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LA강’ 복원 17년, 어디까지 흘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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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LA강’ 복원 17년, 어디까지 흘렀나
  • LA=황상호 전문기자
  • 승인 2023.04.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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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의 치부, 1930년대 홍수조절 용도로 개조
강 직선화로 물고기와 물새 다 떠나고 사람 발길 끊겨
서울 ‘청계천’이 롤모델, ‘그린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1. LA강이 시작하는 카노가 파크다. 콘크리트가 옹벽은 물론 바닥까지 뒤덮었다. © 황상호
1LA강이 시작하는 카노가 파크다. 콘크리트가 옹벽은 물론 바닥까지 뒤덮었다. © 황상호

바닥과 옹벽이 잿빛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다. 공장 배수로가 아니다. 과거 캘리포니아 송어가 헤엄치던 강이다. 이곳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젖줄 로스앤젤레스강(이하 LA)’의 시작점이다. 강은 로스앤젤레스 북쪽인 카노가 파크(Canoga Park)를 출발해 태평양과 이어지는 롱비치(Long Beach)까지 연장 82km. 모두 17개의 도시를 지난다.

LA강이 콘크리트 배수로가 된 것은 1930년대 말부터다. 1914년 대홍수에 이어 1938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지역에 폭우가 쏟아졌다. 교각이 무너지고 주택과 공장이 침수됐다. 하수도와 가스관이 줄줄이 터졌으며 주민 87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천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시와 카운티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 결과가 현재 모습이다. 미 공병대가 1938년 첫삽을 떠 1960년 콘크리트 강을 완성했다. 미 서부 최대 규모의 공공사업이었다. 강 높이는 물론 강폭도 넓게 팠다. 수심이 깊은 곳 일부를 제외하고 강바닥까지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1938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린 홍수 사진이다. 폭우로 인해 강변에 있던 카페가 강물에 휩쓸려 나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즈
1938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린 홍수 사진이다. 폭우로 인해 강변에 있던 카페가 강물에 휩쓸려 나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즈

이런 사업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도시의 급격한 성장이다. 1850년대 로스앤젤레스 인구는 1000~3000명이었다. 이후 유전이 발견되면서 인구는 1900년대 10만 명으로 성장했다. 이어 산업화로 인해 인구는 1930년대, 220만 명으로 급성장한다. 도시는 더 많은 빌딩과 주택, 공장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예측불가능한 폭우는 당시 주민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괴물처럼 다가온 것이다.

두 번째, 강의 경제적 측면이다. LA강은 물이 졸졸 흐르는 건천이다. 일 년에 8개월은 메말라 있다. 강이 주민에게 직접적으로 주는 혜택이 크지 않다. 마침, 로스앤젤레스시가 북쪽에 있는 오언스밸리 땅을 구매하고, 1913년 오언스밸리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380km의 수로를 건설한다. 서울과 부산 거리와 맞먹는다. 로스앤젤레스는 숙원사업이었던 수자원 확보에 성공했다.

세 번째, 자본을 바탕으로 한 수행 능력이다. 1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이 된 미국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수행할 인프라, 미 공병대가 있었다. 네 번째, 시대적 배경이다. 당시 미전역에는 낙관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이뤄졌다. 자유의 목소리가 사회를 흔들었다. 뭐든지 가능한 시대였다.

LA강이 콘크리트로 덮인 후, 강은 도시의 하수관 역할을 했다. 시는 강둑에 철조망을 설치해 주민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다. 강에는 하수시설에서 정화된 물이 배출됐다. 강에서 송어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은 1948년이었다. 물새도 떠났다.

강 하류를 중심으로 부작용이 터져나왔다. 주민들이 강변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고 옹벽에는 낚서를 했다. 도시노동자와 가난한 이민자가 모였다. 녹지가 사라진 콘크리트 지역에서는 범죄가 만연했다. 가끔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영화 촬영을 하러 올 뿐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2><블레이드러너>, <트랜스포머> 등이 촬영됐다.

1. A를 기반으로 한 풀뿌리 시민운동 단체인 '내일을 여는 사람들'의 회원들이 LA강을 둘러보며 막개발의 문제점을 둘러보고 있다. © 황상호
LA를 기반으로 한 풀뿌리 시민운동 단체인 '내일을 여는 사람들'의 회원들이 LA강을 둘러보며 막개발의 문제점을 둘러보고 있다. © 황상호

1980년대 들어 환경 보호 운동이 미전역에서 불기 시작했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대기와 수질 오염이 심각해진 것이다. 여기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고 환경 보호 정책이 축소됐다. 이에 전국 곳곳의 환경운동가들이 들고 일어섰다. 그중 한 명이 시인이자 기자였던 맥애덤스(MacAdams). 그는 1985년 환경단체 ‘LA강의 친구들(Friends of the Los Angeles River)’을 세웠다. 매년 봄 2500명을 조직해 강에서 쓰레기를 줍고 강 살리기를 주제로 설명회를 열었다.

