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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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3.04.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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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파묵칼레·베르가마·부르사를 돌아보다
원형극장, 아고라, 도서관 통해 수준높은 시민의식 발견

 

 

이제 남은 도시는 튀르키예의 파묵칼레, 베르가마, 부르사이다. 모두 오래된 도시들이다. 파묵칼레는 카파도키아와 함께 볼거리가 많은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하얀 석회언덕과 온천, 그 뒤로 이어지는 고대유적 등 뭐 하나 버릴 게 없다. 관광객들 중에는 석회언덕과 온천만 즐기고 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언덕 너머에는 고대 유적과 박물관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것도 꼭봐야 한다.

튀르키예어로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城)으로 ‘목화성’이라는 뜻이다. 하얀 석회언덕이 마치 목화를 쌓아놓은 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파묵칼레를 가려면 데니즐리라는 도시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데니즐리는 옛날부터 유명한 목화산지였고, 오랜시간 쌓인 석회언덕을 하얀 목화에 비유했다고 한다. 석회언덕은 멀리서도 하얗게 빛났다.
 

파묵칼레의 석회언덕을 올라가는 관광객들
파묵칼레의 석회언덕을 올라가는 관광객들

 

파묵칼레의 꼭대기 온천수
파묵칼레의 꼭대기 온천수

 

특이했던 파묵칼레의 석회언덕
 

석회언덕은 거대한 소금산 같다. 석회를 함유한 물이 솟아 넘쳐 암석 표면으로 흘렀고, 이것이 오랜 세월 응고되는 과정을 거쳐 암석화된 것이라고 한다. 이 석회언덕은 1만4000년 전부터 조금씩 형성된 것이라고 하니 그 세월의 두께가 놀랍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계단식 석회층에 푸른 온천수가 고여있는 게 여간 특이하지 않다. 주변 경관은 석회언덕과 호수, 마을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석회언덕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이후 출입이 통제된다. 관광객들을 위해 일부 구간을 개방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올라가야 한다. 신발을 벗도록 하는 것은 석회언덕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부 구간을 걷는 것이므로 20분 정도면 올라간다. 꼭대기에서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앉아 쉬거나 야외온천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 고대 온천장은 야외온천장인데 유적들 사이로 온천이 솟아 생긴 것이다. 고대의 유적 위에 온천수를 공급하고 야외온천장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빛나지 않는가.

석회언덕 뒤 편 광장 옆에는 히에라폴리스라는 고대유적이 있다. 페르가몬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기원전 190년경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 유적지다. 이 도시는 로마와 비잔틴시대에 가장 번성했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석회언덕을 흘러내리는 35℃의 온천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주로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 및 요양을 위한 도시로 명성을 날렸다는 것. 온천수가 이렇게 효자노릇을 했다.

히에라폴리스는 1354년 대지진으로 인해 사라졌지만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고보면 독일의 고고학자들은 고대도시의 유적 발굴에 꽤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트로이를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처럼. 이 곳에는 아폴론 신전, 원형극장, 아고라, 목욕탕, 빌립의 무덤과 교회, 도미티아누스의 아치,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 등이 있었다.

히에라폴리스의 옛 모습 안내판을 보고 넓은 규모에 깜짝 놀랐다. 튀르키예 최대 고대 유적지인 에페스는 더 광활했지만 큰 기대없이 올라간 히에라폴리스도 대단했다. 여기서도 신전, 원형극장, 아고라, 목욕탕 등을 확인됐다. 이 네 가지는 고대 유적지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도서관이 추가되기도 한다. 일부는 건물 자체가 당당하게 보존되고, 또 일부는 흔적만 남은 채로. 그 중 원형극장, 아고라, 도서관을 통해 당시의 수준높은 시민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것이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근간이 됐음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고대유적 히에라폴리스의 옛 모습. 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에 각종 시설이 있었다.
거대한 고대유적 히에라폴리스의 옛 모습. 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에 각종 시설이 있었다.

 

히에라폴리스와 라오디게아
 

아폴론 신전은 헬레니즘시대인 2세기에 건축됐다. 지금은 기단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컸다고 한다. 히에라폴리스의 주신이자 태양신인 아폴론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원형극장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전체적인 틀을 완성하고 3세기경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무대를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극장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고 객석 중앙에는 귀빈들을 위한 로열석도 마련했다고 한다. 얼마나 섬세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튀르키예에 남아 있는 원형극장 중 보존상태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지금도 공연이 열린다.

