 폐수를 무단배출한 사실이 드러나 주민들이 이젠 더이상 못 참겠다고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덕산읍 구산리 상구마을 고대원(78) 이장의 말이다.

충북 진천의 한 평온한 마을이 돼지 축사 악취로 시끄럽다.

한 동네 이웃이라는 ()’ 때문에 수년 동안 악취를 견뎌온 주민들이지만, 고무관(호스)을 몰래 묻어 폐수를 흘려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집단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상구, 하구, 동산마을과 기전리 삼흥마을, 초평면 마두마을 주민들은 인근 돼지 축사에서 나오는 악취와 폐수, 파리 등 해충 때문에 평온했던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357일대 3000여 평에 들어선 개미농장은 15년 전부터 돼지 800~9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전 농장 주인은 사망했고 지금은 5년 전 임차한 윤 모(58) 씨가 월 230만 원의 임차료를 내고 축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윤 씨는 축산분뇨 처리를 위한 시설개선을 하지 않고 운영하는 바람에 폐수와 악취, 해충이 마을을 뒤덮고 있다. 주민들은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생활에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다.

그래도 주민들은 한마을에 같이 사는 이웃인데 어떻게 매정하게 대할 수 있느냐며 수년 동안 참고 지내 왔다고 한다.

그런데 고무호스가 발견되면서 참았던 주민 불만이 마침내 폭발했다.

 

개미농장이 축산 폐수를 미호강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설치한 고무호스.
개미농장이 축산 폐수를 미호강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설치한 고무호스.

 

폭탄이 된 고무호스

 

지난달 하순 축사 인근 소하천 정비사업 현장에서 포크레인이 고무호스를 건드려 깨지는 일이 벌어졌다. 공사 관계자는 포크레인으로 하천 벽면을 고르는 작업을 하는 데 땅속에 묻혀 있던 고무호스가 깨지는 바람에 오물을 뒤집어 쓰는 봉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주민들은 땅속에 묻혀 있던 직경 200가량의 고무호스를 발견했다. 한 주민은 축사에서부터 미호강(상류)으로 흐르는 소하천에 200m 달하는 고무호스를 묻어 수년간 축산 폐수를 무단 방류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특히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면 악취가 더 심하고 폐수방류도 증가한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돼지 축사 인근 저지대의 철강업체 관계자는 여름철에 비만 오면 공장에 돼지분뇨가 흘러들어 난리를 치곤 한다개미농장보다 늦게 입주하면서 민원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다고 말했다.

 

폐수 무단 방류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고무호스가 처음 발견된 공사현장을 찾아 확인하고 있다.
폐수 무단 방류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고무호스가 처음 발견된 공사현장을 찾아 확인하고 있다.

 

 

앞서 주민들은 지난해 2월에도 폐수 무단 방류 현장을 적발하고 동영상을 찍어 진천군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진천군은 농장주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무혐의 종결 처리했다. 주민들은 당국의 이런 환경오염 조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터에 폐수 무단 방류용 고무호스까지 발견되자 집단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조 기전리 삼흥마을 이장은 돼지농장의 폐수방류도 문제지만, 이를 처리하는 진천군의 행정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주민들에게 고무호스는 기름을 부었다고 강경 분위기를 전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육장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2일 오후, 개미농장의 사육환경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시설개선 흔적이라곤 농장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농장 외관은 부서지고 무너진 채로 방치돼 있고, 농장 입구엔 한낮인데도 폐수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축분에 톱밥을 섞어 보관하는 퇴비화장 밖에는 비가림 시설도 없이 축분이 그대로 쌓여 있어 비가 오면 외부로 흐를 수밖에 없는 무방비 상태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축사 내부 모습이다. 사방이 가로막혀 햇빛은 제대로 안 들어오고 내부 통로엔 오물이 가득해 사료를 주기 위해 왔다 갔다 한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다. 케이지에는 두껍게 쌓인 먼지에 거미줄이 뒤엉켜 있고, 악취가 진동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더러운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돼지들이 불쌍해 보였다. 동물 생명권은 깡그리 무시됐다.

한 주민은 만약 동물단체 회원들이 이런 환경을 본다면 당장 폐쇄를 요구하고 농장주를 동물 학대로 고발 조치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장주 윤 씨는 농장을 빌려 돼지를 사육하다 보니 시설개선에 4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할 수 없어 이 지경까지 왔다. 고무호스는 전 농장주가 설치했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 돼지 사육을 접으려고 했는데 그만 일이 터졌다할 말이 없다. 물의를 일으켜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공무원 직무 태도에 울분

 

톱밥을 섞은 축분이 비가림막 시설도 없이 방치돼 있다.
톱밥을 섞은 축분이 비가림막 시설도 없이 방치돼 있다.

 

주민들을 울분케 한 데는 개미농장 환경오염 사태를 다루는 진천군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2월 폐수방류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민원을 제기했던 주민들은 군이 무혐의 처리한 것에 대해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이다. 주민들은 이 무혐의 처리가 농장주에게 경각심을 주지 않아 결국 고무호스를 통해 폐수 무단 방류를 하게끔 방조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 고무호스는 행정 불신을 키우는데 결정적이었다. 주민들은 군 공무원이 시료를 채취하면서 마을 대표 입회 없이 떠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지난해에 이어 또 봐주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주민은 전날 밤 폐수 운반차를 동원해 고무호스의 물을 빼고 멀쩡하게 보이는 폐수를 떠 갔다고 한다누구를 위한 공무원이고 행정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담당 공무원은 지난해 민원은 무단 방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동영상 화질도 좋지 않아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며 무혐의 처분에 대해 해명했다.

또 시료 채취 논란에 대해선 폐수가 튀는 것을 막기 위해 고무호스를 자르기 전에 분뇨 수거차를 동원해 정화시킨 뒤 자른 배관에서 폐수를 채취해 검사 의뢰했다이번 주 후반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진천군은 윤 씨에 대한 고발장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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