직접 행동도 감행했다. 강둑에 설치된 철조망을 잘라 출입이 금지된 강에 들어갔다. 강을 거슬러 걸어 올라갔다. 강에서 자라는 큰 나무를 제거하려는 불도저를 막기 위해 그 앞에 뛰어들었다. 주민이 호응하고 정치인이 움직였다.

환경운동가 맥애덤스는 2020년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 주변에 있는 공원의 이름이 ‘루이스 맥애덤스 강변 공원(Lewis MacAdams Riverfrond Park)’으로 바뀌었다. 그의 업적이 새겨진 안내판과 그의 부조가 세워져 있있다. ©황상호
환경운동가 맥애덤스는 2020년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 주변에 있는 공원의 이름이 ‘루이스 맥애덤스 강변 공원(Lewis MacAdams Riverfrond Park)’으로 바뀌었다. 그의 업적이 새겨진 안내판과 그의 부조가 세워져 있있다. ©황상호

로스앤젤레스에 가뭄이 이어졌다. 하지만, 비가 내려도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LA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 버렸다. 수자원의 60%를 콜로라도강과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끌어오는 로스앤젤레스 입장에서 도시 안전에 큰 구멍이 확인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1996년 홍수 방지 및 강 생태계 회복을 위한 마스터플랜 초안을 발표한다. 2006년에는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로스앤젤레스 시장이 서울 청계천을 방문해 환상적(This is fantastic)”이라고 극찬했다. 강 복원 사업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제거됐다. 그 자리에 친수성 식물과 나무가 자랐다. 얇아진 콘크리트 틈 사이로 풀이 뿌리를 내렸다.

주민들이 강변을 따라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청년들이 주변에 모이면서 상권도 형성되되고 있다.  ©황상호
주민들이 강변을 따라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청년들이 주변에 모이면서 상권도 형성되되고 있다. ©황상호

강둑에 설치돼 있던 철조망이 걷혔다. 주변에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주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상권이 형성됐다. 20여 년 전 환경운동 단체와 이곳을 방문했던 풀뿌리 사회운동가 이철호씨는 그때만 해도 강둑에 철조망이 쳐있고 사람의 출입은 통제돼 있었다. 환경운동 단체에 노력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지난해 LA강 복원을 위한 최종 계획(LA river master plan)을 발표했다. 10여 년간 3300만 달러에서 10억 달러를 투입해 강 주변에 산책로를 확대하고 야생동물과 토종식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주택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과제도 산적하다. LA강의 롤모델 중 하나가 서울 청계천이다. 로스앤젤레스도 콘크리트 완전 제거가 아닌 일부 제거에 목표를 두고 있다.

LA강 복원 사업의 청사진이다. 서울 청계천과 같이 콘크리트 일부를 드러내고 도시 공원화했다.  ©LA공학국(City of Los Angeles Bureau of Engineering)
LA강 복원 사업의 청사진이다. 서울 청계천과 같이 콘크리트 일부를 드러내고 도시 공원화했다. ©LA공학국(City of Los Angeles Bureau of Engineering)

환경 정의를 위한 이스트 야드 커뮤니티(East Yard Communities for Environmental Justice)’의 로라 코르테즈(Laura Cortez) 디렉터는 지역 언론 엘에이이스트(LAist)와 인터뷰에서 더 많은 콘크리트가 사라져야 한다. 마스터플랜은 여전히 강을 홍수통제용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시 공학 전문가들은 콘크리트를 많이 걷어내면 홍수 위험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그린 젠트리피케이션(Green Gentrification) 우려도 있다. LA강 복원 사업에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참여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을 만든 주인공이다. 이 때문에 강 복원 이후 녹지와 생태공원이 늘어나면서 주변 집값이 치솟는 그린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날까 봐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걱정하고 있다.

●황상호

글 쓰는 사업가다. 청주방송(CJB)기자에 이어 미국 현지 중앙일보에서 신문기자를 했다. 이후 미국 인권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다, 현재 LA 컬처 투어리즘 업체 ‘소울트래블러17’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프로드 야생온천>, <내 뜻대로 산다>,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벼랑에 선 사람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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