네크로폴리스는 공동묘지를 말한다. 2km에 달하는 도로 양 옆으로 관이 늘어서 있다.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의 무덤으로 1200여기에 달한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발견된 무덤군 중 최대 규모. 치료와 휴양을 위해 이 도시로 몰려왔던 사람들의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히에라폴리스를 보고 고고학박물관으로 간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을 보며 또 감탄했다. 특히 이 박물관은 로마시대 때 목욕탕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라고 한다. 어쩐지 외관이 특이하고 아름다웠다.

 

로마시대 목욕탕이었던 파묵칼레 고고학박물관. 외관과 내부가 특이하다
로마시대 목욕탕이었던 파묵칼레 고고학박물관. 외관과 내부가 특이하다

 

히에라폴리스와 쌍벽을 이루던 라오디게아가 있다. 기원전 2세기경 지어진 도시다. 로마제국에 편입된 후 품질좋은 양모와 옷감을 바탕으로 한 피혁산업과 제약산업을 원동력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전해진다. 초기 동로마시대에 기독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라오디게아는 튀르키예의 중요한 유적지로 꼽히며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7개 교회 중 하나의 본거지였다는 것.

이 곳에는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큰 고대 경기장과 두 개의 극장, 수많은 교회와 광장이 있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6월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라오디게아 서부극장을 2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끝내고 재개관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원형극장은 기원전 2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즈미르주립 교향악단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공연이 펼쳐졌다니, 부럽기만 하다.

고대 유적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항상 개와 고양이를 만난다. 몇 마리씩 떼지어 다녔다. 이 동물들은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관광객을 보면 달려와 구경하는 내내 같이 다닌다. 그런데 개는 짖지도 않고 착하기만 하다. 고양이는 재롱을 피우며 사람 무릎위로 올라가곤 했다. 1500년을 훌쩍 넘은 조용한 고대도시 언덕에 인적은 끊기고 개와 고양이만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는 광경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베르가마의 아크로폴리스
산 꼭대기에 있는 베르가마의 아크로폴리스

 

베르가마의 아스클레피온 유적지
베르가마의 아스클레피온 유적지

 

세계 최초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온
 

어젯밤 파묵칼레에서 1박을 한 뒤 여러 유적지를 돌아본 후 베르가마로 간다. 고대를 대표하던 문화와 과학의 도시이며 페르가몬 왕국이 있던 곳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부하였던 리시마쿠스가 기원전 323년에 세웠다고 하니 얼마나 오래된 도시인가. 언덕 꼭대기에 지은 아크로폴리스와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온이 볼 만하다.

베르가마는 옛날에 소아시아를 대표하는 중심지였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는 마치 하늘과 닿을 듯이 높은 곳에 있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모든 게 발 아래로 보인다. 다만 전쟁과 지진 등으로 많이 파괴됐다. 여기에서는 황제 트라야누스 신전과 원형극장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은 터만 남아 있다.

아스클레피온은 처음에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봉헌된 신전이었으나 후에 의료시설이 됐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 즉 요양시설로 통한다. 여기서 일반치료는 물론 명상, 음악, 목욕, 심리, 운동, 맨발걷기 요법을 활용해 환자를 치료했다고 한다.

이 곳은 기원전 4세기경에 건축돼 기원 후 4세기까지 800년간 소아시아에서 의료 중심지 역할을 했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일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과거 이곳에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도서관, 원형극장, 샘터, 수면실, 치료동, 잠의 방, 갤러리, 쇼핑거리 등이 있었다고 나온다. 그 옛날에 이런 시설을 짓고 환자들을 치료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또 치료소 입구에는 ‘신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죽음은 이 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문구를 써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애초부터 받지 않아 오랜기간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부르사의 전통마을 주말르크즉
부르사의 전통마을 주말르크즉

 

베르가마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길에 부르사를 경유했다. 부르사는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마르마라해에 인접해 있다. 오스만 튀르크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어서인지 튀르키예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한다. 오스만제국을 창시한 오스만과 그의 아들인 오르한을 비롯한 술탄들의 자취가 남아 있으며 웅장하고 화려한 이슬람 사원이 여기저기 있다.

자동차로 한참을 달리다 주말르크즉 마을에 닿았다. 전통적인 가옥과 좁은 골목, 아기자기한 학교가 잘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답게 고색창연했다. 주민들은 각종 수공예품과 장난감, 꿀, 음료 등을 팔았다. 방금 학교에서 쏟아져나온 어린이들은 동양인을 처음 보는 듯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원주민들은 불편하겠지만 부수거나 치장하지 않고 보존한 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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